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벙어리 이야기-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
두 명의 외로운 벙어리가 있었다.
한 명은
투수(피처)라는 이름이었고,
다른 한 명은
포수(캐처)라는 이름이었다.
두 사람은
말 대신 공을 서로 던짐으로써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이
딱 들어맞을 때
공은 똑바로 전달되었지만,
어긋날 때
공은 크게 빗나갔다.
그런데
이 두 명의 벙어리를 질투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어떻게든
두 사람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싶어 했고,
배트라는 떡갈나무 곤봉으로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대화인 공을
두 사람의 바깥 세계로
튕겨내 버린 것이었다.
공을 잃어버린
두 명의 벙어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곤봉으로 공을 튕겨낸 남자는
악마처럼 양팔을 벌리고
두 사람의 주위를 달려 나갔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숫자가 기록되었고,
그 숫자가 늘어가는 것이
두 명의 벙어리의 불행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명의 벙어리에게 공을 돌려주려는
일곱 명의 벙어리가 모여들었다.
그들은
곤봉을 든 남자를 죽이기 위해
<볕이 드는 땅>에서 찾아온 것이었으며,
왠지
왼쪽 손만이
비정상적으로 컸다.
데라야마 슈지의 이 시는 야구의 장면을 빌려 인간관계의 본질을 보여준다. 투수와 포수는 단순한 경기의 인물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려는 두 사람의 상징이다. 이들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을 던지고 받는 행위로 서로를 이해한다. 공이 정확히 전달될 때는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고, 공이 빗나갈 때는 감정이 어긋나는 순간이다. 이 시에서 캐치볼은 곧 대화이고, 관계 그 자체다.
그러나 이 조용한 교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질투하는 남자가 등장해 배트로 공을 바깥 세계로 쳐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방해가 아니라, 두 사람만의 언어를 파괴하는 폭력이다. 시는 이를 통해 인간 사이의 소중한 관계가 얼마나 쉽게 외부의 악의, 경쟁, 사회적 압력에 의해 깨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둘 사이의 진심은 늘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시는 사적인 관계를 넘어 사회적 비극까지 암시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공을 쳐낸 남자가 두 사람 주위를 돌며 숫자를 늘려 간다는 장면이다. 한 바퀴 돌 때마다 기록되는 숫자는 두 사람의 불행도를 나타낸다. 여기서 야구의 점수는 승리의 표시가 아니라, 타인의 상실이 어떻게 수치로 환산되는지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데라야마는 이 장면을 통해 인간의 고통이 구경거리나 기록으로 소비되는 세계를 비판한다. 누군가의 상처가 곧 누군가의 성과가 되는 사회의 잔혹함이 이 짧은 이미지 속에 압축되어 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벙어리는 이 시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들은 공을 되찾아 주기 위해, 더 나아가 관계를 파괴한 남자를 없애기 위해 모여든다. 이는 잃어버린 언어와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렵고, 결국 연대와 공동의 저항을 필요로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더구나 이들 역시 ‘벙어리’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상처를 이해하는 것은 늘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며, 말 잘하는 자가 아니라 침묵의 고통을 아는 자들이 회복의 가능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야구에 관한 시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관한 시다.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전하려 애쓰지만, 그 대화는 쉽게 방해받고, 상실은 쉽게 계산되며, 불행은 종종 기록으로만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공을 되찾으려 한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슬픈 시가 아니라, 파괴된 관계를 다시 이어 보려는 비장한 연대의 시로 읽힌다. 데라야마 슈지는 가장 기묘한 이미지로, 가장 인간적인 슬픔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