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아리야발 사원에서 배운 것
평소라면 출근 직전 알람 시계가 10분 간격으로 여러 번 울어 깨우거나, 혹은 주말이라면 퍼지게 잠을 잤을텐데. 여행지에서는 설렘 때문인지 눈이 일찍 떠진 아침이었다. 늘 거르기 일쑤였던 아침 식사도 여행지에서는 챙겨 먹었고, 아침부터 3시간 가까이 트레킹도 했겠다, 승마 한 시간 체험도 했겠다, 슬슬 몸이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말이 없어졌다. 버스는 아리야발 사원(명상사원)으로 데려가고 있었고, 우리의 초점은 더 이상 몽골의 초원 위도 아닌 허공의 어딘가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실려가고 있었는데, 가이드님이 우리의 정신을 바짝 깨우며 마이크로 외치셨다.
"여러분, 오른쪽 창 밖을 보세요. 한 소녀가 책을 읽는 듯한 형상을 한 바위입니다. 종교적으로 보시는 분들은 기도하는 소녀 바위라고도 하시더라고요."
오 그럴듯해.
마음속으로 끄덕이며 시선의 초점을 바위로 꽂았고, 동생도 멍 때리다가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멈춘 버스에서 우린 바위를 바라보다가, 동생이 그래도 찍어는 둬야지, 하는 몸짓으로 힘겹게 핸드폰을 들어 사진에 담았다. 동생이 아니었다면 이 사진은 남을 수 없었을 듯했다.
다행히도 이 바위를 보는 것은 차창 관광으로 대체되었다. 어차피 바위 가까이 가면 책을 읽는 듯한 형상은 사라질테고, 버스에서 내릴 힘도 없었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도착 시간까지 약 30분 정도 남았다는 가이드님의 말씀에 발 밑에 있던 간식 가방을 뒤적거려 초콜릿을 꺼냈고, 초콜릿을 씹으며 기력을 보충했다. 이것이 바로 패키지 여행의 한계인 듯하다. 쉬고 싶을 때 쉬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빡빡한 일정을 해내야만 하는. 할 수만 있다면 저 초원 위에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자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우리는 이렇게 체력이 떨어졌는데 어른들은 괜찮으실까? 어른들도 버티는걸까? 버틸 수 있는 어른들만이 투어에 참가하는 걸까?
어느덧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대체 누가 내 운동화에 추를 달아 놓았는지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며 버스 계단을 내려왔다. 사원의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버스는 더 들어가 줄 수 없었던 것인가. 하지만 오늘의 일정이 끝나가는만큼 조금만 더 힘을 내어보자.
나는 좀 더 힘을 내었고 막상 야외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버스 안에서보다는 에너지가 올라오는 듯했다.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데, 옆에 동생이 따라붙질 않았다. 돌아보니 동생은 뒤에서 터덜터덜 따라오고 있었다. 취직한지 이제 2년차가 된 동생은, 회사에 적응하고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평소에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체력으로 이 여행을 소화하기는 버거울 터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힘을 내고 있는지 내 뒤에서 더 멀어지지 않을 정도로 따라 붙고 있었다.
15분 가량을 걷다보니 사원 입구에 도착했다. 가이드님께서 우리 모두를 집합시켰다.
"여러분, 아리야발 사원은 부처님이 타고 다녔다고 전해지는 코끼리를 형상화 한 사원이에요. 저기 보이는 계단이 코끼리 코라고 보면 됩니다. 계단은 108개 이고요. 40분 시간 드릴게요. 저 사원까지 올라갔다가 오시면 됩니다. 사원 옆으로 더 가면 작은 기도 공간이 있어요. 그 안에는 초록 빛깔의 스님 석상이 있어요. 그것까지 보고 오시면 됩니다."
"가이드님, 저건 뭐라고 쓰여있는거에요?"
한 아저씨가 절벽 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이드님께 질문했다.
아저씨의 손끝을 따라가니 절벽에 알록달록한 색의 그림과 글씨가 쓰여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옴 마니 반메 훔' 이라는 만트라 티베트 글자에요."
오 많이 들어봤던 문장이었다. 여행 후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ༀ མ ཎི པདྨེ ཧཱུྃ' 이 뜻은, 자비와 지혜를 하나로 닦아, 불완전한 몸과 말, 마음을 부처의 청정한 몸과 말, 마음으로 전환한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체 저걸 바위에 어떻게 새겼을까.
