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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와 니체의 대화

영원한 바위와 의지의 춤

by 정영기

장소: 황량한 언덕, 시지프가 바위를 굴리고 있는 곳. 하늘은 잿빛이고, 바람만 쓸쓸히 분다. 니체가 먼지투성이 망토를 입고 언덕 아래서 걸어 올라온다.


니체: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를 바라보며) 자네가 그 유명한 시지프인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일을 반복하며 신들의 저주를 받았다는 자네 말일세.


시지프: (바위를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맞네, 나다. 그리고 자네는 누구지? 이 쓸모없는 언덕에 찾아올 이유가 있는 자인가?


니체: 나는 니체, 삶의 의미를 묻고 스스로 답을 만드는 자일세. 자네의 그 바위 굴리기를 보니 궁금해졌네. 인생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끝없는 고난 속에서 자네는 무엇을 느끼는가?


시지프: (웃으며) 인생? 이 바위와 같지. 굴리고, 떨어지고, 다시 굴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고통의 연속이야. 의미를 묻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신들이 나를 이렇게 묶어놨으니, 나는 그냥 굴릴 뿐이네.


니체: (눈을 빛내며) 아니, 거기서 멈추지 말게! 자네의 그 반복 속에 힘이 있네. 삶이란 고난 그 자체가 아니야. 고난을 넘어서 자네가 무엇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지. 나는 "힘에의 의지"라 부르네, 자네가 그 바위를 굴리는 행위를 긍정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네.


시지프: (고개를 갸웃하며) 가치를 창조한다고? 이 바위가 내려가는 걸 막을 수도 없고, 언덕 위에 영원히 세울 수도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굴리는 것뿐이야. 의미란 신들이 이미 빼앗아간 거 아닌가?


니체: (단호하게) 신들 따위가 의미를 빼앗았다고? 그건 자네가 그들에게 의미를 맡겼기 때문이야! 신은 죽었네, 시지프. 더 이상 외부에서 의미를 빌려올 필요 없어. 자네가 바위를 굴리는 그 행위 자체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 자네만의 삶을 긍정한다면, 그게 바로 인생이야. 고난을 받아들이고 초월하는 자, 그게 초인이네.


시지프: (생각에 잠기며) 흠… 자네 말은 내가 이 바위를 굴리는 걸 즐기라는 건가? 이 끝없는 반복을 사랑하라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걸 증오하지 않아. 매일 똑같지만, 바위의 무게를 느끼고, 땀이 흐르는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지. 근데 그게 의미라고 할 수 있나?


니체: (미소 지으며) 바로 그거야! 자네가 그 무게를 느끼고, 땀을 통해 삶을 감각하는 순간, 자네는 이미 의미를 만들고 있네. 삶이란 고통과 기쁨이 뒤섞인 춤이야. 자네가 그 춤을 추는 한, 신들의 저주도 자네를 꺾을 수 없어. 나는 그걸 "운명에의 사랑"(Amor Fati)이라 부르네, 자네의 운명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게 자네의 힘이 된다.


시지프: (바위를 다시 굴리며) 운명을 사랑하라… 재밌는 말이군. 나는 이 바위를 굴리는 게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저 받아들였어. 근데 사랑한다고 느끼진 않았지. 자네 말대로라면, 내가 이 바위를 밀어 올릴 때마다 나 자신을 새로 만드는 셈인가?


니체: (열정적으로) 맞네! 매번 바위를 굴릴 때마다 자네는 새로 태어나는 거야. 그 반복 속에서 자네의 의지가 강해지고, 자네가 누구인지 증명되지. 삶이란 그런 거야, 끝없는 되풀이 속에서 스스로를 창조하는 과정이네. 자네는 이미 초인이야, 시지프. 신들이 자네를 묶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네는 그들을 초월했네.


시지프: (웃으며) 초인이라… 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 주다니 고맙군. 근데 나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 이 바위와 함께 산다는 게 내 삶이야. 의미를 만들든, 찾든, 그냥 굴리는 게 내 방식이지. 자네는 삶을 뭐라고 생각하나?


니체: (하늘을 보며) 삶은 투쟁이고, 창조야.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자네만의 가치를 세우는 거지. 나는 신도, 운명도 아닌, 인간의 힘을 믿네. 자네처럼 바위를 굴리며 그 힘을 증명하는 자들이야말로 삶의 본질을 보여주지.


시지프: (바위를 언덕 위로 밀며) 그럼 우리 둘 다 삶을 살아가고 있군. 나는 굴리고, 자네는 말하고. 결국 인생은 각자의 방식으로 밀고 나가는 거 아닌가?


니체: (끄덕이며) 그렇지. 자네는 굴리고, 나는 쓰고. 둘 다 의미를 만드는 인간이네. 자, 계속 굴려보게. 나는 자네의 그 바위에서 영감을 얻었으니, 또 다른 언덕으로 떠나야겠네.


시지프: (바위가 굴러 떨어지며) 떠나기 전에 한 번 같이 굴려보겠나? 이 무게를 느끼면 자네 철학이 더 단단해질지도 모르지.


니체: (웃으며) 좋네, 시지프. 자네와 함께라면 이 바위도 춤이 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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