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였는데요, 부산이었다가, 남양주였다가
모래 썰매를 끝으로 오늘의 목적지는 울란바토르 시내의 호텔이었다. 버스를 출발시키며 가이드님께서는 우리 숙소까지는 4시간 넘게 이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끝으로 마이크를 놓으시고는, 약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침묵 속에서 움직였다. 나와 동생도 울란바토르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말 없이 눈을 감거나 창밖을 보는 등 조용히 휴식 시간을 가졌다.
생 초원의 길을 달리던 버스는 어느덧 도로라고 할 수 있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점점 주변에 건물들이 하나둘 씩 나타나면서부터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도시의 네온 간판이 길을 밝히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신호등과 거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몽골에 도착한 이후로 정말 먹고 싶던 음식은 김치찌개도 아니고(첫 날 먹음), 삼겹살도 아니고(마지막 날 저녁 식사임)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그때였다. 성냥팔이 소녀가 초를 켜고 소원을 빌었을 때처럼 내 눈앞에 메가커피가 나타났다.
다시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뜨고 바라봐도 메가 커피였다. 잠시만 내려서 아아 한 잔만 사오면 좋으련만. 초록 신호를 받은 버스는 다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완전 한국같다고 생각한 그때였다.
"여러분, 이제 숙소까지 40분 조금 더 걸릴 것 같아요. 초원에서처럼 달렸다면 금세 도착할 곳이긴 한데 시내는 아주 막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시간을 장담할 수가 없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남양주 거리에요. 과거 남양주와 결연을 맺으면서 추진된 사업이라고 하네요."
경기도 남양주시? 나는 피크민 게임을 켰다. 피크민은 예전 포켓몬고처럼 현실 맵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이었는데, 혹시 괜찮은 아이템이 있을까 싶어서 게임 내 지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마 내려서 보았을 때 이런 비석이 있었을 것이다. 거리에 내릴 수는 없으니 아쉬운 마음에 게임 캡쳐를 남기고는 고개를 들었다. 오늘까지 2박 3일.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첫날부터 이곳은 경기도 울란바토르시라면서 GS나 CU편의점을 많이 보았는데 이곳은 경기도가 아니었다. 앞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짜증날때면 앞좌석 헤드를 노려보기도 했었는데, 아니 이런 게 있었다고?
은혜장식 좌석 헤드 커버였다. 게다가 부산이라니.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갈 때나 소풍을 갈 때, 학교에서 대여한 버스를 타면 이런 커버를 자연스럽게 보았었는데 자연스럽게 곳곳에 한국어가 많았다. 너무 자연스러워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동생한테 이것보라며 알려주고는, 어이없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산이었구나. 내가 온 곳이(?). 울란바토르 시내는 그야말로 한국어 간판 또는 한국 지명을 딴 가게 아니면 한국 편의점 천국이었다. 버스는 매우 느릿느릿 움직였기에, 차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한국어 간판에 어리둥절 했으며 이러한 혼란이 익숙해질 무렵에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내렸고 호텔 입구로 들어가려는 그때, 호텔 관리자가 나와서는 호텔 정문은 주차한 곳에서 매우 멀리 있으니 지름길을 알려줄테니 따라오라고 했다(몽골인이었는데 우리는 알아듣고 있었다). 몇몇의 어른들은 이미 정문쪽으로 이동하고 없었고 나와 동생, 그리고 다른 어른들 일부는 그 관리인을 따라 움직였다. 정말 바로 앞에 작은 쪽문이 있었는데 이곳을 열면 바로 엘리베이터도 탈 수 있다고 했다. 나와 동생은 관리인을 바짝 쫓았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우리는 20kg이 넘는 캐리어에, 생수 약 10병, 그리고 백팩과 간식 가방까지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름길은 위험하다는 아리야발 사원에서의 교훈을 잊어버린 걸까. 관리인은 해맑게 웃으며 손짓을 했고, 관리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내어 계단을 올랐다. 힘들게 얻은 교훈을 잊은 죄로 우리는 또 생고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맨 앞 줄을 차지하는 영광은 얻었기에 줄서기 고생은 없이 배정받은 숙소로 올라갈 수 있었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 문 단속을 하자마자 동생과 나는 곡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저녁 식사를 해야했기에 다시 일어나야했지만, 그래도 이제 당분간 또 이 캐리어는 들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1층 식당에 내려갔다. 거기에 가니 가이드님이 계셨고, 뷔페식 식사니까 먹고싶은만큼 많이 드시라고 말씀하시고는 자리를 비키셨다. 그래도 호텔이고, 뷔페식이라고 하니 한국에서 생각한 다양한 메뉴를 떠올렸지만 생각보다는 조촐한 반찬들이었다. 하지만 잡채, 계란말이, 배춧국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집밥을 먹는 듯한 맛을 내었기에 아주 만족한 저녁 식사였다. 우리는 접시에 먹을만큼 식사를 담고 어느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자꾸 저번부터 트름하시는 할아버지가 우리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셨다. 여전히 앞에서 트름을 하시고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왜 자꾸 앞으로 오시는 걸까하는 생각과 내심 불편한 마음이 공존했다. 우리는 급히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앞서 들었던 이 마음은 금세 민망함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아침, 어제 저녁 식사를 먹었던 1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때였다. 자꾸 나에게 머리가 짧다고 말씀하시는 아주머니가 또 말을 거셨다.
"자매들~"
또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신경이 곤두서는 그때,
"자매들이 어제 먹고 놓고간 접시를 앞에 형제님들이 다 치워주셨어. 식기는 퇴식구에 갖다 놓아야 해."
한국 뷔페에서 먹던 습관을 생각해서 접시를 그대로 테이블 위에 두고 퇴장했는데 앞에 앉아서 드셨던 할아버지들께서 접시를 치워주셨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접시를 두고 가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인사드려야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자꾸 할아버지들이 따라오는 것에 짜증만 냈던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이 차올랐다. 그래, 할아버지들이면 소화도 안되시고 트름이 계속 올라올 수 있지.. 라며 민망한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번엔 퇴식구에 접시를 가져다 놓고 퇴장했다.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오늘이 거의 마지막 몽골 관광인 셈이다. 우리는 다시 방으로 올라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오늘부터 몽골의 날씨가 풀리기 때문에 최대한 가벼운 옷차림을 했고, 테를지 공원에서보다는 최대한 가벼운 짐들을 챙기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탑승했다. 별일 없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