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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룻강아지 Oct 29. 2020

#3. 인도

사실 신의 인도라고 이야기하면, 무신론자들은 그런 게 어딨어! 한다.

어...물론 이해를 해. 왜냐면 나도 종종 무신론자가 되거든.

아주 인생이 휘몰아치고 일도 잘 안되고 하면 말이지.

그러다 신앙심이 충실해지면(일이 잘 풀려서는 아니다) 이렇게 인도같은 글도 쓰고 그러는거야.

원래 사람은 그런거고, 신은 그래도 나를 사랑할거야.



내가 말하는 건 기독교적 유일신 개념은 아님.

사실 이 신이라는 존재가 뭐...어떻게 설명하겠어. 나도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초월자적 존재인거지.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얼마 전에 친한 친구가 집주인이 자기보고 집에서 나가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얘 목소리가 어둡지가 않았고, 실제로 나도 어두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걸 듣자마자 내가 생각한 것은 '음, 뭔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려나 보다.' 라는 생각이었다.

상식적으로는 괴랄한 생각이다. 머리에 꽃밭이 핀거지.



보통 보여야 하는 반응은 아래와 같다.

걍 집주인이 불법적으로 나가래. 미친 싸이코새끼 아냐?(실제로 이 얘기를 다른 친한 친구에게 들음. 물론 이 말도 너무 잘 이해됨. 이렇게 쫓아내는 것은 불법 맞음. 은행에서도 불법이니까 비워줄 필요 없다고 했다나)

어쨌든 퇴거요청을 받은 이 친구는 지금 새로 대출받을 수 없어

다른 전셋집을 구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은행원은 얘한테 일단 4대보험 되는 직장에

한달이라도 취업해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걸 듣고 나는 '이젠 신이 얘한테 안정적인 직장까지 마련해주려고 하나보군.' 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더 얘기를 들어보니, 이건 그런 방향의 인도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거의다 아는,

굉장히 유명한 노(老)작가님이, 얘랑 인연이 있는 분이다.

얘는 글을 쓰는 애인데, 그 분에게 피드백을 받다가 말았다고 한다.

그분은 예전부터 투병생활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을 수도 있다.(정정하시다고는 한다)



얘 혼자의 힘으로는 대출을 받을 수 없지만,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면

가능할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서 얘의 플랜은 주변인에게 부탁해

대출을 받아서 그 작가님과 같은 동네에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걸어서 20~30분 정도 되는 곳에 매물이 있다나.



그래서 예전에 받지 못한 피드백을 다시 시작하는건 어떨까? 라고 물어 왔다.

그걸 듣고 나는 그러려고 집주인이 집을 비우라고 했구나. 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아무 상관없는 일들의 모음이다. 그러나 이렇게 명확한(내가 볼땐 그렇다) 인도라면 당연히 그 길을 걸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신의 뜻을 해석하는 작업은 틀릴 수 있다는 걸 서로 상기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신의 인도' 가 있다고 믿는 관점이 물질적으로 유리해지느냐.

하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더 행복해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유리해진다고 생각한다)

인도라는 관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은 제멋대로 흔들리는

가시나무 가지 같고, 나는 옆에 서있어서 맨날 긁히는 것 같거든.



그렇지만 똑같은 상황을 보고 신의 인도라고 생각하면

훨씬 시야가 넓어지며, 보다 명료한 상황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게 맞건 틀리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점 신을 믿게 되며, 내가 불완전하더라도

'나는 안전하다.' 라는 생각을 점점 갖게 된다.

(나는 그러고 있는 단계이다.)



왜냐면 유신론자 관점에서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은 

사실 신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돈도 건강도 사랑도 그 모든 것이 신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부분을 착각한다.

'저 사람에게 잘 보이면 내게 기회를 주겠지.'처럼,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바라는 것을 성취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부정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요청하면(뜻을 세우면), 신은 그 길을 보여준다.

(보통 영감이 온다고 한다.)

우리가 뜻을 세운다는 그 행위조차 더 큰 계획 안에 있는 것 같지만서도.



다만 그 길을 갈지 말지는 본인의 판단이고, 

신은 갈지 말지에 대한 판단 또한 존중한다.

그렇기에 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하여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 계속 노래 레슨을 받게 해달라고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빈지 거의 십년이 지나서 26살때 선생님을 만나 노래 코칭을 받았다.

지금은 헤비메탈러의 길을 가기 위해 다른 분에게 트레이닝을(2차전직) 받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 맘대로 목소리가 안 나올 때가 훨씬 많다.

득음은 너무 힘겨운 과정이다 솔직히. 거의 다 온 것 같긴 한데.



에? 신이 다 책임져주는거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다. 신은 길을 열어준다. 계속 길을 보여주는 게 그가 하시는 일이다.

헤비메탈이 하고싶다고 하니까 이미 시행착오 다 겪은 선생님을 보내주고,(언클린 보컬분야 국내 권위자)

연습실이 없다고 했더니 터널 옆에 샛길(사람이 절대 안 옴)을 발견하게 해주고,

돈이 없다고 했더니 계약을 갖다주고,

하던 광고일이 하기 싫다고 했더니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어떻냐고,

예전에 네가 좋아했던 강의를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떻냐고

친구의 전화를 통해 알려주잖아.



그분은 항상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아주 많다.

다만 우리가 그분이 주시려는 인도와 영감에 귀를 닫고 있는 것 뿐이지.



이렇게 신의 뜻을 계속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점점 그것도 잘 듣게 되는 것 같다. 

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집주인이 방 빼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욕을 하거나 

어떡해, 괜찮아? 라고 했을 테니까.



신의 뜻을 잘못 이해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잘못 이해한다면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니까.

때로는 그게 과격하게 느껴질때도 있고, 때로는 굉장히 소프트하고 나이스한 방향일수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신은 나와 함께 있고, 우리는 늘 인도받는다.



그러니 안심하고 살아도 괜찮다.

마음을 놓아도 괜찮다.



모든 것은 신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은 우리를 사랑한다.



-



눈을 열고 귀를 기울여라.

네가 듣는 노랫말과 네가 읽는 다음번 신문기사와,

네가 보는 다음번 영화의 줄거리와, 

네가 만나는 다음번 사람의 우연한 중얼거림에.

혹은 네 귀를 간지럽히는 다음번 강과 바다와 바람의 속삭임에.



이 모든 장치가 다 내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다 내게로 열려 있다.

네가 귀담아듣는다면 나는 네게 말할 것이며,

네가 나를 초대하면 나는 네게 갈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언제나always 그 자리에 있다는 걸 네게 보여주리라.

모든 방법으로all ways.

-<신과 나눈 이야기> 1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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