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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가정집 식탁에서 배운 것들

허르헉과 아이락, 아롤을 통해 본 초원의 생활 방식

by 김이름

우리는 가정집에서 몽골 전통 식사인 허르헉을 먹기 위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버스가 가정집이 있는 골목 깊이 들어가지는 못하고, 어느 지점에서 우리를 전부 내려주었다. 이번 내린 곳은 내가 차창 밖으로 본 몽골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는데, 마치 가을의 유럽의 어느 마을처럼 느껴지는 이색적인 느낌이었다. 가이드님이 몽골을 전부 체험하기 위해서는 한 달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전날 이 곳은 비가 내렸는지 물이 고인 웅덩이와 진흙길이 펼쳐져 있었고, 이 웅덩이를 피하며 걷다 보니 어느 게르 앞에 도달하였다. 게르 두 채가 있었는데 한 곳은 가족들이 머무는 가정집이고 다른 곳은 우리가 식사를 할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가정집 체험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게르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번 식당에는 여러 테이블이 이어진 두 개의 긴 좌석이 마련되었다. 회사에서 겪은 회식 테이블처럼 느껴지는 구성이었는데, 어느 테이블에 앉아도 단체석 느낌은 피할 수가 없어서 눈에 보이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동생과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반대편 테이블에는 주로 여성분들이 앉게 되었고 우리 테이블에는 남성 어른들이 앉으셨다. 아주머니들은 바로 가방에서 깻잎, 고추장 등을 꺼내어 식탁에 세팅을 하셨고 아저씨들은 서로의 텀블러를 교환하며 컵에 무언가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한 잔 드릴까요?" 라고 물으셨을 때 풍겨오는 내음에서 그것이 소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정중히 "저희는 술을 안마셔요, 괜찮습니다." 라고 말을 전했다. 아주머니들의 특유의 시끌벅적함과 아저씨들의 침묵의 술 마시는 테이블의 분위기를 굳이 비교하자면 후자가 조용히 있기는 편해서, 허르헉이 나올 때까지 동생과 담소를 나누며 마음 편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가이드님이 허르헉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허르헉이란 몽골 유목민들이 경사가 있는 날에, 혹은 명절, 귀한 손님이 올 때 대접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이 메뉴의 조리법이 꽤 신기했는데, 허르헉은 양고기와 감자, 채소를 한 냄비에 넣고, 뜨겁게 달군 돌을 함께 넣는다. 이 돌의 열기로 음식을 찌는 것이다.


각 테이블에 놓인 허르헉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다보니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밑반찬이 깔리고 주메뉴가 나왔는데 몽골은 바로 주메뉴가 나온다는 점이 색달랐다. 테이블마다 허르헉이 깔렸고, 마지막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아주머니 뒤로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 들어왔다가,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게르를 나가시는 아주머니의 손에 붙잡혀 퇴장한 모습이 글을 쓰는데 갑자기 떠올랐다. 어찌됐든 고기가 상에 올라왔고 한 조각씩 각자의 앞접시에 덜어가서 맛을 보았다. 양고기는 먹을 때마다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이 허르헉에서는 그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가이드님이 설명해주시기를, 보통 관광 식당에서 허르헉을 먹는다면 냉동 양고기를 사용해서 잡내가 나기도 하는데, 이 가정집은 냉동으로 보관한 고기를 쓰지 않아서 냄새도 없기 때문에 본인은 이 곳을 손님들께 주로 안내한다고 말씀주셨다.


아주머니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온 고영이


동생이 혹시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고추장 튜브를 가져와서 앞접시에 미리 짜두었는데, 허르헉을 먹는 동안 거의 찍어먹지 않았고, 식사 말미에 감자 맛이 단조로워질쯤 싹 긁어서 마무리했다. 어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며 먹다보니 식사가 늦어졌고, 나와 동생은 할당 분의 식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와 게르 주변을 돌아다니며 동물 구경을 했다. 바깥에는 아까 내쫓김 당한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그 고양이는 신경도 안 쓰는 듯한 강아지 한 마리가 볕을 쬐며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 숙소에 어슬렁거리던 강아지와는 다르게 생겼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눈 위에 또 다른 눈처럼 보이는 갈색 점이 찍혀있었다. 이 강아지가 바로 그 유명한 몽골 전통 개인 방카르 인 것 같았다. 강아지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소형견과는 다르게 의젓해 보였다. 귀여운 방카르는 우리의 인사 소리에 살짝 실눈을 뜨고 바라보다가 도로 눈을 감았다. 반응 없는 강아지의 행동에 살짝 민망해진 우리는 말이 있는 마굿간을 구경하기도 했고, 울타리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가르키며 어느 까마귀가 더 큰지 이야기하기도 했다.


