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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수 Dec 06. 2019

그래서 치앙마이

#1_ 열흘 만에 떠나다

11월의 여행을 좋아한다.

다른 점은 몰라도 비수기라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빠르게 이루어지는 수속들, 한산한 거리들과 적당한 날씨, 흥은 부족하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11월의 여행을 좋아하지만 올해는 떠나지 않기로 했었다.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느꼈다.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다짐도 있었다.

하지만 삶이란 어떠한가.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특히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는 삶이 나를 조종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휴가날짜를 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행이 필요하다고 머릿속을 재구성했다.

죽은 줄 알았던 여행 세포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던 모양이다.

하던 일은 잠시 멈추어도 되고, 하던 생각은 멈춰야 했다.(근데 하던 생각이 뭐였지?)

우리는 11월의 여행을 이어가야 하는 운명이었고, 결정을 내렸다. 열흘 후에 떠나기로…

여러 후보지가 있었지만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계속 서로 다른 여행지를 보던 우리는 마침내 같은 장소에 시선이 꽂혔다. 우리의 결정에 미심스러움은 1도 없었다.

오랜만에 열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들뜬 기분이 찾아왔다.

'나 여기 있었다오…'


그렇게 어젯밤 늦게 도착한 곳은 치앙마이다. 작년 12월에 방콕 공항에서 그랩 기사의 실수로 30분 동안 헤맸던 기억이 났다. 낯선 곳에 도착하게 되면(그것도 오밤중에) 무언가 어긋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작은 공항은 유심, 환전, 택시까지 빠르고 편리했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지역답다. 그랩을 부를 필요 없이 150밧의 정찰제 택시로 호텔까지 데려다준다.   


도착한 호텔은 이국적인 느낌의 예쁜 곳이다. 밝은 웃음의 친절한 호텔 스텝이 우리에게 입구의 신발장 문을 열어준다. 이곳은 맨발로 들어가는 곳이란다. 신발 벗고 들어가는 식당과 흡사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낯선 곳에서는 어색했다. 양말도 신지 않은 생맨발이라 조금 찝찝하다가 시원한 나무 바닥에 금세 익숙해졌다. 방으로 안내해주는 유쾌한 그녀 덕분에 피곤하고 얼떨떨한 우리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우리의 큰 짐 하나를 번쩍 들어서는 방까지 가져다주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짜리 호텔이었다. 3층에 위치한 우리 방은 예상보다 훌륭했다. 하룻밤 잠만 자려고 대충 선택했는데 깜짝 선물 같은 곳이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배가 고프냐고 물어보면서 간식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비행기, 예상보다 시원한 날씨, 예상보다 빠른 수속, 예상보다 멋진 호텔… 우리 삶에서 이렇게 많은 일들이 예상보다 좋기가 쉬웠던가. 어느새 나의 기대치는 바닥을 치고 있었던가. 화장실 바닥 타일마저 예쁜 것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그녀에게 팁도 주지 못했다. 대신 다음날 베개에 5달러를 두고 나왔다. 갑자기 떠나온 치앙마이는 우리를 그렇게 편안하게 반겨주었다. 집에서는 답답해서 양말을 신지 못하는 나에게 딱이었다.


@ChiangMai_mini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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