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몽골 모래 썰매의 추억, 체력은 20대에 두고 오다.
몽골에 오기 전 내가 상상했던 게르와는 전혀 다른, 정말 초호화 게르, 어떻게 보면 짭 게르에서 묵었던 이틀은 빠르게 지나갔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에서 살던 것이 익숙했던 우리에게는 어쩌면 "찐 게르"보다 고생없이 편히 잘 수 있던 이 게르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야생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동생과 보낸 이틀 동안의 게르 생활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디를 여행한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 누구와 시간을 보냈느냐가 중요하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쏟아지는 듯한 별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남진 않았다.
이제 우리는 울란바토르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아쉬운 마음이 남지 않았다는 말 취소. 이틀 동안이지만 만났던 이 동네의 강아지, 고양이, 소들을 더 만나지 못할 것이 아쉬웠고, 자연 속에서 마물 수 있는 시간이 다시는 없을 것 같아서 아쉬웠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지나 가이드님이 오늘의 일정을 설명해주셨다.
울란바토르 시내로 가기 전에 우리는 성황당에 잠시 들를 것이고, 낙타 체험하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낙타를 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후에는 사막에서 모래 썰매를 타고 울란바토르 시내의 숙소에서 저녁 식사 후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말을 하시며 추가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몽골하면 고비사막이지만, 이 4박 5일 일정에는 넣을 수가 없어요. 아쉬운데로 우리는 미니 사막에 가려고 합니다. 사막에서 낙타 타는 체험을 하고, 그 사막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서는 썰매를 탈 거예요. 썰매는 재밌긴 한데... 한번 타고 난 후에 젊은 친구들은 두 세번 더 타지만 어른들은 한 번 탄 후에 다시 타시는 분은 못 봤어요."
나는 호주에 가서 모래 썰매를 타본 적이 있었다. 주변에서 어른들이 썰매를 몇 번 타겠다는 계획을 서로 공유하고 계셨는데... 절대로 그렇게 못할 것이다. 어른들의 체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러하다. 썰매를 한번 타고 난 후 올라올 때, 내가 마치 사막의 개미귀신 함정에 빠지듯, 다시 올라가고자 한다면 모래에 미끄러져서 다시 오를 수가 없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체력은 체력대로 빠지면서 개미귀신의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체험을 할 수가 있다. 동생에게 말해줄까 하다가 괜히 기대감을 초장에 없애버리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과거 회상을 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 들르는 성황당에서는 이루고 싶은 소원을 생각하며 한 바퀴 돌아보세요. 홀수로 돌면 되니까 세 바퀴, 다섯 바퀴도 가능해요. 앞으로 버스가 험한 길로만 다닐 예정이라, 약속한 시간 내에 충분히 걷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이제까지 버스는 초원을 그나마 잘 닦인 곳을 달렸지만, 오늘부터는 진짜 초원 그 자체를 달린다고 하신다. 멂미가 심할 수도 있고 엉덩이가 아플 수도 있다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몸은 계속 들썩이고 피로감이 쌓였을 쯤, 갑자기 가이드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다.
"여러분, 버스 앞을 염소 떼가 막고 있어서 잠시 차를 세울거예요. 모두 내려서 가까이서 염소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리실 분 내리셔서 한번 보세요."
나와 동생은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챙겨 들고 하차했다. 눈 앞에는 너른 평원과 그 위를 염소들이 무리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옆으로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염소를 몰고 있었고 한 마리의 개가 조수 역할을 하며 이탈하는 염소를 바로 잡아주고 있었다.
