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 카메라 할아버지도, 여행까지 와서 전도하는 사람도 아닌 바로 내동생
오늘은 몽골을 떠나는 날이다. 공항으로 가기 직전에 간단테그치늘렌 사원을 방문했다. 몽골에 오는 첫 날은 히트택 등으로 무장을 하였지만 떠나는 날에는 반팔을 입을 정도의 날씨였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모두가 문턱을 넘어오는데 독실한 교회 신자이신듯한 무리의 여행객들은 사원을 넘어오질 못했다. 마음속으로, 뭐지 결계 같은 게 있나 라고 생각하던 그때, 등 뒤에서 "다른 신을 모시는 건 잘못된건데"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래서 안 들어오시는군. 4박 5일 동안 너무나도 익숙해진 그들의 목소리에 나도 어느덧 적응하고는 사원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 무리 중 권사님으로 불리우는 사람이 사원 내부로 달려들어왔다. 그리고는 가이드님께 몽골은 러시아의 속국이라고 외쳤던 할아버지께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이고 할아버지, 카메라 안 무거워요? 너무 정정하셔."
"나이가 이정도 됐으면 죽어야지."
"무슨 그런 말씀 마셔요. 그런데 혹시 교회 다니세요?"
"아니 나는 교회 안다녀."
"하나님을 믿으셔야지..."
대화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여행 내내 대포 카메라를 들고 혼자 다닌 할아버지께 다정한 말동무가 되어 주는 저들은 대체 무엇인가. 하지만 거기에 이제 전도를 곁들인....
자꾸만 라디오처럼 들려오는 저들의 대화는 다정하다+이상하다+찝찝하다+대단하다의 감정을 내 마음속에 남겨두었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종종 떠올리게 되었다.
드디어 집에 간다. 사원을 한 바퀴 걷듯 둘러보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도시 외곽을 빠져나온 버스는 막힘없이 초원 사이의 도로를 달렸고 금새 공항에 도착했다.
진짜 마지막 일정인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공항에서 카레를 먹었고 우리 테이블에는 그중에 제일 젊어보였던 부부가 와서 앉았다. 여행 마지막이라 그런지 그분들과 술술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기대보다 별을 많이 못 본 것 같아 아쉬웠다는 부부의 이야기, 그리고 승마를 했던 곳의 경치와 그때 그 장소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 등의 내용이었다.
발권 후 짐을 부쳤다. 텍스 리펀 기계 앞에서 동생과 버벅이는데 지나 가이드님이 오셔서는 수월하게 버튼을 눌러 진행을 도와주셨다. 여행 기간 동안 너무 즐거웠고 재미있었다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고 싶다는 등 아쉬운 마음을 담아 인사를 했다. 같이 사진 찍자고 왜 한 마디를 못했을까, 지금도 후회가 된다. 초원에서도, 사막에서도, 트레킹 중에서도 말하고 싶었는데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모든 여행을 통틀어 제일 제밌었던 가이드님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후회를 뒤로 하고 비행기 타기 전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마트에서 사지못한 여러 선물용 초콜릿을 구매하고 동생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듯 달려간 곳이 있었다. 바로 카페.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만 했다. 4박 5일 동안 따뜻한 블랙 커피만 마신 우리에게는 아아메가 필요했다.
한번 쭈욱 커피를 흡입하고는 카아- 하는 감탄을 내뱉고 여행의 후기를 서로 공유하며 비행기를 기다렸다.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고, 잠도 오지 않았다. 가져간 책도 다 읽어도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다. 동생은 예능을 보고 있었는데 이어폰을 한 짝 전달받아 예능을 보며 뇌를 영상에 맡길 즈음에 곧 착륙하겠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30분 뒤 비행기는 인천 공항에 내려왔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을 이야기지만, 우리에겐 미션 하나가 남아있었다. 동생이 김포 공항으로 무사히 넘어가서 제주도행 마지막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다음날 오전 엄마의 내시경 예약이 있었고 동생이 보호자로 가야하기 때문에 오늘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수화물이 늦게 나오기 시작했고, 그래도 동생 캐리어가 먼저 나왔을 때 동생에게 얼른 뛰어! 라고 외쳤다. 약 15분 뒤 내 캐리어도 나왔고 바깥에 나왔을 때 택시를 타고 먼저 출발했을 동생이 여유롭게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며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울화통이 터졌다.
"택시를 탔어야지!"
