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손더스(George Saunders)는 소설가이자 교육자로서 오랫동안 ‘친절(kindness)’과 ‘인간의 내면’에 대해 고민해 왔다. 2025년 가을 그는 미국 문학에 대한 탁월한 공헌을 인정받아 내셔널 북 파운데이션 메달(National Book Foundation Medal)을 받았다. 그의 작품과 강연은 널리 사랑받았지만, 2026년 1월 10일 뉴욕타임스 대담에서 그는 스스로를 ‘현자의 전도자’로 포장하는 대중적 이미지에 대해 솔직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오도하는 세 가지 환상을 안고 있으며, 그것들을 놓아버릴 때 삶의 진정한 해방과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If you Let Go of Three Illusions, You Can Be Saved
1. 나는 영원할 것이다 (You Are Permanent)
첫 번째 환상은 자기중심적 영속성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손더스는 이런 착각이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불안을 키우고, 결국 삶의 실제 순간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내려놓을 때, 삶과 죽음의 의미가 달라지고 “지금, 바로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2. 나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You Are the Most Important Person)
두 번째 환상은 ‘나중에 내가 최고로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일상의 선택과 행동에서 모든 기준을 자기중심으로 맞추는 경향이 있다. 손더스는 이 환상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과 기쁨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을 버리면, 타인과의 관계가 더 진정성 있고 건강하게 변화한다. 이건 단지 착한 면모를 넘어 생활의 진실을 직시하는 힘이 된다.
3. 모든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You Can Control Everything)
세 번째 환상은 통제의 환상이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예기치 못한 변수, 타인의 자유, 그리고 우연한 사건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흔든다. 손더스는 명상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곧 나 자신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 연습을 강조한다. 이 환상을 놓아버리면, 불안을 줄이고 현재의 경험에 더 충실해질 수 있다.
세 가지 환상에 대한 불교적 독해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조지 손더스가 말한 세 가지 환상은 단순한 심리적 습관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더 깊은 무지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불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고통이 주로 외부 환경이 아니라 무명(無明), 즉 자아와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쳐왔다. 손더스의 세 가지 환상은 이러한 고대의 통찰이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언어로 표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영속성의 환상은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무상(無常)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불교는 몸, 감정, 관계, 정체성을 포함한 모든 조건 지어진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시간 앞에서 자신만은 예외일 것처럼 행동하며 지속성을 갈망한다. 이러한 무상에 대한 부정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 변화에 대한 저항, 그리고 깊은 불안을 낳는다. 불교 수행에서 무상을 직면하는 일은 결코 염세적 태도가 아니라 해방의 출발점이다.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매 순간은 덧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생생하고 돌볼 가치가 있는 장면으로 드러난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환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아집 또는 자아 집착(我執)과 연결된다. 불교는 자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고정되고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나’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믿음은 인식을 협소하게 만들고 연민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이 환상이 느슨해질수록, 자기와 타인 사이의 경계는 부드러워진다. 이때 연민은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인간이 공유하는 취약성을 자각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태도가 된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은 의지와 결과, 확실성에 대한 집착을 반영한다. 불교는 존재가 개인의 통제를 넘어서는 상호의존적 인연(연기, 緣起) 속에서 전개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영향력을 통제력으로 오해할 때 괴로움이 깊어진다. 손더스가 언급하듯 명상은 생각을 곧 ‘나 자신’으로 동일시하지 않고 관찰하는 훈련을 제공한다. 불교적 언어로 말하자면, 이는 비집착의 수행이다. 비집착은 삶에서 물러나는 태도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유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손더스가 말하는 ‘구원’은 불교의 해탈(解脫) 개념과 깊이 공명한다. 그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구제가 아니라, 영속성·자기 중심성·통제라는 세 겹의 착각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내적 전환이다. 이 환상들이 사라질수록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더 깨어 있는 인간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 깨어 있음 속에서, 불교가 말해온 자유와 손더스가 말한 ‘구원’은 조용히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