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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시간 수집가 이야기

by 정영기

프라하의 오래된 골목길에 야로슬라프라는 시계 수리공이 살았습니다. 그의 작은 가게에는 수많은 시계들이 있었지만, 그중 대부분은 판매용이 아니었습니다. 야로슬라프는 자신을 '시간 수집가'라고 불렀고, 그의 시계들은 각각 특별한 순간의 시간을 담고 있었습니다.


"모든 시계는 멈춘 순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네." 그는 종종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젊은 사업가 마렉이 할아버지의 낡은 회중시계를 들고 가게를 찾았습니다. "이 시계를 고치고 싶습니다. 얼마나 들까요?"


야로슬라프는 시계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계는 정확히 1947년 3월 15일 오후 3시 27분에 멈췄군요. 특별한 날이었을 텐데요?"


마렉은 놀랐습니다. "어떻게 아셨죠? 그날은 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처음 만난 날이라고 합니다."


"시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네." 야로슬라프가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순간들을 지키는 수호자지. 자네 할아버지는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으셨던 거야."


야로슬라프는 마렉에게 가게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시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시계 아래에는 작은 카드가 있었고, 거기에는 시계가 멈춘 순간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회중시계는 한 군인이 전쟁에서 살아남았을 때 멈췄고, 저기 있는 탁상시계는 어떤 작가가 첫 소설을 완성했을 때 멈췄지. 이 작은 손목시계는 어린 소녀가 첫 피아노 연주회를 마쳤을 때 멈춘 거란다."


마렉은 호기심에 차서 물었습니다. "하지만 왜 멈춘 시계들을 모으시나요? 고장 난 시계는 쓸모가 없지 않나요?"


야로슬라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젊은이,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지만, 때로는 특별한 순간들을 붙잡아두어야 할 때도 있다네. 이 멈춘 시계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지. 인생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순간들은 시곗바늘의 움직임으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야."


야로슬라프는 마렉의 할아버지 시계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계를 고칠 수는 있지만, 그전에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네. 정말 이 시계가 다시 움직이길 원하나?"


마렉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할아버지가 이 시계를 보며 미소 짓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아니요, 이대로 두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 시계처럼 특별한 순간을 간직하고 싶네요."


야로슬라프는 서랍에서 오래된 회중시계 하나를 꺼냈습니다. "이 시계를 가져가게. 자네만의 특별한 순간이 오면, 이 시계가 그 시간을 지켜줄 걸세."


몇 년 후, 마렉은 자신의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시계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야로슬라프의 가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다른 시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날 프라하 사람들은 특별한 순간을 맞이할 때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순간을 야로슬라프의 시계에 담아두어야겠다." 그것은 단순히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의미를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이 체코의 이야기는 시간의 의미와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특히 프라하의 오래된 시계 문화와 장인 정신을 배경으로, 기계적인 시간 측정을 넘어선 진정한 시간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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