"내가 나왔을 때 택시가 없었어! 이제 3분 뒤 리무진 출발이래."
나도 급히 리무진 버스를 예약하고는 동생과 함께 올라탔다.
몽골에서 동생과 함께하며, 동생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동생이 아프면 어쩌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와 마지막 문턱 앞에서 실패를 코앞에 두고 내심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일단 다행히도 다음날 첫 비행기를 예약했고, 그 비행기가 지연되지만 않는다면 엄마 병원에도 늦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 마지막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불편한 곳에서 또 잠을 자서 여독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피곤해할 동생이 걱정되었다. 리무진 버스 안에서 동생에게,
"비행기 타지 못하면 공항 근처에서 같이 숙소 잡아서 자자"
라고 말하니 동생이 발끈했다.
"언니는 집 가도 돼! 나도 30살이 넘었어. 성인이야! 언니가 집에 편안히 가지 않으면 내가 마음이 불편해!"
이때 나는 동생이 서른이 넘었다는 걸 체감하게 되었다. 나의 마지막 동생 모습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었는데, 언제 취직을 하고 언제 서른이 넘었다는 거지?
"일단 김포에서 내리면 얼른 달려가서 무조건 태워달라고 빌어!"
라는 쓸데없는 말을 남기고 대화를 중단했다. 쩔쩔매어도 어쩔 수 없는 법.
김포 공항 국내선에서 리무진이 정차하고, 캐리어를 들고 먼저 공항 내에 들어간 동생이 터덜터덜 돌아나왔다.
"안된다고 해서 환불만 받고 왔어."
이왕 이렇게 된 거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포장해와서 김포 공항 근처에 숙소를 잡고 들어왔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도 다음날 새벽 첫 기차로 부산 내려가야하는 일정이 있었다.
지금 자도 몇 시간 못 자고, 집에서도 또 짐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 동생만 두고 숙소를 떠나게 되었는데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낯선 장소에 동생을 두고 나오는 것이, 단지 동생이 서른이 넘은 성인이라 괜찮다는 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안전과 직결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동생한테 문 꼭 잠그고 있으라고 말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다음날 첫 비행기를 순조롭게 타고 돌아와 엄마의 병원 스케줄까지 무사히 마친 동생은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그제서야 몽골 여행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이런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여행하면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글 쓰기 시작한 초반에 동생이 결혼을 하겠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요즘 독서모임에서 사랑을 주제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로맨스와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독서모임을 드랍하려고 했는데 나름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다섯 권의 책을 읽어내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사랑은 뭐고, 결혼은 무엇인가. 사랑은 감정이고 결혼은 제도인데, 왜 사랑을 하면 결혼을 하려 하는가. 사실 20대 초반에 만난 사람과 결혼할 수는 있지만 왜 때가 되면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지배하던 이 시기에, 동생이 결혼을 발표했다. 이제까지 남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대체 왜 결혼을 하는거지? 라는 마음이 먼저 떠오르며 입으로는 축하한다고는 하지만 마음속에는 대체 결혼이란 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동생이 언젠가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나는 축하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동생이 결혼을 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는 누군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커니즘은 이러하다. 인생의 큰 방향의 결정, 결혼이라는 것을 결정했다는 것에 진심으로 응원을 하게 된 것이 우선. 그게 내 동생이라는 점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쉬운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동생도 떄가 되어 결혼을 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팔은 안으로 굽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결혼은 무엇이고 가족은 무엇이길래? 라는 생각에 동생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것은 나도 동생을 참 좋아하는구나 라는 마음이 확실시 되는 하나의 기점인 것 같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처음엔 글을 쓰며 한번 읽고 또 두 번 읽으며 오탈자도 고치고 여행의 기록으로 남겨두었지만, 지금은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쭉 써내려가고 있다. 추후 동생에게 여행 때 찍은 사진과 지금 이 기록을 좀 더 다듬어서 선물을 할듯하다. 결혼 준비를 하며 엄마와 투닥되는 둘을 보며, 걍 확 이 집안과 연을 끊어?(굉장히 극단적임) 하며 분노케한 사건이 있어서 글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잠시 손을 뗀 약 한 달이 있었지만(연재가 끊긴 기간 ㅎㅎ), 드디어 이 글이 마무리 되는 것같다.
동생과의 첫 해외 여행 글을 여기서 마무리한다.
동생의 모든 결정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