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닫힌 방(No Exit)
여러분, 혹시 지옥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시나요? 불이 활활 타오르는 무시무시한 곳? 악마가 쇠꼬챙이로 찌르는 곳? 사르트르는 "그런 건 다 필요 없어. 그냥 사람들 몇 명만 한 방에 가둬놔"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1944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던 암울한 시기에 쓰인 '닫힌 방'은 지옥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냥 방 하나에 세 사람이 영원히 갇혀 있다니, 얼핏 들으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같은 방에 갇혀있다면 어떨까요? 도망칠 수도, 혼자 있을 수도 없이 말입니다.
"이게 지옥이라고? 어디 고문도구는? 화형대는? 불타는 쇠 구멍은?" - 가르생
사르트르는 연극 닫힌방(No Exit)을 통해 자신의 복잡한 철학 아이디어를 일반 사람들에게 쉽게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무대도 단순합니다. 그냥 방 하나, 사람 셋. 하지만 이 단순한 설정이 인간 관계의 복잡함과 정체성의 문제를 정말 잘 보여줍니다.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관계의 복잡함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놓은 것 같습니다. 누가 "연극은 인생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했는데, 이 작품은 거울을 우리 얼굴 바로 앞에 들이밀어서 피할 수 없게 만든 느낌입니다. 현대인들은 과연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타인에게 얼마나 보여주고 있을까요?
닫힌방(Huis Clos)의 1940년대 상연 장면, 사진: Magda Molin
이 연극은 가르생이라는 남자가 어떤 신비로운 안내인에 의해 호텔 방으로 안내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곧 그는 두 여성과 함께하게 되는데, 하나는 날카로운 성격의 우체국 직원 이네스, 다른 하나는 상류층 출신의 허영심 많은 에스텔입니다. 이 방에는 특이하게도 거울이 없고, 창문도 없고, 깨질 수 있는 물건도 없습니다. 마치 페이스북에서 차단과 삭제 버튼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세 사람은 모두 죽은 상태고, 점점 자신들이 지옥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거울이 없어요! 거울 하나 없다니!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가 없어요!" - 에스텔
처음엔 서로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끔찍한 비밀이 드러납니다. 가르생은 자신을 평화주의 언론인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은 전쟁 중에 도망쳤다가 총살당했고 아내를 매우 나쁘게 대했답니다. 이네스는 레즈비언으로 사촌의 아내를 유혹해 사촌을 자살로 몰았고요. 에스텔은 결백한 척했지만 실은 불륜으로 낳은 아이를 호수에 버렸고, 이로 인해 그녀의 애인도 자살했습니다. 여러분의 친한 친구들이 갑자기 이런 비밀을 털어놓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어색하겠죠?
"당신은 내 거울이에요. 내가 당신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말해줘요." - 에스텔이 가르생에게
이 세 사람 사이에는 이상한 삼각관계가 형성됩니다. 이네스는 에스텔을 원하고, 에스텔은 가르생을 원하는데, 가르생은 에스텔에게는 관심이 없고 대신 이네스가 자신을 비겁하지 않다고 인정해주길 원합니다. 마치 중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짝사랑 삼각관계처럼요. 어느 순간 문이 갑자기 열리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나가지 않습니다. 결국 가르생이 유명한 대사 "지옥은 타인이다"를 내뱉으며 그들은 서로의 회사에서 영원한 감금 상태를 받아들입니다. 마치 친척들이 모인 명절 자리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심리적 감옥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닫힌 방'은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철학을 보여줍니다. 뭔 소리냐고요? 쉽게 말하면, 우리는 미리 정해진 삶의 목적이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고, 우리가 하는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만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마치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처럼요. 극 중 인물들은 비록 죽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가르생은 계속해서 자신이 비겁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SNS 프로필을 완벽하게 꾸미려고 애쓰는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나'라는 본질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랍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선택들을 통해 자신을 정의해왔는지 한번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난 내 삶을 통해 내 본질을 선택했어. 매일 매일의 행동으로." - 가르생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자유와 책임에 관한 것입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우리는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고 합니다. 뭔가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이는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마치 넷플릭스에서 뭘 볼지 30분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한 드라마가 별로여도 그건 여러분의 선택이었던 것처럼요. 극 중 인물들은 살아있을 때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기를 회피했고, 그들의 영원한 형벌은 바로 그 선택의 결과와 마주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은 우리를 대상화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순간 자유를 잃는다." - 사르트르의 시선 이론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개념은 '타인을 위한 존재'입니다. 사르트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객체로 만들어버려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위협한다고 말합니다. 방에 거울이 없다는 설정은 인물들이 오직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걸 상징합니다. 에스텔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서 공포를 느끼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이건 마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는데 좋아요가 하나도 안 달려서 내가 존재하는지 의심하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자아감이 얼마나 타인에게 의존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대사는 아마 연극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걸 "사람들은 다 짜증나니까 혼자가 최고야!"라는 의미로 오해합니다. 사실 사르트르가 말하고자 한 건 훨씬 복잡합니다. 이 대사는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시선이 우리를 객체화한다는 딜레마를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동시에 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연기하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지 않나요?
