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게르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예상 밖의 풍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는 큰 호텔이 있었고 호텔 맞은편으로는 게르가 여러 채 몰려있었는데, 가이드님께서 아침 식사는 호텔 1층 로비에 있는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먹을 것이라는 안내를 해주셨다.
그렇다. 이 게르촌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게르였고, 호텔 외부의 조명과 게르 곳곳마다 세워진 가로등 때문에 주위가 매우 밝았다. 이 상태에서 별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좌절감에 잠겨있을 무렵, 큰 강아지(보통 우리는 이럴 경우 '개' 라고 부르지만) 한 마리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이미 본가에 귀여운 강아지들을 기르고 있었기에 이 강아지 또한 우리 눈에는 너무 귀여워보였다. 하지만 낯선 장소에서 만난 강아지를 함부로 만졌다가는 혹시 물린다면 여행의 시작부터 크게 일이 꼬일 것 같아서 신중하고 또 신중하여 강아지 만지는 것을 참았다. 강아지는 이 게르촌을 관리하는 것마냥 게르 사이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했으며, 우리들이 장을 보고 들고오는 비닐 봉지에도 관심을 가지며 냄새를 맡고 졸졸 따라왔다.
가이드님이 정해준 숙소 호실 키를 받고 배정된 게르의 문을 열었을 때, 정말 의외의 풍경이 펼쳐졌다. 내가 알던 게르는 허름하고 낡은 분위기를 풍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호텔 소속(?) 게르이다보니 겉모습만 게르의 형태를 띄고 일반 호텔에 묵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4인실 게르를 나와 동생 이렇게 두 명이 쓰게 되었는데, 각 침대마다 콘센트가 있었으며, 화장실 앞에도 하나, 화장실 안에도 하나, 게르 입구에도 하나 이렇게 여러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멀티탭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행용 멀티탭을 사왔는데 의미가 없어졌다. 무려 각 침대에는 USB 를 꽂는 자리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나와 동생은 각자의 핸드폰, 워치, 보조배터리를 여러 군데에 충전하고도 자리가 남았다.
화장실도 현대식 변기에 샤워실은 유리 부스까지 갖추어져 있었고, 호텔 이름이 쓰여진 수건과 실내화도 비닐에 싸인 채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열악한 환경을 떠올리고는 일회용 티슈와 쓰고 버릴 수건을 챙겨왔는데, 바리바리 싸온 짐들이 의미가 없어졌다. 커피포트까지 갖추어져 있어서 내가 챙겨온 휴대용 커피포트조차 꺼낼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공용보다는 가져온 걸 쓰자 싶어서 챙겨온 포트를 꺼내두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캠핑용 컵을 사왔는데 머그컵도 다 구비되어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왜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은 상품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막상 게르 안에 들어오니 훈훈한 온기와 새로운 공간이 주는 느낌이 신선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진을 남겼다.
동생과 조금 휴식을 취하고 난 뒤에, 정말 별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카메라와 삼각대 등 이것저것 챙겨서 바깥으로 나섰다. 우리가 도착했을 시기는 몽골의 기온이 크게 떨어질 때쯤인 9월이었기에, 밤에는 손이 시리고 코 끝이 찡해왔다. 히트택과 니트, 외투를 챙겨 입고 핫팩까지 챙겨 단단히 무장을 했다.
군데군데 놓인 가로등과 맞은편 호텔 외부 벽면에 비추는 조명들로 인해 주위가 밝았지만, 가이드님 말씀대로 빛을 좀 숨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눈이 점점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나와 동생은 탄성을 내뱉었다.
"언니, 별이 이렇게 많았어?"
"진짜 많다. 안보일 줄 알았는데 이정도 밝기에도 보이면, 진짜 어두운 곳 가면 얼마나 많이 보일까?"
"언니 저거 북두칠성이야? 북두칠성이 저렇게 컸어?"
"완전 거대하다. 우리가 알던 국자보다 엄청 큰데. 저정도 사이즈면 급식소 국자 아닌가"
우린 넋을 놓고 고개를 젖혀 하늘만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가지고 나온 삼각대를 설치하고 이곳저곳 사진을 남겼다.
