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라는 이상하고 입체적인 세계

초원을 지나 도시의 콘크리트 냄새 속에서 배운 인간관계론

by 김이름

오늘은 정말 패키지 여행의 정수를 본 날이었다. 초원을 달릴 땐 늘 즐거웠는데,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한 장소를 진득하게 보지 못하고 장소를 찍고, 찍고 넘어가는 상황이라 한 곳을 편히 즐기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몽골에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니까, 내일 오전에는 다시 한국을 떠나야 하니까 이렇게라도 보고 가는 게 어디냐 싶다.


처음 도착한 곳은 이태준 기념관이었다. 2001년에 조성되었는데 2025년에 새로 개관했고, 그래서 그런지 건물 내부는 이제까지 본 몽골 건축물 중에 가장 콘크리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입구에서 가이드님의 설명을 간단히 듣고 기념관에 입장했다. 입구애서 팸플릿을 기념삼아 챙겨 들고 동생과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이젠 화장실이 그나마 많이 널린 시내로 들어왔지만 초원에서의 습관은 버릴 수가 없었다. 일단 화장실이 보이면 뛰쳐들어가는 것. 화장실 내부도 쾌적했고 기억상 핸드 드라이기도 있던 듯하다(확실치 않다만).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거울을 보고 옷을 고쳐입고 있는데, 버스 앞좌석에 앉으셨던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아 깜짝이야! 남자인 줄 알았어!" 라고 소리치셨다. 순간적으로 불쾌함이 올라왔지만 초반만큼 이상하게 밉지는 않다. 화장실을 나서며 동생이 말했다.

"언니, 이제 저분은 얄미워."

동생과 나는 어느덧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분의 이야기를 하면서 2층까지 둘러보고 내려와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서도 그 아주머니는 뒤를 돌아보며, "아까 놀랐다니까." 라며 호들갑을 떠신다. 아, 1절만 하시라고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보고 한번 웃어주고 더 이상의 대화를 차단했다. 얄미운 감정을 가리키는 바늘이 다시 미움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라며 말이다.


KakaoTalk_20260125_132307075_03.jpg 이태준 기념관에서 챙겨온 팸플릿


다음 목적지는 자이승 전망대이다. 어른들 모두 긴장이 풀리고 몇 분끼리는 친해지셨는지 첫 이틀때 보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담소 나누는 톤이 높아졌다. 그 와중에 내 귀에 콕콕 박히는 말이 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거든."

"우리 권사님이 말이야..."

제발 저 말들이 우리를 향하여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가이드님이 앞장 서셨고, 어른들은 뒤따라 오셨다. 우리는 얼른 가이드님 곁으로 가서 가이드님께 여쭤봤다.

"가이드님, 몽골 여행에 이렇게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는 편인가요? 저는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인줄 알았어요."

"원래 젊은 분들이 많이 오긴 해요. 이번 패키지가 좀 구성이 신기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어요."

그렇다. 이건 그냥 이 무리에 우리가 당첨된 것이었다. 사실 어르신이 많아도 상관은 없고 어르신과의 투어가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또래가 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과, 내 앞좌석에 앉으신 분처럼 어르신 특유의 친근함에 대한 이유 모를 거부감 때문이었다. 아마 내 또래에게 들었으면 더 기분 나빴을 말이 어른들을 통해 나오면, 그분들은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에 한번 더 기분 상한 것에 대해 풀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계산을 때리는 우리 또래라면 그런 말을 안 하고, 안 들을 확률이 높다는 것. 그리고 그런 말을 필터링 없이 내뱉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려도 괜찮기 때문이다. 단지 어른이기에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의 짐과 정이 공존한다.


그렇게 전망대로 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마, 4층? 5층까지만 우리를 데려다 줄 터이고 그 이후는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사건은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까지 오는 길에 그 권사님이라고 하신 분이 형제끼리 여행 온 분들을 전도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아이고 형제님들, 하나님을 믿어야 해."