바위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제 막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 가이드님이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참고로 지름길이 있습니다. 이쪽 길은 지름길이지만 올라갈 때에만 이용하시구요, 절대로 내려올 때는 이 길로 오지 마세요. 내려올 때에는 저쪽으로 돌아서 내려오시면 됩니다. 절대로 지름길로는 내려오지 마세요."
"동생아, 우리는 지름길로 얼른 올라가서 돌아보고 내려오자."
"응 그러자. 빨리 올라갔다가 오자."
동생과 나는 고민없이 지름길로 향했다. 10분도 채 가지 않고서, 왜 가이드님이 내려올 때에는 이 길로 와서는 안된다고 하셨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이 지름길은 미친듯이 가팔랐다. 오전에 트레킹하던 가파름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위와 잔디가 뒤섞여 미끄럽기도 했으며, 점점 좁아지는 듯한 형세가 위험해보이기까지 했다. 중간쯤 오르니 한 커플이 길 중턱에 누워있었다. 정확히는 뻗어있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길을 가운데에 두고 양 옆으로 각자 누워있었는데, 남성분이 몸을 일으켜 여자 분의 발을 마사지해주기 시작했다. 제발 우리의 미래가 아니길 바라며, 그들을 지나쳐 동생과 나는 묵묵히 올랐다. 혹시 몰라 돌아보니 어느 누구도 따라오고 있지 않았다. 이 길은 그냥 몰랐던 것이 나을법하다.
무탈히 사원의 계단 앞까지 도착했다. 땀은 비오듯 쏟아졌고, 숨은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헉헉댔다. 하지만 눈 앞에는 계단이 있다. 무려 108계단이 말이다. 동생과 나는 뒤를 돌아 경치를 보는 척하며 현실을 외면했다. 아무래도 높이 올라오다보니 경치는 너무 멋졌다. 우리가 이제까지 보던 몽골의 풍경과는 색다른 관광지였다. 과거 윈도우 xp 바탕화면 같은 초원을 보다가, 단풍과 꽃이 피어있는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경치 구경에 빠져있는데(정확히는 회피하고 있는데), 한 서양인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먼저 가라는 듯이 손짓으로 계단을 가르켰다.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우리가 곧 오를 것으로 보였는지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듯 몸짓을 보이셨고, 우리는 그것을 신호로 108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그 할아버지는 계단에 걸터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다.
동생은 이 이후로 말이 없었다. 완전히 방전된 듯해 보였다. 사진을 찍어주기위해, 여기 한번 서봐, 라고 말을 해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는지 마니차(원통 모양의 돌리는 불교 법구)를 시계방향으로 손으로 돌려가며 걸었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주었다.
오른쪽으로 더 가면 가이드님이 말씀하셨던 초록 스님 석상이 있는 건물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아쉬워서 동생에게 얼른 가보자고 재촉했고, 동생은 텅빈 눈빛으로 말없이 따라왔다.
수행을 하며 쐐기풀만 먹다 보니 초록색으로 온몸이 변했다는 스님 석상을 보고 있는데, 동생이 사원으로 올라온지 거의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언니, 이제 내려가자."
웬만하면 이런 말을 하지 않는 동생이기에 얼른 작은 사원을 빠져나왔다. 반드시 지름길로 내려오지 말라는 가이드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지름길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고, 잘 다져진 평평한 길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이런 길인 줄 알았으면 조금 걷더라도 여기로 올라가는 거였는데."
"그래도 풍경은 멋졌어"
그래도 지름길은 지름길이었던지 우리가 제일 먼저 버스로 돌아왔고 휴식을 취하다보니 어른들도 버스 좌석에 착석하였다. 얼마 쉬지 못한 것 같은데 가이드님이 마이크를 다시 잡으시고는,
"이제 마지막 코스인 거북 바위로 갈 거예요. 시간은 20분정도 드릴게요. 바위 앞에서 사진 찍으시고, 옆에는 기념품 파는 곳이 있는데 사실 거 있으면 여기서 사고 얼른 돌아오세요."