귀여운 염소 무리를 보고 사진도 찍고, 차를 타며 학대받은 엉덩이도 풀어주고 다시 버스에 탔다. 두 시간 더 넘게 가다보니 배가 고파졌다. 그 즈음에 버스는 멈췄고 우리는 내려 낙타 체험당에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쯤에는 동생과 나는 식사 자리에 대해 체념하게 되었다. 우리 테이블에 부부 한 쌍이 앉고 또 어제 저녁에 합석했던 할아버지 두 분과 않았다. 더 이상 식사 자리에 불평불만은 없었다. 특별한 교류는 없었지만 내적 친밀감이 쌓였기 때문일까? 하지만 대화는 없었고 각자 배정된 식사만 묵묵히 할 뿐이었다. 이정도로도 만족한 점심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낙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낙타들은 대체로 무릎을 꿇고 쉬고 있었다. 전날 탔던 말들은 서 있다가, 우리가 탈 쯤에 앉혔는데 낙타들은 앉아있는 것을 좋아하는지 큰 눈을 꿈뻑이며, 뭔가를 씹는 듯 입을 질겅이며 앉아있었다. 말은 한 시간 가까이 탔지만, 낙타는 저 곳의 반환점을 돌아 오기 때문에 15분에서 20분정도 타게 될 것이라는 설명과 낙타를 탈 때 안전 수칙을 설명해주셨다. 말는 속도가 빠르지만 낙타는 느릿느릿 걷기 때문인지 헬멧을 쓰지는 않았다. 낙타 또한 흩날리는 옷가지나 망토 등을 보면 흥분하기 때문에 동생과 내가 챙겨온 판쵸는 내려놓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내가 보는 동생은 인기가 많다. 수많은 알바 경력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친절해서 알바 일을 잘했는지도 모르겠다 - 사장님들이 동생을 많이 좋아하셨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나와는 다르게 서글서글하다. 항상 웃는 얼굴에다가, 엄마랑 싸울 때면 남들이 저 모녀 싸웠구나 하고 알 수 있는 나와는 다르게, 엄마랑 싸우면 나와는 스케일이 다르게 크게 집안을 뒤흔들어 놓아도 갑자기 타인이 등장하면 헤헤 웃는다. 남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보다는 동생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동생과 있을 때 더 사람들이 편히 생각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걸까? 내가 탄 낙타는 동생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자기가 꼭 동생을 태우고 싶었던 양 동생만 바라보고 동생 몸 옆에 얼굴을 갖다 대기도 하고 동생 곁에 붙어서 동생만 쳐다보았다. 참 사람 볼 줄 아는 낙타라고 생각했다. 나와 동생이 가족이 아니라 타인으로 만났다면 친한 친구는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가족으로 묶여 서로를 경험하고 지내게 된 것에 대해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동생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탄 낙타는 동생과 인연이 될 수 없었기에 저렇게 바라만 보는구나. 짜식, 하필 무게도 더 나가는 나를 싣게 되어 미안하네.
가이드님이 낙타를 타기 전 설명하며 손가락으로 가르켰던 언덕배기에서 낙타는 멈췄고, 우리는 너른 사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돌아왔다. 승마 체험보다는 짧았지만 낙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진귀한 시간이었다. 낙타를 타면 냄새가 많이 배일 것이라는 후기들과는 다르게 옷이 깨끗했고 배인 냄새도 없었다. 팁 2달러를 내고 낙타들과 셀카를 찍다가 다시 버스로 올라 탔다.
이제 소사막으로 가서 썰매를 탈 것이다. 나는 진짜 딱 한 번만 타야겠단 생각을 했다. 호주에서는 두 번 타긴 했는데 그떈 20대였고...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몽골의 사막이 기대가 되었다. 여기서도 가이드님이 유의사항을 말씀주셨다.
"모래 썰매를 탈 때 소지품 유의하시고, 반드시 휴대폰 잘 챙기세요. 모래들이 매우 가늘고 작아서 휴대폰의 충전단자 속으로 들어가면 망가질 거예요."
우리는 지퍼가 달린 가방에 폰을 넣고 선글라스를 챙겨 모래썰매를 탈 준비를 마쳤다. 아까 낙타를 타면서 본 사막은, 햇빛이 흰 모래에 반사되면서 눈을 따갑게 했었기 때문이다.
모래와 풀이 듬성듬성 난 곳에 버스가 멈췄다. 갑자기 가이드님이 신발을 벗었다. 우리도 따라 벗으려고 하자 가이드님이 만류했다.
