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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건지

by 메티콘

세밑한파가 매섭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또 한 해를 생각해 볼 때 마음이 갑갑해지곤 한다. 세상살이가 녹녹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지수가 있다면 먹어가는 나이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퍼센티지가 아닐까. 마음이 답답해지면 몸도 무겁고 뭘 먹어도 쉽게 소화가 되지를 않는다. 이럴 때 생각이 간절한 하나가 있다. ‘싱건지’

싱건지는 ‘싱거운 김치’라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다. 표준말로는 동치미라 한다. 어릴 적부터 싱건지라 들으며 먹었기 때문에 동치미라하면 왠지 그 맛이 살지 않는다. 싱건지를 만드는 법은 통무에 소금물을 부어서 담근다. 이때 생강·파·청각·풋고추를 묶어서 넣는다. 통배추 또는 맑게 거른 육수나 찹쌀 끓인 것을 넣기도 한다.

고구마와 동치미.jpeg

찬바람이 쌩쌩 불고 내린 눈이 얼어 바싹거리는 소리를 낼 때 땅에 묻은 독의 뚜껑을 연다. 시금한 내음이 올라오고 입에 침이 고인다. 바가지로 휘휘 저어 떠서 일단 한입 마신다. 탄산의 톡 쏘는 맛, 생강의 향긋한 맛, 청각의 비릿한 맛, 배추의 들큼한 맛, 무의 아릿한 맛에 겨울의 찌릿한 맛까지. 시린 손마디를 호호 불어가며 함박에 건더기와 멀국을 퍼 담는다. 솜이불을 펴 뜨뜻하게 데워놓은 아랫목에서 밤고구마를 베어 물고 김을 허허 불어내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그릇을 집어 들이키는 그 청량한 맛이란!

핸드폰을 들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대뜸 “싱건지 담았어요?”라고 물어본다. “잘 익었다. 얼른 와서 퍼가라!”라고 하신다. 어느새 답답한 가슴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 든다. 싱건지, 네가 있어 이 팍팍한 날들도 기껍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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