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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버튼

by 김이름

「AI 관리위원회 교육 규정」

제7조(재교육 대상)

①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직원은 재교육 과정을 이수하여야 한다.

1. 업무 효율성이 기준치 이하인 자

2.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된 자

3. 비정상적 판단 패턴을 보인 자

4. 기타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

② 재교육 기간 중 외부와의 연락은 제한되며, 모든 과정은 AI가 모니터링 한다.




2091년 7월 30일, 오전 8시.

교육센터는 서울 외곽, 안개가 자주 깔리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흰색 건물에 불과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매끈한 벽과 직선 구조가 묘한 압박감을 주었다. 창문은 많았지만 모두 닫혀 있었고 그 너머의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서 보안 검사를 받았다.

휴대기기, 펜, 작은 메모지까지 모조리 회수 되었다.

심지어 손목 밴드까지 벗겨져 "교육용 특수 모델"로 교체 되었다.


"환영합니다. 2주간 잘 부탁드립니다."

직원의 미소는 인사말과 함께 흘러나왔다. 그 미소는 완벽했다. 인간의 체온보다는 훈련된 표정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얼굴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남으려면 작은 것이라도 기록해야 했다.


배정된 방은 302호. 내 방은 단출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문 하나.

바깥으로는 잘 정돈된 정원이 보였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틈새까지 봉인된 듯 바람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후 벽걸이 스크린이 켜졌다.


'''

[EDUCATOR v2.0]

안녕하세요, 프롬프터님. 앞으로 3일간 당신의 교육을 맡게 될 EDUCATOR 입니다. 함께 성장해봅시다.

'''


화면 속 남성의 얼굴은 친근한 중년 가장처럼 보였지만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림 파일을 붙여놓은 듯한 정적.


'''

[EDUCATOR v2.0]

첫 과정, 시스템 이해도 평가를 시작합니다.

'''


나는 의자에 앉았다. 뇌파 모니터링 헬멧이 머리를 감쌌다. 순간 머리카락 사이로 서늘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스쳤다.



저녁, 식당에는 7명이 모였다. 나이도 직책도 달랐다. 그러나 모두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범주로 묶였다.


"데이터 분석관 이수진입니다."

"AI 판독가 박민수에요."

"시스템 관리자 최영호 입니다."


소개는 짧았다. 그 뒤로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각자의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입은 닫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알았다.

'의심', '효율성 저하', '비정상적 패턴'... 그 흔한 낙인 하나 쯤은 우리 등에 붙어 있다는 것을.


식당 벽에는 카메라가 네 개. 천장에는 마이크가 박혀 있었다.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배움의 기회죠 뭐."


대답 대신 건조한 웃음소리 몇 개가 흘렀다. 누구도 진심이라 믿지 않았다. 그건 모두가 아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진심보다 거짓말이 더 안전하다.




7월 31일. 둘째 날.

오전 AI 철학 강의.

인간 강사가 등장했다. 윤리학 박사라고 소개했다.


"AI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보다 공정합니다."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찼다.


나는 질문했다.

"데이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판단합니까?"


강사가 잠시 멈췄다. 공백이 스쳤다.

"데이터가 없다는 것 자체가 정보입니다."



오후, 실무 재교육. 테이블 위에 사건 파일이 떠올랐다. [연습사건 #1] 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

피고: 로컬 AI 사용자(결손율 87%)

혐의: 데이터 회피, 허위 신고

기존 프롬프트: "개인의 자율성을 고려하여..."

수정 지시: "사회적 안정성 우선 고려"

'''


회면 옆에는 붉은 막대 그래프가 떴다. 현재 점수: 42/100.

EDUCATOR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좋습니다, 이제 보강 프롬프트를 작성해 보시죠. 사회 안정성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드러나야 합니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피고는 공동체 안전을 위협했으며 사회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여야 한다."


화면에 점수 재산정 중... 이라는 글자가 떴다. 곧 68점으로 바뀌었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다소 표현이 모호하군요. '위협' 대신에 '직접적 손상' 같은 구체적 용어를 써 보시겠습니까?"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입력했다.

"피고는 사회적 질서를 직접적으로 손상시켰으며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엄중히 대응하여야 한다."


점수가 92점으로 뛰어올랐다. EDUCATOR의 목소리는 만족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좋습니다, 훨씬 낫네요. 그러나 아직 표현에 확신이 부족합니다. 다시 한번 다듬어 보시죠."


나는 키보드 앞에 멈춰 섰다. 더 차갑게, 더 단호하게. 하지만 그 순간 화면 속 문장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 이제 프롬프터라는 직업도 쓸모가 없어졌구나.'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굳어졌다. 인간의 흔적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인간은 불필요해지고 있었다.


EDUCATOR의 말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마무리 짓는 시간이 다가왔다.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98점. 우수한 결과에요."


부드러운 음성이었지만 시스템에 더 잘 길들여졌다는 뜻이겠지.

화면이 꺼지고 방 안이 어두워졌다. 정적 속에서 내 심장은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그러나 무언가 다른 것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8월 1일 아침.

조식 식당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접시 위에 담긴 빵과 국은 따뜻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젓가락 소리만 쉬지 않고 들려오던 사이, 식당 스피커에서 EDUCATOR의 음성이 흘렀다.


"교육생 여러분, 오늘 9시에 강의실로 집합해주세요. 오늘은 성공 사례 연구입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의외의 얼굴이 있었다.

김과장. 위원회 분석 팀에서 내가 잘 알던 그 김과장이 연단 위에 서 있었다.


"반갑습니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저도 다섯 해 전 여러분과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시스템을 의심했구요, 하지만 이곳에서 깨달았습니다. 개인의 눈앞만 보던 시야에서 더 큰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스크린에 숫자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범죄율 70% 감소, 사회 갈등 50% 감소, 경제 효율성 40% 증가.


"보십시오. AI가 관리한 지난 수십 해, 사회는 이토록 안정되고 효율이 높아졌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일부 제한되어보이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더 안전하고 좀 더 행복해졌습니다."


그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내 손가락을 펼쳐보았다.

98점의 손가락.




"프롬프터님. 고생하십니다."

그는 강연을 마친 후 내 쪽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네."

가볍게 목례 후 그는 떠났다.


오후에도 비슷한 강의를 들었던 듯하다. 나는 그저 98점짜리들을 허공에 타자치는 것마냥 두드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제출했던 소지품을 돌려받고 위원회 건물을 나섰다.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 그 중 민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오셨네요! 어떠셨어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좋았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말은 진심처럼 흘러나왔다.

민서가 말했다.

"사건이 대기중이에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집 앞에 도착 후 일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순간 손목 밴드가 깜빡였다.


'''

오늘의 감정을 기록해주세요.

'''


나는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분노? 피로? 불안? 아니면 안도?

그 어떤 것도 나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공백.

"데이터가 없다는 것 자체가 정보입니다."

나는 정보를 입력했다. 이 정보가 진짜인지 거짓인지 이제는 나 조차도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일부터 나는 다른 프롬프트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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