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국영백화점에서 보낸 결연한 60분

질문은 사치, 양말을 고르는 동생의 초점이 흔들릴 뿐

by 김이름

박물관을 나와 수흐바타르 광장까지 걸어갔다. 동생은 박물관부터 줄곧 흥미를 잃은 듯해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뭔가 한 장소를 깊이 있게 보지 못하고 해당 장소를 찍고 오는 듯한 관광 방식이 우리에게는 맞지 않았다. 다음에 또 몽골을 오게 된다면 초원 관광은 몽골 현지 투어를 신청하고 도심에서는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수흐바타르 광장 가봤어?" 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대답은 하겠지만 마음 한 켠에 찜찜함이 남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우린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가이드님이 짜주신대로 시간 지체 없이 일정에 참여하였고, 가이드님 뒤를 바짝 따라다니며 설명을 놓치지 않았다. 현재 이 광장 이름은 "칭기스칸 광장"이고 과거 이름이 수흐바타르 광장이라고 하셨다. 이는 정치와 관련이 깊다고 하시며, 다음에 또 오면 이름이 바뀌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자유시간 약 20분이 주어졌고 둘러본 후 저 멀리 보이는 버스에 탑승하면 된다고 하셨다. 우리 시력으로는 저 멀리 주차되어 있다는 버스가 보이지 않았기에,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버스를 20분만에 탑승하려면 광장을 가로질러 바로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바로 일행들과 흩어져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주위를 구경했고, 근처 분수대에서 사진을 몇 장 찍다가 지체없이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KakaoTalk_20260209_174331091.jpg 칭기스칸 광장. 행사가 있을 예정인지 천막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늦지 않게 버스에 올라타 창밖을 보는데 맛있게 생긴 아이스크림이 눈에 들어왔다. 현지 통화로 계산을 해야 먹을 수 있었는데 우리는 달러밖에 없었기에 그저 아이스크림 리어카를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주차장에 도착한 다른 어른들은 가이드님을 찾아서 달러로 드릴테니 아이스크림을 사달라, 수수료는 넉넉히 드리겠다(?)며 딜을 하셨고 가이드님은 흔쾌히 거래에 응하셨다.


그런 어른들을 바라보는 듯, 허공을 바라보는 듯 멍하니 쉬고 있을 쯤 모든 일행이 탑승을 했고 이 다음은 국영 백화점이라는 가이드님의 안내 방송을 하셨다. 그때 동생의 눈이 빛났고 그곳에 가는 동안 뭘 사면 좋은지, 누구 선물을 사야할지 등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언니, 가면 바로 1층에서 이렇게 포장된 초콜렛을 사야 하고, 이 사슴 모양이 그려진 보트카 하나 살거야. 그리고 3층에서 엄마가 갖고 싶어했던 캐시미어 장갑 있나 보자. 그리고 6층에 기념품 샵에서는 회사 사람들 줄 양말 몇 켤레랑..."


가는 길은 여전히 막혔지만 가는 내내 동생의 즐거운 계획을 들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 쇼핑할 시간이 1시간도 채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우린 다같이 움직일 것이며 6층에서 20분, 1층에서 20분 이렇게만 시간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영백화점 다음 일정이 몽골 전통 공연을 보는 것인데 공연 시작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동생은 실망의 눈빛을 보냈지만 버스가 정차하자 결연에 찬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 1분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6층으로 단숨에 올라가 본인의 계획에 맞는 선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몽골 도착 첫 날, 어떤 기념품샵에서 사고 싶었던 몽골 전통 모자가 하나 있었는데 비슷한 걸 백화점에서 발견했다. 색깔을 정하지 못하여 동생에게, "갈색이 나아? 아니면 녹색이 나아?" 물어봤는데 평소라면 양말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진중한 답변을 늘어놓던 동생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글쎄..." 라며 말을 흐리고는 양말을 비교해가며 장바구니에 넣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어지간히 급한가 보군 하는 생각으로 나도 게르 마그넷, 낙타 인형 등을 몇 개 골라서 동생에게 먼저 계산대로 가겠다고 했다. 계산대 줄은 이미 꽤 길었던 상태이기에 미리 서지 않으면 20분이라는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내가 계산을 마칠 즈음 동생도 줄을 섰는데 이곳도 계산이 꽤나 느렸다. 다른 일행들은 가이드님의 안내에 따라 1층으로 내려갔고 6층에는 우리만 남게 되었다. 가이드님도 우리를 챙기기 위해 기다렸는데, 이번엔 우리가 늑장을 무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시간에 늦어 피해를 준 적이 없었는데 이 다음 일정은 반드시 시간을 맞춰야만 하는 공연이라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동생까지 계산을 마치고는 가이드님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1층에서의 20분이 시작되었다.


