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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Apr 07. 2022

모순, 그 사랑의 애틋함에 대하여

양귀자의 『모순』,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이모도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읽은 책을 이모가 읽은 적이 없고, 이모가 읽은 책을 어머니가 읽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이모는 말했다. 진진이 너, 다리를 찍는 사진사 이야기 아니, 하고 묻던 이모. 아 그 소설, 하면서 제목을 대 주었더니 한참 동안 독후감을 쏟아 놓던 이모. 그리고 또 뭐랬지? 아, 그랬어. 요샌 양희은이 부르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 노래를 피아노 반주로 부르고 또 부르다가 딸기잼 한 냄비를 다 태웠다던가.

- 『모순』, 양귀자, 살림, 2007, p. 57


'다리를 찍는 사진사 이야기'는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우티의 다리』를 말한다.


모순은 이런 점이야. 만일 로버트 킨케이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오랜 세월을 농촌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지가 않구나. 나흘 동안, 그는 내게 인생을, 우주를 주었고, 조각난 내 부분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주었어. 나는 한 순간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단다. 그가 내 의식 속에 있지 않을 때도, 나는 어디선가 그를 느낄 수 있었고,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

- 『매디슨 카우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공경희 역, 시공사, 2013, p. 191


모순(矛盾)은 『한비자(韓非子)』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옛날, 창과 방패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 창은 모든 방패를 뚫는다.

그리고 그는 또 말했다.

이 방패는 모든 창을 막아 낸다.

그러자 사람들이 물었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 『모순』, 양귀자, 살림, 2007, p. 271


진모의 행동을 꾸짖는 천사의 얼굴은 엄격했다. 그건 옳은 말이었다. 졸개들과 더불어 연적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갈겨 대는 짓 따위는 해서는 안 될 일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나라면 주리처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모순』, 양귀자, 살림, 2007, p. 158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모부는 심심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돌출을 못 견뎌하고 파격을 혐오한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어쩌면 나는 이모의 넘쳐 나는 낭만에의 동경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을 더 쉽게 선택하는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이모부 같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이모의 낭만성을 나무라는 것이 내게는 훨씬 쉽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 『모순』, 양귀자, 살림, 2007, pp. 212~213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은 사진작가 김장우를 사랑했지만 결혼식은 직장인 나영규와 한다. 『매디슨 카우티의 다리』에서 프란체스카 존슨은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를 마음 깊이 연모했지만 결혼 생활은 농부인 리처드 존슨과 함께한다. 

 프란체스카 존슨이 로버트 킨케이드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덕분에 무덤덤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듯이 안진진은 김장우와의 가슴 떨리는 사랑과 아픔을 겪었기에 나영규와 단조로운 앞날을 약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두 작품을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사랑하기에 헤어져야만 하는 "모순"이 아닐까!


리처드는 그가 다다를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해. 때로는 그가, 화장대에 숨겨 놓은 마닐라 봉투를 몰래 본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어. 그이가 죽기 직전, 내가 디모인의 병원의 침상에 앉아 있을 때,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어, "프란체스카,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미안하오, 당신에게 꿈을 심어 주지 못해서." 우리가 함께 살았던 생애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지.

- 『매디슨 카우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공경희 역, 시공사, 2013, p. 192 


두 소설 모두 이루지 못한 사랑이 주제인 노래를 담고 있다. 『모순』은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브 몽땅의 <고엽(Les Feuilles mortes, Autumn Leav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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