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 되어버린 집밥
“집밥은 선(善)이고, 가공식품과 배달음식은 악(惡)이다.” 이 이분법은 낡아 보이지만 여전히 일상과 온라인을 지배하는 도덕 언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집밥 근본주의’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기보다, 특히 돌봄과 생계를 함께 짊어진 이들에게 죄책감과 번아웃을 안겨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식사가 삶을 지탱하는 행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심판하는 도덕 시험이 될 때, 우리는 이미 건강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리하라는 말의 숨은 번역
무엇보다 “더 요리하라”는 요구가 사실상 “여성이 더 요리하라”는 말로 번역된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집밥을 미덕으로 내세우는 담론은 장보기, 메뉴 계획, 조리, 설거지로 이어지는 막대한 보이지 않는 노동을 다시 가정 안으로, 주로 여성에게 떠넘겨 왔다. 프랑스 영양학자 마틸드 투비에 등이 냉동 양파와 마늘을 쓰는 이유를 “시간의 이득”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간이야말로 현대 가정의 가장 현실적인 제약 조건임을 정확히 짚는다. 집밥 근본주의는 이 시간의 정치성을 지워버린다.
프랑스 사례가 던지는 문제 제기
이 지점에서 프랑스의 사례는 중요한 반례를 제공한다. ‘의지가 약해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먹지 못한다’는 통념과 달리, 프랑스는 개인 훈계보다 구조 개입에 집중해 왔다. 소다세 도입, 과일·채소 소비 장려 캠페인, 학교 급식의 저당·저염·유기농 전환, 자판기 철거 같은 정책들은 “집에서 더 요리하라”는 도덕 명령 없이도 식습관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은 개인의 결심보다 환경의 결과라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뉴욕타임스가 주목한 ‘프랑스의 비밀’
이러한 맥락을 정리해 소개한 글이 줄리아 벨루주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The French Secret to Healthier Eating」이다. 이 칼럼은 프랑스 성인의 비만율이 2020년 기준 약 17%로, 미국의 약 40%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그 차이를 개인의 절제력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의 누적 효과에서 찾는다. 특히 냉동·통조림 채소까지 포함한 과일·채소 섭취 장려 정책이 실제 섭취량 증가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의지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
벨루주는 프랑스의 식문화를 ‘완벽한 집밥의 문화’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덜 가공된 재료형 편의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도시 환경과 규제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주 1회 채식 급식, 점심시간을 보장하는 학교 시스템, 아이들에게 서두르지 않고 음식을 음미하도록 하는 문화는, 건강을 개인의 노력에만 맡기지 않는 사회적 장치다. 여기서 건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지가 설계된 방식의 문제로 이동한다.
‘건강한 편의식’이라는 제3의 길
프랑스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건강한 편의식’이라는 제3의 길이다. 냉동 채소, 통조림 라따뚜이, 냉동 수프 같은 제품들은 전통 시장과 경쟁하는 적이 아니라, 바쁜 맞벌이 가정이 영양을 확보하는 현실적 동반자다. 전면 영양 등급 표시제인 Nutri-Score 도입 이후, 수많은 브랜드가 제품을 재구성했고, 소비자 역시 “덜 나쁜 선택”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집밥 근본주의가 놓쳐온 회색지대, 즉 현실적 선의 영역이다.
아이들의 식탁은 개인 책임이 아니다
집밥 근본주의가 특히 놓치는 지점은 아이들의 식탁이다. 프랑스는 이미 2012년에 학교 자판기를 금지하고, 점심을 ‘빠른 급식’이 아닌 하나의 코스로 제공해 왔다. 플라스틱 식기 퇴출, 지역 농산물 사용, 급식의 공공성 강화는 아이의 식습관을 어머니의 집밥 능력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음식은 여기서 영양을 넘어, 공동체와 지속가능성을 배우는 공적 교육이 된다.
집밥을 자비의 언어로 되돌리기
불교적 언어로 말하자면, 집밥 근본주의는 업(業)을 지나치게 개인화한다. 프랑스의 사례가 보여주듯, 건강은 개인 수행만의 결과가 아니라 함께 짓는 공업(共業)의 산물이다. 집밥 근본주의를 넘어서자는 말은 요리를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냉동 채소를 쓰고, 통조림 수프에 신선한 재료를 더하고, 때로는 간편식으로 하루를 버티는 선택을 죄책감 없이 받아들이자는 제안이다. 지금의 조건 안에서 가능한 최선의 건강과 돌봄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오늘의 식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행일지 모른다.
* 한국에는 Nutri-Score 제도가 공식적으로 실행되고 있지 않다. Nutri-Score는 단순 수치 대신 시각적으로 비교 우위를 제공하는 영양 정보 시스템으로, 바쁜 현대 소비자들이 빠르게 식품의 영양품질을 판단하도록 돕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