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 하나 있었다.
"너는 스무 살 전까지 절대 물가에 가지 마라. “
열 살도 채 되기 전부터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당부하시던 이 말씀은 내게 일종의 주술과도 같았다. 다행히 운동에 큰 소질이 없던 체질 덕분에 그 금기를 깨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수영을 못 하는 것이 서운하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친척들과 얕은 냇가에 발을 담그는 것이 물과의 인연 전부였다.
하지만 스무 살의 문턱을 갓 넘은 대학교 2학년 여름, 나는 그 당부의 무게를 뼈저린 공포와 함께 실감하게 되었다.
# 1980년 여름, 무주 계곡의 푸른 밤
친구 A와 단둘이 무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동네 친구에게 빌린 묵직한 텐트를 짊어지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다. 계곡 옆에 텐트를 치고 술과 함께 보낸 첫날밤은 공기도 좋고 낭만 그 자체였다. 주변의 단란한 가족들을 바라보며 "참 잘 왔다"는 만족감 속에 깊은 잠에 들었다.
# 평화를 깨뜨린 계곡의 포효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아침이 되자 비는 그쳤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빗줄기라 여겼는데, 산속 계곡의 형세는 순식간에 돌변했다. 사방에서 모여든 빗물이 계곡으로 쏟아지더니, 거대한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굉음이 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짐을 챙겼다.
그런데 친구에게 빌려온 텐트가 흙탕물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이 못내 신경 쓰였다. 깨끗이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텐트를 계곡물에 씻으려 했던 것,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객기였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 "놓아야 산다!" — 손끝에 전해진 전율
계곡 옆 바위 위에 올라서서 텐트를 거센 물살 속으로 던진 찰나였다. 물속에 잠긴 텐트가 급류를 타는 순간,
내 팔을 잡아끄는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단순한 텐트의 무게가 아니었다. 거대한 자연이 나라는 존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듯한 압도적인 힘이었다.
'지금 이걸 붙잡고 있으면 나는 죽는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전율이 돋으며 "놓아야 한다"는 본능적 판단이 뇌리를 스쳤다. 만약 그 짧은 찰나에 머뭇거렸더라면, 나는 폭 10미터의 거친 소용돌이 속으로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손을 놓았고, 무서운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텐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되찾은 텐트, 그리고 깨달음
친구의 소중한 물건을 이대로 잃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계곡을 따라 한참을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하류 쪽 바위틈에 걸려 있는 텐트를 발견했다. 물을 가득 머금어 바위처럼 무거워진 텐트를 끌어올리는 일은 그 자체로 처절한 사투였다. 그것을 되찾아 돌아오는 길에 나는 깊은 상념에 젖었다.
'산속에서도 물에 빠져 죽을 수 있구나. 어머니의 말씀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내 삶을 향한 예지였구나.‘
어른들의 말씀에는 종종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날 손끝에 전해졌던 그 전율과 찰나의 결단은, 어쩌면 수없이 반복된 어머니의 당부가 내 무의식 속에 강력한 생존 본능으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