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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몽골에서 탄 말이 국경을 넘는다면 생길 일들

자유 앞에서 비로소 떠오르는 지난 날의 나의 안전 줄

by 김이름

우리 패키지 일행은 말이 모여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처음에 우리에게 말 잘 타겠다고 농담을 던진 아저씨들도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는데, 다들 말은 안했지만 긴장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리라. 말들이 모여있는 울타리 바깥에서 지나 가이드님이 멈추어 섰고, 승마 체험에 대해 안전 수칙을 전달했다.


"여러분, 가장 기본적으로 말을 탈 때와 내릴 때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가이드님은 능숙하게 말을 앉히고 말 옆으로 다가가 발걸이에 발을 올린 후, 긴 다리를 말의 몸 반대편으로 넘겼다.


"그리고 말이 일어날 때에는 엉덩이부터 일어나니까, 말이 엉덩이를 들 때 몸을 뒤로 졎혀서 떨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세요."


가이드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말은 엉덩이를 들었고, 가이드님은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자연스럽게 말에서 균형을 잡았다. 가이드님 설명에 맞춰 말이 움직이는 걸 보니 이 말도 가이드님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것일까?


그 후에 말을 출발시키는 법, 말의 방향을 바꾸는 법, 말의 속도를 늦추는 법, 심지어 빨리 달릴 때 엉덩이가 아프지 않게 살짝 스쿼트 자세를 취하는 팁 등을 우리에게 전수하셨고, 말을 탄 채 우리 주변을 빠르게 한 바퀴 돌아 설명을 마무리 하셨다. 이 순간 우리는 가이드님께 박수갈채를 보냈다. 말타는 자세가 너무 멋졌기 때문이었다. 가이드님은 5살 때부터 승마를 하셨다니 저 정도 실력은 아무래도 당연했겠지만, 1을 누르면 1만큼 속도를 내고 5를 누르면 5만큼 속도를 내는 기계장치를 운전하다가 살아있는 생명체를 컨트롤 한다는 것에 다들 긴장한 상태여서 그 모습이 대단해보인 것이다. 단순히 말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말과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저렇게 승마를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이 있어요. 몸에서 흩날리는 옷들, 판쵸나 목도리, 이런 것들은 벗어주세요. 말들이 놀라서 앞발을 들어올리면 위험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말 엉덩이 쪽으로 절대 가지 마세요. 말 뒤차기에 맞으면 답 없습니다."





속속들이 낙오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휴 나는 못하겠어요. 하지만 승마비는 낼 태니 말 위에서 사진만 찍으면 안될까요? 등 말씀하시며 여러 명이 탈락했다. 아까 트레킹 때 정상에서 만났던 할머니도 물러나셨다. 안그래도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걱정했는데, 손아귀 힘이 없다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마를 대비해서 우리 모두는 헬멧을 썼다.


처음 몽골 투어 예약을 할 때 승마 체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여행날이 다가올수록 걱정 하나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말을 타고 달리는데, 내가 탄 말이 갑자기 자신의 달리기에 주체를 못하거나 무리를 이탈하여 너른 평야를 끝없이 달려나가면 어떡하지? 이러다가 국경을 넘어서 중국이나 러시아로 간다면? 러시아는 전쟁중인데 하지만 중국도 안전할 것 같진 않은데. 중앙아시아 쪽으로 간다면 그나마 나을까? 국경 지대에서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영어로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하면 그들은 납득할 수 있을까? 나와 동행한 말도 책임져야 하는데 말은 초원의 풀을 뜯으면 되지만 난 뭘 먹어야 하지?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트레킹 때에도 혹시 몰라 여권을 들고 나왔는데, 말 탄다고 이번엔 여권을 놓고왔다. 아무래도 국제 미아가 될 것이 틀림없다.


생존 영단어를 떠올리며 별별 생각을 다하다 보니 우리가 말에 탈 차례가 다가왔다. 일단 동생을 먼저 말에 탑승시켰다. 아까 배운대로 말에 잘 올라탔고 몸의 균형을 잡아 말이 일어서는 과정까지 무탈했다. 나도 연이어 말에 탑승했고, 아까까지의 상상은 무색하게도 우리의 말에 묶인 줄을 우리를 맡으신 몽골 할아버지께서 붙잡고 출발선(?)으로 이끌어주셨다. 아무래도 저 줄이 있는 이유는 분명 말이 폭주해서 달려나갈 수도 있기 떄문일거란 확신이 들었다.