식당 앞 우리를 반겼던 방카르


시간이 흘러 어른들의 식사도 끝났고, 가이드님이 이제 이 요리를 차려주신 분들의 가족이 거주하는 게르로 들어가서 전통 간식을 먹는 것을 제안하셨고 동생과 나는 가이드님 뒤를 바짝 쫓아 가장먼저 게르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모두가 자리를 잡으니 아까 고양이를 안고 나가셨던 아주머니가 들어오셨고, 우리에게 소주잔만한 컵을 나누어주시더니 작은 국자로 우유같이 하얀 액체를 담아주셨다. 의 젖으로 만든 유제품이라고 설명해주셨는데, 이름은 아이락 이라고 했다. 말젖을 발효시켜 만들었다고 하여 요구르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쭉 마셨는데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시큼한 맛이 올라왔다. 오히려 달짝지근한 요거트가 아닌 막걸리와 같은 술에 가까웠다. 내 반응을 본 동생은 아주 찔끔 맛을 보았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나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장 앞에 앉아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지 못한 채 한번에 들이킨 것이었다. 나와 동생의 표정을 본 어른들은 다들 조금씩 맛보기 시작하셨고, 몇몇의 어른들은 감탄사를 내뱉으시더니 앞으로 나오셔서 몇 국자 더 떠다가 자리로 돌아가셨다.


그 다음에는 요거트를 굳힌 스낵같은 것을 나누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 간식은 아롤이라고 하며 우유를 끓여 농축한 후에 건조시킨 몽골식 과자라고 소개해주셨다. 아주머니가 이번엔 뒤에서부터 아롤을 배급해주시기 시작했다. 뒤에서부터 아롤을 드시는 어른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는데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아까 마신 아이락처럼 신 맛 나는 간식은 아닌가보다하고 생각하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생김새는 치토스처럼 생겼지만 새하얀 색이었다. 눈으로만 봤을 때는 바삭- 하는 소리를 낼 것 같은 비주얼인데 막상 손으로 집어보니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었고, 한 입 씹으니까 초콜릿처럼 부드럽게 씹혔다. 하지만 그 맛은 역시 초콜릿처럼 달기보다는 아까 새콤하게 마셨던 음료에 더 가까웠다. 나와 동생은 배정해주신 간식을 다 먹은 뒤로 더 받지 않았지만, 주변 어른들은 이 아롤을 몇 번이고 직접 가져다 드셨다.


이 아이락과 아롤은 몽골인들이 초원에서 살아가면서 가축의 젖을 낭비하지 않고 오래 보관하고 영양을 섭취하게 위해 고안된 생존 전략이라고 한다. 몽골의 5대 가축에는 소와 말 등이 있는데 가구당 키우는 마리 수가 많기 때문에 하루에 많은 양의 젖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모아둔 젖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다양한 가공법을 고안해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아이락과 아롤인 것이다. 몽골의 고기 중심 식단을 보완하기 위함이기도 하며 추운 지역에서 체온과 체력을 보충하기에도 딱 좋은 간식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세계에는 기후와 그에 따른 문화가 발달된다는 것이 새삼스레 낯설었다. 과거 기후학도로서 기후에 따른 식생 분포, 기후 예측 등의 연구를 했지만 기후에 대한 사람들의 식생활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이런 쪽으로 한번 깊게 찾아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집 내부 장식들


우리는 간식을 먹으며 가이드님에게 실제 몽골인들이 사는 게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간식을 다 먹고나서야 게르의 내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맞은편에 출입문이 위치할 정도로 게르의 가장 안쪽에 들어왔는데, 그 가장 안쪽의 천장에는 몽골 전통 악기가 걸려있고 가족사진이 놓여있었다. 몽골의 전통 악기는 바이올린처럼 생겼으면서도 말 머리가 달려 있는 게 독특해보였다. 그리고 몽골은 다산을 한 가족에게 특별 훈장을 내린다고 하는데, 가족 사진을 보니 그 훈장을 이미 받고도 남을 정도로 구성원이 많았다. 그리고 가족에게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말에게 얹는 말의 안장도 구경했고, 집에 걸려있는 천에 색깔에 대한 의미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게르에 대한 설명과 내부 장식장을 보니 이렇게 많은 것이 세팅되어 있는 집도 이동 생활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보통 몽골인들은 이런 게르를 해체하고 설치하며 유목 생활을 한다고 한다. 짐들은 보통 낙타가 짊어진다고 하는데, 꽤나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던 가정집은 이동 생활을 하는 집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 집에서 기르는 말을 타고 승마체험을 한다고 하니, 아마 이런 관광객을 위해 식사를 내고 전통 게르 설명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며 승마 체험을 업으로 하는 집이어서 다른 가족과는 다르게 정착 생활을 하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르 내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게르 주인에게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후(바이렐라!) 실외로 나섰다. 우리가 방마다 문지방을 밟으면 복이 나간다고 하는 미신이 있듯이, 몽골에도 게르의 문턱을 밟으면 불운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승마 체험 시 운이 없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게르 문턱을 피해 나왔다. 자꾸 아저씨들이, 제주 아가씨들은 말을 잘 타겠다고 기대된다고 하시는 말씀에 살짝 긴장이 된다. 말에서 낙마 없이 잘 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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