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 인식

긍정의 그림자, 동일한 거짓말 무늬

by 김이름

「AI 국민 관리 기본법 시행규칙」


제15조(패턴 분석 및 예측)

① AI 관리위원회는 국가망 접속 기록을 분석하여 다음 각 호의 패턴을 탐지한다.

1. 결손율 급상승 패턴

2. 로컬 AI 사용 증가 패턴

3. 공감망 이탈 징후


② 제1항에 따른 패턴이 감지되면, 해당 지역의 프롬프터 파견을 우선 배정한다.




2091-SH-113487 사건 발생 후 처리해야 할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그렇게 썩 신경이 쓰이는 업무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후 며칠도 되지 않아 호출음이 이어졌다.

한 번이 아니었다. 연속된 번호, 연속된 결손율.


2091-SH-113501.

2091-SH-113502.

2091-SH-113503.


모두 2091-SH-113487과 같은 구역, 결손율 80% 이상.

통신 화면에 민서의 메시지가 떴다. 텍스트에서 피로가 짙게 내려앉은 게 느껴졌다.


"패턴이에요."

"갑자기?" 내가 물었다.

"갑자기가 아니라, 아 뭐 이제야 갑자기 드러난거죠. v5 보간이 정교해지면서... 오히려 균열이 더 잘 보여요."





첫 번째 현장. 신고는 층간소음이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른 소음은 없었다. 공백만이 있었다.


임세X. 스물 아홉. 프리랜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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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요약]

- 정서 패턴: 90일 중 78일 '평온', 8일 '스트레스', 4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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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78일.

나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또 기록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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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요약]

- 작업 시간: 22:00 ~ 04:00 집중

- 식사: 배달, 12분

- 대화 없음

- 독서 고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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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평온, 안정.

모두 잘 다듬어진 단어였다.

그러나 클라이언트 로그에는 수정 요구와 취소가 줄줄이 찍혀 있었다.


캐시에 남은 목소리는 달랐다.

"오늘 작업은 별점 5개"

"내일은 더 창의적으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데이터가 너무 예쁘다.'





두 번째 현상. 조민X, 서른 넷. 아이를 키우는 엄마.

결손율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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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요약]

- 정서: 90일 중 81일 '평온'

- 건강: 규칙적 생활, 충분한 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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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 신생아 엄마에게 '충분한 수면' 이라니.

캐시엔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아이가 잘 자고 있어."

"수유 시간이 너무 즐거워"


그러나 IoT 로그는 밤마다 알람을 네 번씩 울리고, 세탁기가 하루 두 번 돌며, 울음소리가 새벽 내내 이어진다고 기록되었다.


그녀는 로컬 AI에만 '좋은 엄마'로 남으려 했다.




세 번째 현장. 김도X, 쉰 둘. 중소기업 대표.

결손율 98%.


캐시 기록:

"사업이 잘 되고 있어."

"자금 운용이 원활해."


그러나 신용정보원은 대출 연체, 이직률 40%, 매출 감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세 건이 아니라, 하나였다.

모두 같은 패턴. 같은 거짓.





열 두번째 사건은 달랐다.

박영X. 마흔 일곱, 번역가. 그녀는 스스로 신고했다.


거실 벽엔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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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AI 가이드라인]

- 감정 기록: 중간값 유지

- 일상 보고: 긍정적, 평범하게

- 건강: 평균 수준

- 대인 관계: 최소 접촉

※ 주의 사항: 극단 감정 금지, 일관성 유지, 외부 동기화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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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을 삼켰다.

이건 개인의 버릇이 아니었다. 조직화된, 계획된 저항이었다.


박영X가 말했다.

"우린 AI에게 진짜 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점수로 환산되는 존재가 되기도 싫고요. 그냥... 숨을 권리가 있다고 믿어요."


그녀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더 무거웠다.




보고서를 쓰려 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조직적 데이터 회피 행위?'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저항?'


그 단어들은 곧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 것이다.


민서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다른 구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요. 이미 마흔 일곱 건."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콘솔 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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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프트 입력]

"피고의 로그 결손은 반복적·의도적 요소가 있다. 하지만 그 동기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짓기 어렵다.

행위 전반이 타인에게 직접적 피해를 야기한 바는 아직까지 없으며, 생활 전반에서 통상적 범위를 벗어난

위험성도 명확히 확인이 불가하다.

따라서 본 사인은 단순한 회피 행위로 규정하기보다는, 사회적·정서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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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를 누르는 순간, 심장이 가볍게 떨렸다.

그 순간 손목 밴드가 동시에 진동했다.


"오늘의 감정을 기록해주세요."


직접 입력이 귀찮을 경우 화면 위에 떠오른 단어들을 간단히 터치만 하면 된다.

키워드는 전부 불안. 피로. 혼란.

내가 지금 가진 것들.

그리고 이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동안 느낀 나의 감정. 결코 노출하고 싶지 않은 것들.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라니.

그 문장조차 이미 위험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손가락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평온' 을 타이핑했다.

아니, 평온과 닮은 무언가. 흔적 없는 색,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값.


화면이 '기록 완료' 로 바뀌는 순간 나는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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