"허허 됐어요. 나는 나만 믿어."

"아냐, 나를 믿으면 안돼. 하나님을 믿어야지, 쯧쯧."

귀를 의심했다. 여행 중에 전도를? 길에서 저렇게 만나도 기분이 나쁜데 이곳에 와서도 전도를?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순간까지 혼자 계속 전도의 말을 하셨고, 다른 어르신이 "그만!" 이라고 말을 하고서야 권사님의 설교는 멈췄다.


동생과 나는 질겁한 채 엘리베이터를 탈출하듯 빠져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음과 동시에 뜨거운 햇빛이 피부를 찔렀다. 선글라스를 다시 끼고 전망대를 바라봤는데 까마득했다. 저 계단은 몇 개일까? 일단 성격 급한 나는 빨리 올라가고자 한 계단, 한 계단 올랐다. 목에서는 피맛이 났지만 그냥 무작정 올랐다. 빨리 이 험한 여정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중간 중간 뒤를 돌아봤고 동생이 잘 올라오나 확인했다. 동생은 대여섯 계단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우리를 제치며 쉼 없이 올라갔다. 사실 나도 쉼없이 올라가고 싶은데 동생이 따라오는지 본다는 핑계로 쉬었던 것이다. 상당히 분한 마음에 열심히 따라올랐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아마 저분은 등산 특화 할아버지임이 틀림 없다.


KakaoTalk_20260125_132307075_04.jpg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전망대 직전 계단에서는 상인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역시 동생을 괜히 기다리며 기념품을 구경하겠다는 핑계로 숨을 한번 고른 후 나머지 계단을 마저 올라 전망대 꼭대기에 도착했다. 나는 진짜 피맛을 보았는데 낙오자 없이 다들 올라오신 것보고 젊은이가 더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좀 고른 후 동생과 울란바토르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풀과 바위, 종종 나무를 본 것이 전부였는데 여기는 울란바토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가이드님은 건물이 많이 보이는 잘 사는 동네,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네 등을 보여주며 빈부격차를 여기서 볼 수 있다는 설명을 시작으로, 전망대에 그려진 벽화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몽골-소련이 일본-독일군에데 승리한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 올라오신 할아버지(우리 투어의 제일 고령자)가 가이드 말을 끊더니 외치셨다.

"러시아 속국이잖아, 몽골이."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가이드님이, "아니요, 속국이 아니라..." 라고 말씀을 시작하시는데 다시금

"속국이여."

라며 설명을 끊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서 트름을 하셨던 할아버지였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 올라온 것도 신기했고, 거기서 속국이라며 크게 외치는 데 그 모습마저도 신기했다. 그분 백팩에 달린 박정희 배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니, 아버지 속국이라고 하면 어떡해요. 그러지마세요."

엘리베이터에서 한참을 전도하던 권사님이라는 분이셨다. 참으로 혼란했다. 그런 상황을 말리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분 사이에서, 용기내서 조율하시는 그 사람이 바로 내가 제일 피하고 싶던 바로 그 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뷔페 접시를 치워주셨던 그 할아버지가, 몽골인 가이드님 앞에서 속국을 외치고 있다.



KakaoTalk_20260125_132307075_07.jpg 귀여운 강아지가 전망대 꼭대기에 있었네



이때 사람은 참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난 저 사람이 싫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서 그 사람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이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일 테고,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보고 있다. 나 포함 모든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고 느꼈다. 권사님으로 인해 분위기가 풀어지고 가이드님의 설명이 끝난 뒤 다시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면서, 다시 전망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내려오는 순간까지 곱씹어 보았다.


살면서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저런 점은 싫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좋은 점이 더 많으니까, 그리고 싫은 점은 내 입맛에 맞지 않는거지 나쁜 게 아니니까. 하나 둘씩 인간관계를 배워왔는데 오늘 그 매운 맛을 눈 앞에서 보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온 이상한 사람들 모두를 싣고 버스는 캐시미어 백화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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