"지옥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겠어. 지옥은 타인이다." - 가르생의 유명한 대사
극 중 닫힌 방에서 이 관계는 지옥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물들은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고, 잠시라도 혼자 있을 수 없으니까요. 가르생이 자신의 탈영에 고귀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네스의 날카로운 시선 앞에서 그 변명은 무너집니다. 마치 여러분이 SNS에 "오늘 건강을 위해 샐러드!"라고 올렸는데 친구가 댓글로 "어제 치킨 세 마리 먹었으면서ㅋㅋ"라고 폭로하는 것과 비슷하죠. 타인의 시선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자아상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의 상황의 주인이 아니다." - 사르트르
하지만 사르트르는 일상에서 우리가 항상 이런 지옥에 갇혀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보통은 혼자 있는 시간도 있고, 서로를 인정하는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으니까요. '닫힌 방'의 인물들은 이런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극단적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 극은 우리에게 타인의 평가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경고를 주는 동시에, 인간 관계의 불가피한 긴장을 보여주는 철학적 탐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SNS를 삭제하고 진짜 너를 찾아봐"라는 자기계발서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달까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연극적 의미
연극으로서 '닫힌 방'은 정말 경제적이고 강력합니다. 등장인물 넷(안내인 포함)과 방 하나라는 단순한 세팅으로, 사르트르는 엄청난 심리적 드라마와 철학적 깊이를 만들어냈습니다. 화려한 특수효과나 복잡한 무대장치 없이도, 대화와 심리 상태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것이죠. 마치 좋은 유튜버가 비싼 장비 없이도 콘텐츠의 질로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것처럼요. 이런 최소주의적 접근은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철학적 연극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계속 서로를 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지옥이다." - 이네스
지옥을 불과 고통이 아닌 심리적 상태로 재해석한 것도 혁신적이었습니다. 신의 벌이 아닌 인간 관계 속에 지옥을 위치시킴으로써, 사르트르는 그 개념을 현대화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서, 이후 많은 문학과 영화에서 지옥이나 벌을 물리적 장소가 아닌 정신 상태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블랙 미러' 같은 현대 TV 시리즈도 이런 아이디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가장 무서운 지옥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걸 사르트르는 80년 전에 이미 깨달았던 것입니다.
80년도 더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닫힌 방'은 오늘날에도 놀라울 정도로 관련성이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24시간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대한 사르트르의 탐구는 새로운 차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물들이 타인의 관찰과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은 온라인 평판, 프라이버시, 그리고 타인의 평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의 심리적 영향에 대한 현대적 우려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여러분이 SNS에 올린 과거의 부끄러운 게시물이 영원히 인터넷에 남아있는 것처럼, 우리도 일종의 '닫힌 방'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요? 사르트르가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바라봤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 각자의 본성은 타인에 의해 정의된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만들어진다." - 사르트르
직장이나 가족 관계도 우리가 타인의 기대와 판단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 사르트르의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가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삼각관계는 현실의 많은 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 패턴입니다. 회사에서 상사는 내게 인정을, 나는 상사에게 자율성을, 동료는 나에게 공감을 원하는 식으로요. 이런 충족되지 않는 욕망의 순환이 지속적인 긴장을 만들어내는 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일상적 경험이 아닐까요? 결국 '닫힌 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한 영원한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