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마음을 활짝 열고 쓰세요

by 조형근

어제는 재택근무를 했다. 집에서 일할 때는 방문을 닫아놓는다. 딸도 유치원 방학이라 집에 있었다.


딸은 심심할 때마다 방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민다. 슬금슬금 옆에 와서 모니터를 바라보기도 하고 내 무릎 위에 올라와서 같이 일하겠다고도 한다. 회의하는데 들어와서 소리 지를 때는 아주 난감하지만 대체로 귀엽다.


딸이 4시 36분에 들어왔다.


"아빠, 언제 거실로 나올 거야?"


"일 다 하고 5시 넘어서 나갈게"


"5시 3분?"


"아니, 5시 00분"


딸이 갑자기 깔깔하고 자지러진다.


"5시 '영영분'이 어디 있어, 아빠는 장난꾸러기"


딸이 하도 즐겁게 웃는 탓에 나도 잠시 일을 잊고 함께 웃었다.

'00분, 이게 뭐라고 그리 웃는 건지'

00분이라는 말에 웃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불현듯 《강원국의 글쓰기》의 한 대목이 스친다.


"무엇보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으레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 상상력은 여기서 나온다. 정돈에 기대지 말고 혼돈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엉뚱한 생각이나 공상, 망상을 즐겨보자."




그러고 보니 누가 지금의 방식으로 시간을 정한 걸까? '10분을 1분이라고 해도 되지 않나? 24시간을 60시간으로 하면 헷갈리지 않고 좋은 것 아닌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시간의 유래를 검색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태양의 움직임을 살펴 그때 사용하던 60진법으로 시간을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처음부터 24시간, 60분, 60초는 없었다. 해가 뜨고 저무는 시점만 있었을 뿐이다. 누군가가 편의를 위해 시간을 정의했을 테고 서서히 당연한 걸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

당연한 일을 살짝 비틀어서 생각하는 것.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 몸에 익혀야 할 습관이다. 다양한 관점으로 현상을 들여다볼 때 좋은 글이 써진다.


남과 똑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면 남과 다른 글을 쓸 수 없다. 성현의 글을 따라 쓰고 똑같이 말한들 내 글과 말은 아니다. 좋은 문장을 디딤돌 삼아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야 하지만 마지막에는 거인의 정수리 위까지 올라가야 한다. 내 생각, 경험, 관점을 융화시켜 나를 써야 한다.


촉수를 뻗어 다르게 바라보는 습관은 글감을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글감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라면 얼마나 좋을까.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될 텐데.


글감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생긴다. 평소에 이 생각 저 생각을 교차시켜야 사과 맛을 볼 수 있다. '이건 왜 이럴까, 저건 이렇게 쓰면 어떨까?'라며 궁리하고 숨겨진 사물의 뒷면을 봐야 한다.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글감이 되고 글쓰기로 이어진다.



1+1은 2가 아니라 창문(田)이라는 초등학생 시절 유머가 떠오른다. 나는 친구에게 듣고 깔깔 웃었고 다른 친구에게 써먹었다.


38살이 된 나는 웬만한 유머에는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나이와 웃는 횟수가 반비례한다. 얼굴이 돌처럼 굳어간다.


'00분' 개그에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순수함, 천진난만함을 가진 딸이 부럽다.


"마음아, 어려져라."


딸의 마음을 닮은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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