말 위에서 사진만 찍고 내려 오신 분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출발하기 위해 이동했다. 각각 일행별로 가이드하시는 분들이 말의 줄을 잡고 움직였다. 나와 동생은 아까 밥을 먹던 가정집에서 할아버지로 보이시는 분이 안내를 도와주셨다. 처음엔 굉장히 무뚝뚝해 보여서 동생과 나는 조용히 경치를 둘러보며 말타는 장소로 이동했다.


일행이 이동을 시작하자 아까 마당에서 잠을 자던 방카르 강아지가 기지개를 쭉 피더니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개를 보며 산책하는건가? 하며 강아지를 연신 불러댔다. 그 개는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우리와 다른 일행들이 탄 말 주변을 왔다갔다 했다. 말을 모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다같이 이동하니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아니면 얘도 일을 하는 걸까?


앞 편에서도 설명했듯이 이 곳의 풍경은 내가 버스를 타며 차창 밖에서 본 몽공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몽골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성 밖에서 말을 타고 산책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이드님이 이곳의 경치가 말타기에 너무 좋아서, 자기 손님들한테는 여기만 안내한다고 하는데 다음에 또 오고 싶어서 이곳 구글맵을 캡쳐해두고 싶었는데 핸드폰을 소지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할아버지 가이드님이 앞장 서서 말을 몰았고, 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뒤에서 우리 말이 따라가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동생과 나는 뒤에서 나란히 따라가고 있는데 우리 두 말이 친한지 자꾸 몸 쪽이 붙었고, 두 마리의 말이 붙다보니 우리 발도 자꾸 부딪혔다. 우리는 가이드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한쪽 줄을 잡아 당겨 말의 방향을 바꿔 두 말을 떨어뜨렸다. 아무래도 운전 미숙이다보니 두 말이 말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많이 멀어지려고 했고, 앞서 말을 몰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영문을 모르셨는지 뒤를 돌아보며 말에게 뭐라고 하셨다. 다른 가족분이 말을 타고 우리 옆으로 따라오셨고 우리를 더 컨트롤 해주셨는데, 자꾸 할아버지가 말에게 잔소리를 하자 내가 타던 말이 할아버지 팔뚝을 콱 물어버렸다. 할아버지는 패딩을 입고 계셨고, 사실 물었다기 보다는 입으로 할아버지 팔을 꾹- 밀어버린 것으로 보였다. 앞에서 말을 끌던 할아버지는 마치 "야임마" 라고 한 것처럼 말에게 꿀밤 한대를 먹이셨는데, 나와 동생은 깜짝 놀랐으나 옆에 따라오던 가족분이 파하학-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서야 우리도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을 감지하고는 따라 웃었고, 웃는 우리를 본 할아버지도 껄껄 웃으셨다.


말을 타지 못하겠다고 나이드신 분들이 포기 선언을 하신 와중에, 우리를 가이드 하는 분이 할아버지인 것에 처음에 살짝 불안했다. 하지만 몽골에서는 3-4살부터 말을 탄다고 했으니(가이드님 말이 농담은 아니겠지?) 그정도라면 할아버지는 베테랑급 경력자인 것이다. 앞선 일행들은 앞뒤 간격이 좁아 속도를 내지 못했는데, 할아버지는 우리 말을 일행 무리에서 빠져나오도록 이끈 다음에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금 속도를 내주셨다. 앞에 사람들이 많아 시야가 갑갑했는데 탁 트인 곳으로 이동하니 아까 멋져보였던 경치를 더 즐길 수 있었다. 방카르 강아지도 우리가 있는 쪽으로 따라왔고, 우리는 말을 타며 시내가를 건너고 들판도 달렸다.


