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실주인 Jun 08. 2020

우리는 아아 아라

사장님, 한글이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지하실 우리는 아아 아라"

"뭔데? 나는 아아 몰라"

생물학적 여자 친구 두 명이 자지러지듯이 웃어댄다.

한참을 웃어대더니 대뜸 정색하고 다시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럼 얼죽아는 뭔지 알아?"

"얼뜨기란 뜻인가? 나 놀리는 거야 지금?"

다시금 자지러지게 웃어대다 몇 번 더 놀리더니 그 뜻을 설명해 줬다. 상황과 장소를 통해 줄임말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지만, 나는 커피숖에서 주문하는 상황에도 아아 아라 얼죽아가 각각 아이스 아메리카로 아이스 라때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 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나라 말인 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시대에 뒤처진 사람 취급받고 싶지 않아서 몰라도 아는 척 넘어가곤 했지만, 가끔씩 아아가 무슨 말인지 몰라 비웃음 당한 정도의 곤란한 경우가 생기곤 한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의 사소한 일화는 담장 안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지하실 부장 저기 명적에 가서 영선 반장 신분장 찾아서 2관구에 가져다주고 와"

'음?' '뭐라는 거지?'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고의 일이다. 나는 부장이 아닌데 왜 나를 보면서 말하나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말이긴 한 거 같은데, 곱씹어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딴청을 피워대며 슬며시 눈을 피하고 나에게 주여진 상황이 아니라는 헛 된 기대감을 품는 게 전부였다. 업무를 지시한 사람도 지시를 받은 사람도 잠시 어색한 대치가 이뤄졌다.


대체 무슨 상황일까? 앞서 언급한 담장 안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바꿔보자.

"지하실 교도 수용기록과에 가서 시설보수 반장 수용자의 수용기록카드 찾아서 수용 2팀에 가져다주고 와"가 정확한 표현이자 현대 순화된 담장 안의 언어들이다. 문서상 쓰는 단어들과  일치하기에 어떻게든 찾아가 일을 처리할 순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입에 잘 붙지 않는다. 문장도 길어서 중간에 집중력을 잃는다. 일본식 표현의 잔재를 순화된 우리식 표현으로 바꾸었지만, 어차피 담장 밖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언어들이라 아직은 익숙한 옛적 표현을 많이 쓰나 보다.



호칭 인플레이션


"젊은 사장 혼자 온 거 같은데 자리 좀 우리 한테 양보해주면 안 될까?"

한가로운 주말 오후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을 찰나였다.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말을 걸어왔고 일행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내 허락을 구하기도 전에 내 맡은 자리의 의자를 당겼다. 나는 다급하지도 않게, 고개도 돌리지 않으며, 최대한 예의 없이"저도 일행 있어요"라고 말하고 내가 자리를 사수했다. "양보 좀 해주면 안 돼?' 처음부터 계속 반말이다. "일행 곧 올 거예요. 안돼요" 퉁명스레 답했다. 의자를 거칠게 밀어 넣는 소리가 들린다. 당연히 자신들이 차지했어야 할 자리를 새파란 젊은이가 뺏아서 억울하다는 항변을 그런 식으로 하고는 쭈뼛쭈뼛 물러섰다. 물론 나는 한가로이 홀로 독서나 하러 나왔기 때문에 찾아 올 일행은 없었다. 허락을 구하기도 전에 앉을 채비를 하는 일행들의 예의 없음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를 사장이라 부르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분상승 욕구를 자극하듯 높여 부른 사장이라는 호칭이 오히려 낮잡아 부르는 느낌이 들어서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장? 아니다 뉘앙스와 행동은 '어이 거기 어린이 비켜'였다. 더군다나 담장 안에서 사장은 좋은 게 아니다.


"아니 김 사장님 빵을 혼자서 다 드시면 어떻게 해요?"

수용자들끼리의 대화다. 사장한테 왜 이렇게 함부로 할까. 사장이나 되면서 왜 빵 한 개 때문에 모진 소리를 들어야 하나. 그들은 담장 밖에서 정녕 사장이었을까.

당장 안에서 '사장'이란 수용자들끼리 서로를 부르는 일상적인 호칭이다. 담장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자존감을 높여 주려는 접대성인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자 호칭에서부터 상호 존중인지, 부장 주임 계장 과장 소장인 교도관보다 높은 표현을 듣고 싶은 나름의 저항인지, 옆에서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너도 나도 자연스레 따라 하다 보니 그대로 굳어진 건지, 나름대로 결론을 내보려 했지만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담장 안에는 사장이 가장 많다.


내가 사장이라는 표현을 꺼리는 것처럼 신입이라는 표현도 쓰기를 꺼려한다. 담장 안에서의 신입은 새로 들어온 수용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직원은 신규라는 표현을 쓴다. 신규직원) 호칭도 조금 다르다. 8·9급은 부장, (간혹 9급은 담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7급은 주임, 6급은 계장, 5급은 과장이다. 부장이 제일 낮다. 그래서 간혹 후배들이 담장 밖에서 부장이라 부르면 많이 어색하다. 나를 부장이라 부른 나보다 몇 달 늦게 들어온 후배도 부장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말하는 한 부서의 장인 부장이 아니기에 담장 안에는 부장도 많다. 아마 사장 다음쯤 되지 않을까


높게 뻗은 회색 담장을 들락거리다 보면(물론 출퇴근이다) 조금은 다른 세상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든다. 사장이란 호칭에 기분 나빠하고, 부장이란 표현을 어색해하고, 신입이란 단어를 끝내 사용하지 않는다. 담장 안의 세상을 굳이 밖으로 끄집어내어 스스로 혼동한다.

무더운 여름 친구들과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씩 할 때였다. 콩국수는 원래 설탕을 뿌려 먹는 거라며 친히 친구들 콩국수에 설탕을 퍼다 부어줬다.

참사가 일어났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은 다른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