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분노를 굶긴다

by 정영기

침묵은 분노를 굶긴다. 분노는 관심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분노는 인정받고, 반응을 얻고, 맞서 싸울 때 더 커진다. 많은 경우 분노의 핵심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보이고 싶고, 들리고 싶고, 정당화되고 싶은 욕구다. 갈등을 통해 그 욕구가 충족되면 분노는 계속 살아남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점점 힘을 잃는다.


이 문장의 생각은 새로워 보이지만 뿌리는 오래되었다. 많은 철학적, 영적 전통은 절제를 하나의 힘으로 보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욕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태도를 강조했다. 동양 사상에서는 고요함이 내면의 혼란을 가라앉히는 길로 여겨졌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타인의 분노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분노에 연료를 공급할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침묵은 억압이나 두려움이 아니다. 해를 참아내거나 부당함을 받아들이라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멈춤이다. 상대의 감정 속도에 맞춰 반응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그 멈춤 속에서 분노는 부딪힐 대상이 없다. 저항도, 강화도 없을 때 분노는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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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는 아주 작은 장면으로 나타난다. 한 사람이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아 커지지 않는 말다툼. 아무 대꾸도 없자 힘을 잃는 공격적인 말. 관심을 받지 못해 사라지는 온라인 도발.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이런 순간들은 대체로 정면충돌보다 훨씬 빨리 끝난다.


현대 사회는 분노를 끊임없이 먹인다. 소셜미디어는 분노를 노출과 보상으로 연결한다. 뉴스는 갈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적 대화는 숙고보다 반응을 끌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것은 약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감정적 조작에서 벗어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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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명확한 경계나 필요한 행동을 대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첫 반응으로서 침묵은 강력하다. 생각할 공간을 만들고, 말을 고를 시간을 주며, 완전히 물러날 선택지도 남긴다. 분노로 이익을 얻는 세상에서 침묵은 여전히 분노를 굶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불교적 해석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침묵은 분노를 굶긴다”는 말은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을 가리킨다. 분노는 고정된 자아가 상처받았다고 느낄 때 일어난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즉각 반응하려는 마음은 ‘나’라는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 순간 침묵을 선택하는 것은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분노가 일어나는 조건을 바라보는 일이다. 반응하지 않을 때 분노는 머무를 자리를 잃는다.


불교에서는 모든 감정이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진다고 본다. 분노도 예외가 아니다. 말과 행동으로 반응하면 그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분노는 새로운 생각과 감정으로 증식한다. 하지만 침묵은 그 흐름을 끊는다. 알아차림 속에서 잠시 머무르면 분노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일시적인 현상임이 드러난다. 먹이를 주지 않으면 불길이 꺼지듯, 분노도 조건을 잃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런 침묵은 도피가 아니라 자비의 실천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말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 모두에게 업을 쌓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분노에 휩쓸려 던진 말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침묵은 그 흔적이 생기기 전의 빈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지혜는 행동하기에 가장 알맞은 때를 스스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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