"여러분이 여기 신발 벗으시면 동물들이 발냄새를 맡고 와서는 신발을 물어갈 거예요. 저는 괜찮아요, 버스에 신발 많아요. 여기 벗고 가시면 아무도 책임질 수가 없어요. 남은 일정을 맨발로 다니셔야해요."
우리는 주섬주섬 뒤꿈치까지 벗었던 신발을 다시 고쳐신고 가이드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직 사막보다는 풀이 듬성듬성 자란 황무지처럼 보이지만, 이 언덕만 넘어가면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이 보일 것이다. 여기서 보내게 될 시간이 기대가 된다.
한참을 걷고 걸었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져 제대로 걷기가 어려웠다.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걸을 때에는 조금 물가에 가까이 가서 걸으면 물로 인해 단단해진 모래 바닥으로 인해 걷기 편한데, 여기는 사막이라 물 한 방울도 없기에 그대로 모래 속으로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한참을 걸었던 듯하다. 군데군데 심어진 풀의 수가 현저히 줄더니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이 펼쳐졌다. 저 멀리 몇 포기의 풀이 보이기는 했지만, 어림없는 사막의 모습이었다. 호주에서는 전날 비가 왔었는지 모래가 좀 단단했는데 이곳은 제대로 건조했는지 걷는 한 발 한 발마다 모래에 발이 묻혔다.
뒤따라오는 어른들도 걷기는 힘드셨는지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나와 동생은 가이드님 뒤를 바짝 쫓아갔기에 아무도 밟지 않는 깨끗한 모래 사원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눈이 펑펑내려 쌓인 날,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본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 버스에서부터 이 사막까지 걸어올 때 우리는 각자 썰매를 들고 걸었기에 더 걷기가 어려웠는데, 그래도 먼저 도착한 우리가 이 아무도 타지 않는 모래 언덕의 첫 썰매 라인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동생을 먼저 앉히고는 출발시켰다. 대단한 행위는 아니지만 첫 썰매의 기회는 동생에게 주고 싶었다. 가이드님의 도움을 받아 썰매가 미끄러져 내려갔고 그 모습을 나는 영상으로 남겼다. 동생한테 보내주어야 하는데, 아직도 액션캠에 담겨져있네 그러고보니. 썰매가 멈추고 동생은 뒤돌아봤다. 우리의 높이 격차는 커졌고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동생도 손을 흔들고는 썰매를 들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다섯 걸음 걸었는데, 한 걸음치도 못 올라온다. 저런 모습을 보니 내려가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몽골까지 왔는데 모래 썰매 한번 타야하지 않겠는가 싶어 착잡한 마음으로 즐겁게(?) 스릴을 즐기며 내가 뒤따라 내려갔다.
자발적으로 모래귀신의 함정으로 들어간 나는, 최대한 완만한 경사를 골라 한참을 돌아 원래 자리로 도착했다. 거기서 동생은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번 더 탈거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너도 체력을 20대에 두고 온 모양이군. 생각하며 우리는 모래 언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다가오셨다.
"어머 너무 보기 좋아. 자매라며? 지금 모습 너무 보기 좋다. 사진 하나 찍어줄게. 기다려봐."
우리에게 그대로 있으라고 하시며 사진을 마구 찍어주시더니, 핸드폰을 돌려서 보여주셨다.
"이거 봐 너무 예뻐. 나중에 사진 보내줄게. 이거 프사해. 너무 잘 나왔어."
자연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어떻게 찍어도 잘 나오는 사진이라고 생각하고 아주머니께서 보여주는 사진을 봤는데 정말 예뻤다. 어쩌면 아주머니가 찍어주는 사진의 각도나 비율 등을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진 속 우리는 너무 예뻤다. 우리는 아주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했고, 아주머니는 연신 예쁘다는 말을 하며 자리를 뜨셨다. 우리가, 찍어드릴까요? 라고 한 말씀은 못 들으신 채로.
비록 썰매는 한 번밖에 못 탔지만 동생과 함께 이야기하고 보낸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두번 다시 올 수 없는 장소이기에 동생과 온 것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