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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근 Oct 23. 2021

자투리 시간에 쓰는 글

지난주 목요일 퇴근길, 거리를 걷는데 50미터 앞에 한 여자가 보였다. 그는 검은색 운동복을 입은 채 힘차게 걸어오고 있었다. 몇 초 뒤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영어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아마 운동하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으리라.


하루 24시간, 시간은 무심하다. 시간은 기다리는 법을 모른다. 현재는 찰나의 순간이다. 눈을 깜빡이면 현재는 과거가 된다. 현재를 붙잡으려는 순간 현재는 과거로 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는 쌓이고 현재는 새로운 현재로 바뀐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충분한 자유 시간을 얻었음에도 의미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을 반성하고, 내일은 오늘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애석하게도 다짐은 오래가지 않는다. 며칠만 지나면 굳게 다짐했던 과거는 희미해지고 시간을 훌훌 허비하는 현재와 마주친다. 다짐, 망각, 다짐, 망각의 8자 모양 둘레를 빙글빙글 돈다.




시간을 쓰는 일 중에서 가장 보람이 느껴지는 행위는 글쓰기다. 글을 쓸 때만큼 충만해지는 순간이 없다. 쓰고 지우고 생각하고 고치는 작업이 즐겁다. 어떤 일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면서도 현재가 그대로 멈추는 것 같다.



글은 자투리 시간에 잘 써진다. 컴퓨터 앞에서 각 잡고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출근길 버스 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시큰둥하게 한 자씩 쓸 때 진도가 잘 나간다. 거리를 걸을 때,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릴 때, 설거지할 때 글의 아이디어가 솟아오른다.


자투리 시간은 귀하다. 브런치 글쓰기, 책 쓰기의 기반은 자투리 시간이다. 출퇴근 버스는 애용하는 작업실이다. 창밖을 바라보며 책의 주제를 궁리하고 목차를 구성한다. 마흔 꼭지의 분량을 채우고 퇴고를 마친다.


흐리멍덩하게 보낸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시간, 유튜브에 접속해서 낄낄거려도 되는 시간을 글 쓰는 시간으로 바꾸며 행복을 느낀다.


자유 시간이 넘치는 주말보다 직장에 향하는 출근길에 글이 더 잘, 많이 써지는 게 신기하다. 글이 안 써지는 날에는 일부러 시내버스라도 타야 할까. 출퇴근 시간을 글 쓰는 시간으로 바꿔서, 오늘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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