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은 연결, 지워지지 않은 기록
「AI 국민 관리 기본법 시행령」
제12조(로컬 AI 운용 제한)
① 국민은 정부가 지정한 국가망 AI를 사용하여야 하며, 비접속형 로컬 AI 운용은 다음 각 호의 경우를 제외하고 금지한다.
1. 국가가 승인한 특수 직무 수행 시
2. 장애인 보조 기기 전용 운용 시
3. AI 관리위원회가 별도로 허가한 경우
② 제1항 각 호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로컬 AI를 운용한 경우, 기록 회피 행위로 간주한다.
제14조(기록 결손율 산정)
① 결손율은 다음 식에 따라 산출한다
결손율(%) = ((수집가능한 데이터의 양 - 수집된 데이터의 양) / (수집 가능 데이터의 양)) X 100
② 결손율이 20%를 초과하면 관리 대상에 편입하며, 80%를 초과하면 형사 절차를 개시한다.
「AI 국민 관리 기본법 시행규칙」
제8조(결손율 조사)
① 결순율이 80%를 초과한 경우, AI 관리위원회 조사관이 다음 절차에 따라 현장 조사를 실시한다.
1. 단말기 및 로컬 저장소 확보
2. 국가망 접속 기록 검증
3. 동기화 이력·보간 데이터 비교 분석
제9조(로컬 AI 판정)
① 다음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면 로컬 AI 운용자로 판정한다.
1. 최근 30일간 국가망 접속 빈도 1회 이하
2. 마지막 동기화 후 72시간 이상 경과
3. 국가망 기록 대비 로컬 추론 처리량이 5배 이상
사람들은 하루의 색을 조금씩 AI에 남긴다. 그 조각들이 모여 한 사람의 기록이 된다.
하지만 여기엔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달력에서 날짜를 죄다 뜯어낸 듯, 시간의 결이 사라져 있었다.
오늘은 그 공백을 채우는 일이 내 몫이었다.
통신 아이콘이 깜빡였다. 데이터 수사관 민서였다.
"결손율 92%. 전형적이네요. 로컬 AI 사용자 맞아요."
"확정이야?"
"집안 IoT는 기본 기기만 있고, 국가망 접속은 월 평균 1회 미만. 중앙 로그엔 발자국조차 없네요. 본인 단말에서만 AI를 돌린 흔적이 있어요. 마치 금고 안에 가두어 두고 자기만 쓰는 비서 같달까. 외부 동기화는 전혀 없네요."
"그래도 심박은 '정상'으로 올라와 있었잖아."
"그건 착시라고 보는 게 맞죠. 손목 밴드가 사흘 전에 마지막으로 동기화 됐거든요. 그 뒤로는 같은 숫자만 반복 재생 됐어요."
반복 재생.
고장난 시계가 같은 시각을 가리키듯, 사흘 동안 심박은 '정상' 이라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버그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매끈했다. 실은, 빈칸을 평균값으로 메우는 보간 알고리즘의 결과이지만.
지난달 배포된 v5 업그레이드 공지가 떠올랐다.
"데이터 불충분 시, 공감망 평균값으로 자동 보완 - 사고 예방 기능 강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뒤에는 기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불충분이라는 단어 대신, 매끈한 곡선이 채워진다.
빈칸을 빈칸으로 남기지 않는 기술. 그리고 그 곡선이 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
"프롬프트 보강하시죠?"
민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단 로그부터 확인할게."
판결 준비 단계에서 개별 로그는 열람할 수 없다.
AI가 걸러내고 요약한 '뷰' 만이 우리 손에 들어온다. 그건 안전장치였지만, 동시에 눈가리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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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요약]
- 경제 활동: 프리랜서 추정, 소득 불규칙, 현금 사용 비중 높음
- 대인 관계: 메시징 기록 저빈도, 최근 30일 방문자 없음
- 정서 패턴: 최근 90일 중 83일 '평온', 5일 '가벼운 불안', 2일 '기쁨'
- 건강 패턴: 불규칙 식사, 간헐적 알코올
- 상담로그: 없음(결손 대체: 평균 공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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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83일'
나는 화면을 보며 미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평온은 가장 흔하게 채워 넣는 값이다. 기록이 없을 때 평균이 가져오는 표정. 우리 시대의 '평온'은 사실상 '기록 없음'과 다를 바 없었다.
현관 신발장 위, 작은 카메라 하나가 거실과 주방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법정에 제출 가능한 건 사람 행동의 '추정치'까지 이다. AI는 영상 프레임을 분석하여 '심리 상태 추정'을 붙인다.
"지난 30일, 주방·거실 행동 요약"
내 요청에 화면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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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요약 / 거실 + 주방 / 30일]
- 규칙적 스트레칭: 새벽 05:55 ~ 06:10 (주 4회)
- 주방 사용: 하루 1회 이하, 평균 7분
- 대화 행위 없음
- TV/스피커 사용 저빈도
- 바닥 제자리 반복 이동(1m 이내) 빈도 증가: 마지막 7일
- 손목 압박 행위(왼손으로 오른쪽 손목) 하루 평균 6회 → 마지막 3일 23회
- 추정 정서: 저강도 불안(마지막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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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83일' 옆에 붙은 '저강도 불안 3일'이 기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평균값의 매끄러운 표면 위에, 실제가 새어 나온 자국이 맺혀 있었다.
주방에는 그을음이 둘러진 냄비 하나.
반쯤 비어 있는 술병.
유통기한이 지난 소스 몇 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슬리퍼를 반듯하게 맞추어 높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프롬프터는 현장을 건드리면 안된다. 대신 손목 밴드를 들어 올렸다. 전원은 꺼져 있었다. 통신 로그에는 반복된 동기화 실패 기록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민서, 밴드 로그도 보간됐어."
"알아요. v5 보정 때문에 그래요. 결손값을 평균으로 덮는 거죠."
"평온은 진짜가 아니야."
"대부분은 그걸로 충분하거든요. 다들 데이터를 주니까. 이건 예외죠."
예외가 자꾸 쌓이면, 언젠가는 그게 규칙이 된다. 나는 그 말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