KakaoTalk_20260209_174331091_05.jpg 국영백화점을 향해 다가가는 중



1층에서 우리의 목표는 낱개로 포장된 초콜릿과 보드카, 과자 몇 개였는데 낱개 초콜릿 빼고 원하는 대로 구매해서 6층보다는 빠르게 나올 수 있었다. 6층엔 계산대가 몇 없었지만 1층은 상대적으로 많았기에 시간을 맞출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어른들은 따로 구매하는 것 없이 눈으로 쓱 구경하고 다들 나가셨고 우리가 뭔가를 잔뜩 샀기에 가이드님도 우리 옆을 따라다니셨던 것이다. 버스에 타고 보니 우리가 제일 늦긴 했지만 늦은 건 아니었기에 당당히 입장하듯 올라탔다. 가이드님도 우리 뒤를 따라 버스에 탑승하셨고 짧은 시간임에도 몽골에서 사야 할 것들만을 제대로 샀다면서, 백화점에서 내리기 전에 뭘 사면 좋을지 설명해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해줄 때 동생의 눈에서 만족스러운 빛을 읽었다.


미션 완료 후 우린 긴장이 풀렸고, 극장 앞에 내린 우리는 하루의 모든 긴장이 다 풀려버린 상태였다. 공연 시작 전 중간 뒷 열에 착석하였으나 의자는 기울어 불편했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울란바토르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하면서 몸이 피로해졌다. 동생과 나는 말없이 텅 빈 무대를 바라보다가, 곧 공연이 시작된다는 어둑어둑한 불빛 사인을 느끼고는 어둠 속에서 자세를 좀 더 편히 잡고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전통 공연이라고 하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신이 났던 무대였다. 대체로 노래는 몸 속 깊숙한 곳에서 울리듯이 소리를 내는 기술로 부르셨고, 몽골 전통 게르에서 보았던 마두금 이라는 악기로 연주를 하셨다. 여러 팀의 무대를 보다보니 1시간이 다 되었고 관객들 모두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며 보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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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빠져다오니 이미 도시는 어둑해졌다. 저녁 식사는 숙소 1층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동생에게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사서 방에서 먹는 게 어떻겠는지 제안했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물리기도 했는데 기름이 많은 삼겹살은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싫었던건, 우리가 앉는 테이블에서 동생이 고기를 굽게 될까봐서였다. 늘 식당가면 동생이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웠는데, 우리가 굽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동생은 남을 잘 배려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빡빡한 일정에 동생도 많이 지쳤는데 식당에서 고기 굽는 걸 자처하면서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바에 그냥 방에서 편히 컵라면이라도 먹었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여행 내내 어른들을 보면서 동생에게 모든 걸 다 미루어버리는 심성이 아니라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순 없었다. 동생에게 이런 내 마음을 전달했을 때 동생도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삼겹살 파티에 빠지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는 방으로 올라가 짐을 풀고 다시 내려왔다.


편의점 가는 길에 만난 가이드님은 다른 가이드 친구들과 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가이드 일정 내내 보이지 않던 함박 웃음과 큰 몸짓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래, 퇴근이란 저렇게 행복한 거지 하고 웃으며 우리도 인사했고 몽골에서의 마지막 편의점 털기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몽골 아이스크림을 한번 더 먹기 위해 군것질 거리를 고르고 김밥과 컴라면도 사왔다. 게 눈 감추듯 컵라면을 비우자마자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짐을 쌌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테트리스하듯 몽골에서 쇼핑한 물건들을 사이사이 끼워넣으며 짐을 챙기고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에 들었다.


KakaoTalk_20260209_174331091_08.jpg 진라면 순한맛과 참치 마요 삼각김밥. 동생은 신라면과 참치 마요 삼각김밥


초원에서의 이틀, 도심에서의 이틀,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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