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를 보여주기 위해 몸을 낮추다
- 싱어게인 63호 가수, 세상을 잡아먹을 거 같은 사자의 기세
아이가 준비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작은 음악회에 갔다.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에서 학부모를 모시고 아이들에게 대중 앞에서 연주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은 음악회였다.
첫 번째 세션을 맡은 아이는 두 개의 곡을 준비했다. 요즘 이 학원에서 콩쿠르 곡으로 인기가 많다는 “나비”와 다른 한 곡은 “캐논“ 이었다.
잔잔한 캐논과 빠르고 슬로한, 마치 나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나비라는 곡이 대조를 이루는 거 같아 좋은 선곡이라 생각했다.
긴장하지 않고 곡을 야무지게 연주해내가는 아이를 보면서 익살스럽고 장난기 많은 내 아이가 맞나 하는 생각을 했다.
피아노 선생님은 내 아이가 피아노에 잘 맞는 성격을 타고났다고 한다.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말을 하고 나서 답변을 재촉하는 아이의 성격이 피아노에 잘 맞는다고 했다.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면 바로 음이 나오고, 또 그다음 건반을 누르면 또 음이 바로 반응하고, 자신이 누르는 손길에 따라 바로바로 소리를 내주는 피아노가 내 아이에게는 아주 잘 맞고, 그래서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고 한번 시작하면 지독하게 파고드는 아이를 보면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피아노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건,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가 보여주는 “기세”가 있다고 했다.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기 전, 조용한 세상에 던져지는 첫 음을 내기 위해 준비하는 그 “기세”를 보고 이 아이에게는 피아노가 잘 맞다고 했다.
너무 세면 세상의 소음이 된다. 부드러우면서도 임팩트 있게 시작해야 하는 첫음을 만들기 위해 온전히 집중하는 아이의 “기세”가 좋다 했다.
맞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세”가 필요하다.
오랜 직장생활 동안 잊고 지내던 그 “기세”, 준비해 왔던 걸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시작하는 그 첫걸음을 어떤 자세로 내딛을지 정성을 다하면서도 단호하게 뻗어 낼 준비를 마친 그 “기세” 말이다.
오랫동안 홀로 땀 흘리며 준비한 시간들이 만든 에너지 가득한 손끝, 연주를 보기 위해 자리에 꼿꼿이 앉아 있는 사람들(세상)이 마치 있지도 없지도 않은 거처럼 시크한 눈빛으로, 눈은 온전히 피아노 건반에 집중하고, 몸과 발은 피아노와 한 몸이 된다. 건반이 내는 소리와 함께 웅크렸다 폈다가 부드러운 곡선을 유지하다가도 강력한 수직의 몸을 만들기도 한다.
무언가의 시작을 준비하는 당당한 “기세”.
설렘임과 긴장감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 그 ”기세“를 아이의 모습에서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