내가 상상했던 몽골의 밤하늘이 아니어서일까? 어린시절 시골에서 본 밤하늘과 비교해보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아니면 어린 시절 기억을 미화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게르에서의 2박 중 첫 날의 별 보기는 성공했고, 동생과 내일 밤에는 옷도 예쁘게 입고 나와서 별을 배경으로 사진을 더 찍기로 하고 게르로 들어왔다.
사실 너무 추웠다. 손가락은 점점 굳고 코를 훌쩍이며 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기에는 추운 것을 넘어서서 온 몸에 통증이 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왜 사람들이 성수기인 7-8월에 몽골에 오는지 납득이 되었다. 삐딱선을 탔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대체로 선호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다수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거의 인생 최초로 한 듯하다.
장관을 즐기고 난 뒤 흥분되는 마음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우린 온열 안대를 눈에 댐과 동시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저멀리 동이 트고 있었다. 나가서 해가 뜨는 걸 보면 정말 예쁠 것 같은데 그보다 너무 추운 기온과 건조함으로 인해 얼굴이 찢어질 것 같았고, 내일 아침에는 꼭 일출을 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창가에서 물러나 도로 테이블로 돌아와서 커피 포트의 물을 데웠다. 동생은 아직 자고 있었고, 나는 아침에는 무조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 루틴을 깨고 올해의 첫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몽골에서 마시게 되었다. 테이블에는 호텔에서 제공해준 머그컵이 있었지만, 내가 챙겨온 준비물들을 꺼내보지도 않고 돌아가면 억울할 것 같아서 스테인리스 캠핑 컵에 커피를 탔다. 뜨거운 물로 인해 컵도 데워지는 바람에, 앗 뜨거- 하는 내 비명 소리와 함께 동생이 기상했다.
각자 커피 한 잔씩 하고 난 뒤, 호텔 조식은 어떨까 싶은 마음에 게르 밖을 나섰다. 이미 주위는 밝아졌고 해가 뜨기 시작하니 대지의 온도가 바로 오르기 시작하면서 온몸에 열이 돌았다. 호텔 쪽으로 걸어가는데 어제 밤에 만난 강아지가 우리에게 달려왔다.
사람을 보니 반가웠는지 쫄래쫄래 따라오다가 잠시 멈춰서 바닥을 킁킁대다가, 거리가 멀어지면 다시 달려와 거리를 좁히는 등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는데, 이번엔 고양이가 나타나서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 동물이 참 많다 생각하며 또 호텔을 향해 걷고 있는데 이번엔 소 여러 마리가 여기저기서 풀을 뜯고 있었다. 동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보였다. 우리는 10분이면 걸어가는 거리를 20분 씩이나 걸으면서 동물들과 사진을 찍으며 간신히 아침 식사를 하러 호텔에 들어갔다.
뷔페식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호텔의 크기에 비해 메뉴는 조금 부실했다. 그래도 이 정도 식사라면 이 동네에서는 상당히 신경 쓴 정도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양상추는 거의 시들었고 사과도 갈변하고 있었지만, 어제 가이드님께서 설명해주신 과일과 야채의 출처를 생각하면 이정도라도 몽골에서 먹을 수 있음에 감사히 생각하며 접시에 가득 담았다. 그 외에도 닭 스프, 토스트, 계란, 밥 등 원하는 식사류로 골라서 먹을 수 있었다.
배를 채우고 호텔을 빠져나왔을 무렵에 기온은 꽤나 올랐고 우리는 외투를 벗은 채 게르로 돌아왔다. 또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오늘의 일정을 검토했다.
오전엔 트레킹을 하고 몽골 전통 식사인 허르헉을 점심으로 먹을 것이고 몽골 전통 간식 체험을 할 것이다. 그 이후 승마체험을 하고 아르야발 사원에 갔다가 거북바위까지 들르고 저녁 식사 후 오늘의 일정이 끝난다.
별을 보는 게 소원이었던지라 더 이상 기대할 것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주 다이나믹한 하루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