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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Oct 31. 2020

보들레르, 『악의 꽃』을 읽고




1.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

가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알바트로스」전문          


 알바트로스는 긴 날개를 가진 새이지만, 이 시에서는 저주받은 시인을 상징한다. 보를레르가 20살 정도였을 때, 그는 캘커타로 가는 배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는 긴 고립으로 해상생활을 견뎌냈고, 그 때의 무력함과 비참함을 아마도 이 시에 녹여냈을 것이다. 

 시는 힘 없는 알바트로스의 외양새를 비웃으며 동시에 시인 또한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가진 알바트로스와 같다는 시니컬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3연에서는 옛 시에서 늘 쓰이는 영탄적인 어조를 내고 있으며,‘구름위의 왕자’,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의 문장은 서로 대조되며 세속에서 시인이 지니는 비참함과 고립감을 강조한다. 

 시 안에서 ‘알바트로스’, ‘시인’의 이미지와 존재감이 겹쳐지며 시상을 확장시키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날개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2연과 4연의 마지막 문장이 시를 감각적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2.      

<자연>은 하나의 사원이니 거기서

산 기둥들이 때로 혼돈한 말을 새어 보내니,

사람은 친밀한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그리로 들어간다.     

어둠처럼 광명처럼 광활하며

컴컴하고도 깊은 통일 속에

멀리서 혼합되는 긴 메아리들처럼

향과 색과 음향이 서로 응답한다.     

어린이 살처럼 싱싱한 향기, 목적(木笛)처럼 

아늑한 향기, 목장처럼 초록의 향기 있고,

-그 밖에도 썩은 풍성하고 기승한 냄새들,     

정신과 육감의 앙양을 노래하는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의 확산력 지닌 향기도 있다.      

-「상응」전문          


 제목처럼 소재들의 상응이 눈에 띈다. ‘자연’은 ‘사원’이고, 동시에 ‘상징의 숲’이기도 하다. ‘혼돈한 말’은 시일 테고, ‘상징의 숲’을 들어가는 ‘사람’은 아마도 시인임에 분명하다. 공감각과 후각이 훌륭하게 드러나 있어, 시적인 기류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시어의 의미들을 아름답게 음미할 수 있도록 한다. 

 시집의 각주에 의하면,‘정신’과 ‘육감’의 개념은 천상계와 지상계의 상응과 연결되고, 마찬가지로 인간과 자연과의 상응과, 인간과 천상계와의 상응 또한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한 공존대립은 보들레르의 시적 원천이 되어준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기도 하다. 보들레르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세계와 이상의 세계, 혹은 자연의 세계의 어떤 아득하고 고결한 화합이 압도적으로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시집에서 발췌한 다섯 편의 시 중에서 가장 외우고 싶은 시였기도 하다.    







3.      

내 청춘 한갓 캄캄한 외우였을 뿐,

여기저기 눈부신 햇살이 뚫고 비쳤네.

천둥과 비가 하도 휘몰아쳐 내 정원에는

빠알간 열매 몇 안 남았네.     

나 지금 사상(思想)의 가을에 닿았으니,

삽과 갈퀴 들고 다시 긁어 모아야지,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곳곳이

커다란 웅덩이들 파놓았으니.     

누가 알리,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긴 이 흙 속에서

활력이 될 신비의 양분을 얻을지를?     

-오 괴로워라! 괴로워라! <시간>은

생명을 파먹고, 심장을 갉는 정체모를 <원수>는

우리 흘리는 피로 자라며 강대해지는구나!     

「원수」전문          


 시집의 각주에 의하면, ‘원수’란 시인의 나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고 한다. 영탄적인 목소리를 통해 보들레르가 살아냈던 세상의 절망과 괴로움이 직접적으로 읽혀진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직면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청춘에 대한 반성적인 태도도 느껴진다. 2연과 3연에는 청춘이기에 더더욱 보여줄 수 있는 패기 넘치는 목소리가 녹아 있다. 비참하고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굳건한 청춘의 아름다움이 읽혀져서 인상적이다. 


