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와 처음 출판사 창업을 계획했을 때, 크라우드 펀딩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계약한 저자의 책을 발판 삼아 좋은 저자들 발굴해서 키워 나가는 게 우리의 꿈이었다.
당연한 출판사의 형태이겠지만, 그것은 그저 원대한 포부쯤 되겠다.
우리가 놓친 건 출판 시장의 현실이었다.
출판 시장은 이미 무너졌고, 날이 갈수록 무너져 가고 있다.
그걸 알면서, 우리는 또 기대했다.
물론 출판 기획 자체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겠지.
생각해 보면, 비평적 관점이 부족했던 듯하다.
저자를 향한 기대에만 부풀어서 그 이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기대했던 저자의 책은 완전한 실패를 안겨주었다.
최소 기대치의 10%만을 달성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 도서 출간에 들어간 비용은 우리에게 작은 수준이 아니었다.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없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접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성공이라는 결과보다는 공유와 그 결과의 확인으로서 그 기획을 진행하는 대가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프로젝트를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막상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시작을 눈앞에 두니, 그러한 '의미'에 욕심의 꽃이 피어났다.
사실, 그때는 무조건 그 프로젝트를 성공해야만 했다.
실제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사무실까지 마련하고 보니, 현실감이 어깨 위에 올라탔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한 첫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다행히도 기대 이상의 결과로 마무리지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완전히 일반 출판 시장과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게다가 펀딩으로 책을 사는 사람들은 정말 책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특별한 것을 찾아 그 대가를 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성공했다는 것에 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기대가 없었으니, 작은 성공이라도 기뻤다.
사실 작은 성공도 아니었다.
목표 금액의 8배를 달성했으니...
그렇지만, 그때 계산기를 잘 두드려봤어야 했다.
성과에 들떠 있기보다, 다시 방향성에 관해 논의하고 계획했어야 했다.
성공에 취한 채로, 우리는 펀딩에 좀 더 매달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출간 방식으로는 살 수 없겠다고 느꼈다.
문제는 그 이후,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 성공 금액들이 애매했다는 것이었다.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충분한 수익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었다.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제대로 기획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조사하고 정리하고, 그렇게 찾은 기획 중에서 추리고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우리는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제대로 된 기획 없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펀딩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정상(정상, 비정상의 개념은 아니다) 출간한 도서의 실패로, 당장 펀딩을 통한 수익조차 없으면 먹고살 수가 없으니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진행해서, 성공하면 또 간당간당 애매하게 수익을 나눴다.
나는 슬슬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제대로 기획해서 더 큰 달성을 노려야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여유는 없는데 가져가는 것은 많지 않았니, 서서히 지쳐만 갔다.
어느 날 동업자에게 이러한 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촉박함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 없다고 했다.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손가락 빨고 몇 개월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지만, 고민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