10분 정도 이동하니 너른 벌판에 거북이 모양을 한 바위 앞에 버스가 멈췄고, 마지막 일정이라는 말에 힘입어 버스에서 내렸다.
동생도 기념품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였고, 우선 거북바위를 향해 우리는 돌진했다.
더 걷고 싶지 않아서 먼발치 거북바위만 찍고 돌아서려는데, 동생이 더 앞으로 가자고 말을 꺼냈다. 아까 다 방전되어버린 줄 알았는데, 더 바위 가까이 가자고 하는 말에 나도 신이 나서 더 바위 가까이 다가갔다. 멀리서는 그냥 거북이 모양 바위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갈수록 장엄한 바위산이 분위기를 압도하듯 느껴졌다. 가까이에서 동생과 같이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아무 말은 안했지만 약속이나 한듯 기념품 샵으로 달려갔다.
내부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낙타, 말, 게르 모양의 각종 인형들부터 캐시미어 제품들 등을 팔고 있었다. 애초에 시간은 20분, 사진을 찍고 오니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동생과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고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뭘 사고 싶긴한데,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 하던 때였다.
"언니! 나 어때?"
목소리를 들어보니 동생은 아니었고, 소리의 출처를 따라 눈을 돌려보니 한 할머니가 파란 목도리를 두르고 몸을 내 쪽을 향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지만 선그라스를 껴서 나를 보는지, 내 뒤 사람을 보는지 몰랐고, 일단 누군지 모르겠으니 나는 아닌 것 같아 시선을 돌려서 다시 뭘 사야 하나 둘러보기 시작할 때였다.
" 아 언니! 나 무시해? 나 어떠냐고!"
분명 이 소리는 내 귀에 바로 꽂혔고, 이 정도면 나를 부르는 것 같았기에 그 분을 향해, 저요? 라고 되물었다.
"그래 ! 언니, 이거 나 잘 어울려?"
파란 캐시미어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포즈를 취해 보이며 계속 되물으셨고,
"파란색이 엄청 잘 어울리시네요. 얼굴이 화사해보여요."
라고 마치 준비된 답변처럼 줄줄 읊었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직장 생활 짬에서 나온 위기 무마성 대답이었다.
맞아 내가 파란색을 좋아하긴 해. 라며 목도리를 다시 내려놓으시고 다시 본인의 쇼핑에 집중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대체 저 분은 누구야, 하고 마음속으로 툴툴대며 동생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떴다. 동생이 뭘 샀나 장바구니를 보는데, 동생도 딱히 산 건 없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가이드님이 기념품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동생은 몽골에서 사야할 쇼핑 리스트를 검색했고, 그 리스트 중 하나가 잣인 것을 확인했다고 말하며 엄마에게 드리기 위해 잣을 바구니에 담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잣을 드리자, 엄마는 이렇게 귀한 걸 사왔냐며 너무 좋다고 하셨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한 개 더 사오는건데. 한국에서도 딱히 잣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잣이 귀한 줄도 몰랐네.
이제 버스에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내가 미리 계산대 줄에 서있었는데, 계산해주시는 점원분들 손이 굉장히 느렸다. 전전긍긍하며 계산을 마치고 헐레벌떡 버스로 돌아왔는데, 또 우리가 1등으로 들어왔고 늦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착석하며 한숨을 돌렸다. 하나둘 씩 버스에 오르는 어른들을 보는데, 아까 나에게 "언니!!!!" 라고 소리치던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내 앞 좌석에 앉았다.
저 분은 오늘 오전에 버스 탈 때 나에게, 여자가 머리가 짧다며 한 마디 했던 분이었구나. 기분이 썩 좋지 않았기에 그 분 얼굴을 딱히 외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나보다. 아까도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분이 고개를 돌리시더니
"아까 자꾸 불렀는데 왜 그냥 가려고 했어!"
라며 또 한 마디 하셨다.
"저 보고 말씀하시는 줄 몰랐어요. 선글라스도 끼고 계셔서 눈도 안보였다고요."
"내가 언니 말고 부를 사람이 또 어디있겠어~"
능청스레 말을 하시고는 도로 앞을 향해 앉으셨다. 더 대답할 기력도 없었고, 가끔은 어른들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저녁 식사를 할 식당으로 이동할 때까지 모든 생각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