초등학생 때 명절을 보내러 제주도 할머니 댁에 사촌들과 모였을 떄, 시골에서 딱히 할게 없던 우리는 심심하게 누워있었는데, 아빠가 이런 우리들을 이끌고 바깥으로 데려나가셨다. 그중 한 곳이 승마 체험장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승마를 했었다. 그때 말들은 좁은 마굿간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내가 탄 말은 어미 말이었는지 말을 타는 내내 아기 말이 뒤에서 함께 따라왔던 기억이 났다. 당시 10분 정도 코스만 돌고 내려왔는데 졸졸 따라오던 아기 말이 눈에 선하다. 아주 먼 옛날부터 말은 인간의 이동 수단 중 하나로 이용되어왔는데, 그때의 말들은 인간과의 거래에 만족했을까? 우리를 태워주는 대신 푹 쉴 수 있는 마굿간과 식사 등을 만족할만큼 얻어내었을까? 전쟁에 나가는 말들은? 싸울 의사가 없는데 인간들의 싸움에 이용되어 찌르는 창에 맞고 칼에 베이지 않았나? 말목 자른 김유신은, 자기가 기생 집에 말을 타고 들락날락 해놓고 똑똑한 말이 또 기생집으로 향하는 걸 왜 말 탓을 하고 목을 베어버렸을까.


또또, 다른 생각. 하지만 말을 관광 상품으로 이용하는 나를 생각하며, 어릴 적 내가 탄 말의 기억부터 몽골을 달리는 말들을 비교하며, 과거의 말과 현재의 말을 생각하며 내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나는 고기를 끊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생각 정리를 하지 못하여 여전히 먹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경로 이탈 후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걷는 중



어찌되었든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옆으로 빠져 다른 길로 가며 주변을 구경하던 우리는 우와!! 하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그런 우리를 돌아보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빨리빨리?"


동생과 나는 동시에 눈빛을 주고 받고는 "빨리빨리!!" 를 외치며 화답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추추-" 라고 하셨고, 이 말을 들은 말들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엉덩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아까 가이드님께서 설명해주신 스쿼트 자세로 엉덩이를 말의 등에서 떨어뜨려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허벅지 근육을 잔뜩 써야했기에 어느 고통 하나쯤은 수반해야했고 엉덩이보단 허벅지가 낫겠다는 선택을 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사람들과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시더니 우리를 야크 목장에 데려다주셨다. 저 동물 떼들이 바로 야크라고 하시며(그냥 "야크, 야크" 라고 하심. 지나 가이드님 없이 의사소통 못함.) 야크 구경을 시켜주셨다. 우리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크를 눈앞에서 구경했고, 주머니에 핸드폰을 챙겨온 동생이 야크 무리를 사진에 담아놓았다(제목에 있는 사진이 야크 무리).


10-15분 정도 타겠지 하는 나의 예상은 빗나갔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말을 타고 초원을 누볐다. 특히 이곳의 경치는 4박 5일 내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우리 테이블에 앉아 함께 밥을 먹던 부부도 말을 타는 동안에는 폰을 꺼내지 못하여 그곳이 어디었는지 알 수 없다는 아쉬움을 들을 정도로 모두가 만족했던 장소였다.


찰박찰박, 시냇가를 여러 번 건너고 오르막 내리막 급경사도 오가며 다양한 코스를 달리며 점점 말의 바운스에 익숙해질 무렵, 저멀리 우리의 투어 버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끝이 나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금새 우리는 버스 앞에 도착했고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말에서 내려왔다. 동생이 무의식적으로 말의 엉덩이 쪽으로 돌아서 나오려던 때, 할아버지는 급히 팔을 뻗어 동생을 저지해주었다. 말에서 내린 순간 나도 긴장이 풀려 인식하지 못했는데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신 할아버지께 팁을 드렸고,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경로로 여유롭게 주변 경치를 보여주시고 빨리빨리? 의 센스 덕에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팁을 더 포함하여 드리며 "바이렐라-" 하고 인사를 드렸다. 마지막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셀카로 마무리하고 버스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는 동안에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말을 탔던 경험은 꽤나 오래 마음속에 머물러 내 태도를 바꾸었다.


초원을 자유롭게 달렸다고 생각한 그날, 사실 그 자유에는 조건이 있었다. 말의 줄을 잡고 앞에서 잡아주시던 할아버지의 통제, 그리고 그 안에서만 허락된 질주였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유가 갑자기 약간의 허상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책임지고 잡아주는 안전 줄이 있었기에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달릴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통제와 누군가의 책임 위에서만 그럴듯한 평화가 유지되는 걸까?

나는 퇴사 후 내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얻은 대신 그에 맞는 책임을 혼자서 전부 지고 있다. 회사라는 안전 줄에 잡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이번에는 말의 줄을 잡아주는 할아버지도 없고, 추추- 하며 속도를 내는 팀장님도 없다. 내가 탄 말은 어디로든 달릴 수 있다.


부디, 러시아 국경만큼은 넘지 않길 바라며.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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