 앞의 시처럼, 여러 소재를 통한 공간감이 압도적이다. 첫 연에서 언급한‘정원’이라는 공간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뒤에서 ‘열매’,‘삽과 갈퀴’, ‘웅덩이’, ‘양분’, ‘생명’등의 단어가 화자의 정원의 모습과 생명력을 상상하도록 한다. 화자의 정원은 보들레르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보들레르의 시는 상징과 상응을 읽어나가는 아름다운 경험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작품이다. 영탄적인 어조가 조금은 상투적이고, 단어가 무거운 감이 있지만, 감각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있어주었기에 시에 몰입할 수 있었다. 







4.     

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마음 위에

무겁게 내리덮인 하늘이 뚜껑처럼 짓누르며,

지평선의 틀을 죄어 껴안고, 밤보다도 더욱 

처량한 어두운 낮을 우리에게 내리부을 때.     

대지가 온통 축축한 토굴감옥으로 변하고,

거기서 <희망>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로

마냥 벽들을 두들기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돌 때,     

내리는 비 광막한 빗밭을 펼쳐

드넓은 감옥의 쇠격자처럼 둘러칠 때,

더러운 거미들이 벙어리떼를 지어

우리 뇌 속에 그물을 칠 때면,     

별안간 종들이 맹렬하게 터져 울리며 

하늘을 향하여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니,

유사 고향을 잃고 떠도는 정령들이

끈질기게 울부짖기 시작하는 듯,     

-그리곤 복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차 행렬이

내 넋 속을 느릿느릿 줄지어 가는구나.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잔인 난폭한 <고뇌>가 

내 푹 숙인 두개골 위에 검은 기를 꽂는다.      

「음울」전문     



 ‘음울’이라는 감정이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시에서도 음울한 감정 선이 숨김없이 강렬하게 뻗어나가고 있다. 음울한 감정은 다양한 정황과 감각을 통해 극대화되며 시를 확장해내고 있다. 낯선 공감각이 우선 인상 깊었는데,‘하늘이 마음을 짓누르고’, 대지가 온통 축축한 토굴감옥으로 변하고‘, ’내리는 비가 감옥으로 둘러지고‘, ’넋을 줄지어 가는 긴 영구차 행렬‘와 같은 발상과 표현들이 좋았다. 옛 시임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현대적인 표현인 것 같았다. 또한 이 시에서 주목해볼 문장은 ’별안간 종들이 맹렬하게 터져 울리며 하늘을 향하여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니(...)‘의 부분이었다. 청각적인 문장이 시의 음울한 분위기를 고조시켜낸다. 마치 읽는 사람의 귓가에 종소리와 정령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 생생하기도 하다. 이 시는 마찬가지로 단어가 무겁고 감정 또한 계속 축 늘어지고 있지만, 감각적인 묘사와 감각들이 이어지고 있기에 미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며 사유를 효과적으로 남겨내고 있다.  







5.      

  몬앙팡 마 쇠외로

  저기 가서 같이 사는

감미로움 생각해 보렴!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고지고

너를 닮은 그 고장서!

  안개 낀 날씨 

  젖은 태양이

내 정신에겐 눈물 거쳐 반짝이는

  변화 무상한 네 눈의

  그토록 신비로운

그런 매력 풍긴다네. 

거기선, 일체가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로움, 고요함과 그리고 쾌락뿐.     

오랜 세월에 닦여 

  윤나는 가구들이

우리 방을 장식하리.

  가장 희귀한 꽃들

  은은한 용연향에

그들 향기 뒤섞고,

  호화론 천장, 

  깊은 거울들,

동양의 찬란함이여,

  거기선 일체가

  영혼에게 은밀히

그 감미로운 모어(母語)를 말하리.     

거기선 일체가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로움, 고요함과 그리고 쾌락뿐.     

-「여행으로의 초대」전문     


  사용된 시어처럼 ‘감미로운’여운을 남기는 시다. 공감각적인 아름다운 묘사가 이 시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동일한 구조의 시구를 반복하며 운율의 효과 또한 획득해내고 있다. 감미롭고 고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고, 후각의 감각이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호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재들과 후각의 감각이 이를 받쳐주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서글픈 여운을 남기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제안하는 화자의 발화를 ‘여행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나타낸 것이 참 세련되어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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