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적당한 거리에 대하여
다음 도착한 곳은 고비 캐시미어 팩토리였다. 몽골은 캐시미어로 유명하고, 또 이곳에서 엄마 선물을 준비하기로 동생과 얘기한 바 있었기에 우리는 미리 어떤 제품을 살지 버스 안에서 논의했다.
혹시 엄마에게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엄마는 확실하게 장갑이 필요하다고 말씀주셨고, 고비 캐시미어 팩토리에 도착하자마자 장갑 코너로 향했다.
엄마가 손이 큰 편인데...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색상이... 이렇게 동생과 생각하며 초조하게 제품을 둘러보았다. 초조했던 이유는, 쇼핑 시간을 단 40분을 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카운터에 계시는 분들 손이 정말 느리니까 30분 내로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와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주셨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주변에 선물하고 싶던 사람들까지 떠올리고, 거기에 그 사람에게 무슨 색이 어울릴지까지 함께 고려해야했다.
엄마와는 바로바로 연락이 되었기 때문에(엄마 선물 산다고 하니까 엄마 카톡이 빨리 왔음 ㅋㅋ), 엄마 손에 맞는 장갑을 찾지 못하여서 미션 실패.
하지만 그래도 빈 손으로 가면 섭섭하니 목도리를 골라서 버스로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었다.
카운터에서 목도리를 하나하나 포장하는 속도가 마치 쥬토피아에 나무늘보 급이어서 텍스리펀 하겠냐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소리없이 조용히 다가오신 지나 가이드님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텍스리펀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였다.
사건은 카운터에서 발생했다. 여행 기간 내내 온종일 내 신경을 곤두세웠던 내 앞좌석 아주머니께서, "내 가방!!" 이라고 외치시며 부리나케 탈의실로 달려가셨다. 그 소리에 옆에 있던 가이드님도 깜짝 놀라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탈의실에서 울상이 된 표정으로, 제 가방이 없어졌어요, 그 안에 지갑도 있고 여권도 있는데 어떡해요." 라고 말하며 가이드님을 바라봤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주시긴 했는데, 매장 안의 분위기는 소매치기가 있을 법한 느낌도 아니었고, 사람의 밀도도 적어서 옆에 누가 붙으면 의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탈의실에 두고 온 것이라면 말이 달라지는 법. 일단 우리는 버스로 돌아왔으나 버스는 한참을 출발하지 못했다.
시간이 20분 정도 흘러 아주머니네 부부와 가이드님이 마지막으로 탑승하셨는데, 작은 손가방을 앞으로 꼭 안으신 아주머니를 보니 가방은 찾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내 침묵을 유지하는 부부를 보니 뭔일이 있긴 있으셨나 싶었지만 굳이 여쭤보진 않았다. 그게 나는 그저 내 호기심 해결을 위한 참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내가 붙임성 있게 말을 걸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을 하고 있지 않으면 친근감 있게 어른들께 말을 붙여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입을 열면 뭔가 내 머리를 들쑤시는 말만 하시는 아주머니에게 괜히 말걸었다가 내가 스트레스만 받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 사람을 적당한 거리에서 대하는 법이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뭐,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건 카운터에 함께 있던 나와 동생 뿐이었고 일행이 늦었지만 버스 안의 다른 승객들은 각자 이야기를 하다보니 왜 버스가 늦게 출발하게 되었는지 등은 묻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으로 탑승한 지나 가이드님이 버스를 출발시키고 곧 점심을 먹겠다는 안내 방송에 화답할 뿐이다.
이날 점심은 샤브샤브였다. 소, 양, 말고기와 야채가 준비되어 있었다. 중국식 회전 테이블에 8인이 앉게끔 셋팅이 되어 있었는데, 왼쪽에 동생 옆에는 또또또.... 아까 전망대에서 '속국'을 외치신 할아버지.. 이렇게 또 뵙게 된다. 오른쪽에는 첫 날부터 우리에게 제주도 아가씨라고 불렀던 형제 두 분이 앉으셨다. 너무나 강렬한 인물이기에, 맞은 편에는 누가 앉았는지 기억이 안난다. 다만 우리 테이블은 또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로 가득했던 기억만 난다.
고기를 집기 위해서 회전판을 돌리고 야채를 담기위해 돌리고, 다른 분들 또 돌리면 기다렸다가 담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식사를 했다. 처음엔 서로 양보해가며 눈치껏 돌렸지만, 다들 요령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먹고자 하는 대로 돌려돌려 돌림판을 시전했다. 식사를 어느정도 마칠 때 쯤, 내 옆에 앉아계셨던 형제 중에서, '형'이 나에게 폰 화면을 돌려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우리 집 고양이인데 너무 귀여워."
화면 속 고양이는 카메라 랜즈를 응시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에야 와서는 무슨 색 고양이인지 등 기억에 남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그 분께 맞추어서 대답해 드릴 만큼 괜찮은 대화 주제였다.
그 이후로 고양이의 루틴에 대해 말씀하시기도 하고 나도 여러 질문을 하는 등 꽤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 분이 전망대 엘리베이터에서 권사님이라는 분께, "나는 나만 믿어." 라고 소신 발언을 하셨던 분이었다. 일행 무리에서 제일 젠틀하다고 느꼈다.
생각보다 편한 자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징기스칸 박물관으로 갔다. 나는 이과였기에 세계사를 깊이 있게 배우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업 시간에는 졸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이라 중국의 역사 또한 지금까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생생한 스토리를 현지에서 가이드님의 상세한 설명으로 한번 더 들으니 더 재미있었다. 만일 내가 예전에 이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현지 문화와 역사를 배웠다면 문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게 오히려 더 맞는 상황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다녔던, 전망대에서 속국이라고 소리쳤던 할아버지께서 카메라로 여기저기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곳 박물관은 촬영권을 구매 해야지만 촬영이 가능하며, 무단 촬영 적발 시 몇 배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가이드님이 시작 전 설명을 해주셨다. 그런 행동을 보고, 가이드님 설명을 잘 못들었구나 생각을 했고, 가이드님도 재차 설명하며 제지를 하셨다. 그럼에도 다른 층으로 올라가자 또 카메라로 여기저기 촬영을 시작했다. 가이드님이 한번 더 하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으나 여기서는 아무도 말리지를 못했다. 가이드님이 정색을 하고 나서야 그분은 카메라를 내려놓으셨는데 단체 생활에서 저렇게 분위기를 망치는 행위를 하는 게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랜 세월 듣고 보던 게 있으셨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찜짬한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1층으로 내려왔을 때, 다른 투어 무리에서 눈에 익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첫 날 공항에서 본 젊은 커플이었는데 제발 우리 투어 무리로 왔으면 하고 바랐던 사람이었다. 동생이 먼저 발견을 했고, 몽골은 참 좁네 하고 웃을 수 있었다.
동생은 박물관 내부에서부터 피곤해보이기 시작했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몇 구간은 허락된 구간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도 딱히 핸드폰을 들지 않았고 점점 체력 이슈가 발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생이 나름 기대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몽골 국영 백화점. 둘러 볼 게 많아서 여기서 회사 사람들 선물 등을 사고 간식도 살 생각이었기에 어쩌면 마음은 이미 국영 백화점에 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다음 목적지는 수흐바타르 광장.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