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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김치찌개 앞에서 나는 지난 10년을 떠올렸다.

조직 문화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 순간들

by 김이름

저녁 식사 장소 근처에 다다르자 버스는 속력을 늦추기 시작했고, 식당 앞에서 앞 뒤로 움직이며 자리를 잡더니 곧 앞 문이 열렸다. 버스에서 내려 간판을 보니, "정성을 다하는 맛집" 이라는 문구와 함께 한국어로 된 간판이 떡하니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어색한 풍경은 아니었다. 식당으로 오는 동안 CU와 GS 편의점을 숱하게 봐왔고, 본죽과 탐앤탐스 로고가 그려진 컨테이너 박스도 보았기에 역시 경기도 몽골시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실내로 들어서자 진한 김치찌개 향이 풍겨오면서 안경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동생과 나는 우리 둘이 조용히 먹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았으나, 테이블은 최소 4인이 앉을 수 있게 세팅되어 있었고 4인 테이블이 아니라면 회식하듯 8인 이상 붙여놓은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듯 4인 자리로 돌진해서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부부가 오셨는데 김치찌개가 끓을 때까지 우리 네 명은 침묵하며 김치찌개만을 바라보았다. 김치찌개가 끓은 이유는 아마 버너 때문이 아니라 4인의 눈빛 때문이 아니었을까.


버너와 함께 등장한 몽골에서의 김치찌개



찌개가 팔팔 끓기 시작하면서 찌개 안에 들어있던 두부가 들썩이기 시작했고, 이를 보고 있던 4인 중 여성 어르신이 우리에게 국자를 내미시며, 먼저 뜨라고 권해주셨다. 동생은 첫 직장 회식 때의 짬을 발휘하여 접시에 국을 퍼 담아 앞에 계신 어른들께 내밀었는데, 어른들은 손을 저으시면서 먼저 떠서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이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른이라면 당연히 대접을 받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깊게 박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 생활을 8년 가까이 했다. 대학생 때 랩실에서 -다, -나, -까 로 대화하는 문화까지 합친다면 10년은 족히 넘었구나. 그 시간 동안 내가 배운 어른 모시는 법은 이런 것이었다. 끼니 때만 되면 식사 챙겨 드리기, 아침에 오면 커피 내려 드리기, 30분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정돈하기 등등. 내가 만난 어른들은 99% 상사로 만났기에(부모님 제외), "어른 = 상사" 로 인식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군기 잡던 대학원생 시절 경험으로 인하여, 어른을 모신다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을 남겼다. 좋게 좋게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을, 꼭 개념 없다, 싸가지가 없다로 시작해서 온갖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던 걸까. 물론 모든 선배가 다 이런 것은 아니었고, 또한 이 시절이 있었기에 어디가서든지 일을 좀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자꾸 어른들을 보면 피하고 싶고 경계심이 바짝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의전 가득한 조직 문화만 겪다보니, 동생이 먼저 접시에 국을 덜어 건네드린 그릇을 사양하신 것이 충격이었다. 동생은 취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고, 동생 또한 어른들이 한 번 정도 거절한 것이라 생각한지 '아니에요 먼저 드세요' 라며 다시 그릇을 드렸지만, 얼른 뜨고 국자만 주면 돼요, 라고 하셨다. 우리는 얼른 국을 덜었고 어른들께 국자를 넘겨 드렸다. 아무렇지 않게 국자를 건네 받아 국을 퍼서 남편 분께 건네고 자신도 곧 퍼내어 식사를 시작하셨다. 그 후에도 침묵 속에서 밥을 먹는데 찌개가 끓으면서 국물이 여기저기 튀기 시작했다. 가이드님이 갑자기 어디선가 앞치마를 들고 오시더니, 필요하신 분? 하고 돌아다니며 건네셨고, 동생도 하나 건네받아 목에 걸었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처음처럼". 분명 징기스칸 마동상까지는 내가 몽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어느새 분위기는 한국이었다. 사람들 모두 앞치마를 보고 한 마디씩 하셨고, 이 앞치마를 계기로 같이 자리에 앉은 부부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역시나 시작은, "어디서 오셨어요?", 그리고 역시나 시작은 어른들이 먼저 대화 시작.


우리와 얘기를 트기 시작하면 어른들이 놀라는 점. 첫 번째는 이전 글에서 소개했듯, 제주도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자매라는 점이다. 나는 머리가 아주 짧은 숏컷이었고 동생은 컬이 들어간 긴 머리였다. 자매인데도 이렇게 성향이 다르냐면서 한 마디씩 하셨다. 이에 덧붙여 두 분은, 어떻게 자매끼리 놀러올 생각을 다 했냐, 어린 것 같은데 그것도 몽골을 다 오고 말이다, 하셨다. 자매들끼리 여행이 흔한 줄 알았고 게다가 몽골 여행이라면 되레 내가 여쭙고 싶을 정도였다. 어른들은 몽골 여행 힘들어 하시지 않나요? 라고 말이다. 대화가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기에, 그냥 별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만 간단히 말씀드렸고 간간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식사를 마치게 되었다.


일어나기 전 물을 마실까 싶어 물병을 봤더니, 물병은 "좋은데이" 였다. 이 식당 내부 만큼은 한국이었던 것이다. 한 순간에 몽골과 한국을 넘나들었던 경험이었다.


결국 물은 마시지 않았다. 보리차였을까?



버스에 올라타기 전, 징기스칸 마동상 전망대에서 만난 남자 어른 두 분이 또 한번, "제주 아가씨들, 저녁 맛있게 먹었어?" 라고 말을 붙이셨다. 그리고는 아까 대화를 엿들었는지, "둘이 자매라며! 우리는 형제야" 라며 껄껄 웃으셨다. 그제서야 두 분이 참 비슷하게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고, 나와 동생은 동시에 "와 진짜 닮았어요." 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주변 어른들과의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번에 무너져 내린 계기였다. 사회 초년생 시절 이후 어른들에게 경계심을 갖고 있던지라, 아마 어른들도 그걸 느꼈을 수도 있는데 먼저 다가와주시고 말을 붙여 주시니 이런 경계심이 무장 해제 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이렇게나 편안하게 대해 주시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참 이상한 어른들이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버스에 모두 올라타니 버스 안은 찌개 향으로 가득했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주위는 캄캄했다. 버스는 10분을 더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님이 안전 수칙을 말씀하셨다.


1. 신발은 게르 안에 벗으세요. 바깥에 벗으면 들개들이 물어갑니다.


2. 게르 주변을 돌아다니는 개는 귀엽지만 너무 만지지는 마세요. 길바닥에 있는 건 모두 먹습니다. 길바닥에는 소똥이 많아요. 혹시나 물리면 병에 걸릴 수 있어요.


3. 이 곳은 따뜻한 물이 잘 나옵니다. 하지만 수도꼭지를 돌릴 때 따뜻한 물을 쓰려면 왼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알 수 없어요. 빨간 표시가 된 쪽으로 돌려도 찬 물일 수 있으니 양쪽으로 다 돌려보세요.


4. 별을 보려면 빛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서 숨으면 볼 수 있습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마세요. 야생 동물이 나타날 수 있어요.


음? 조건이 이상했다. 별을 보려면 빛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라니? 몽골에서의 별은 하늘만 보면 쏟아질듯이 보이는 것이 아니었나?


불안함이 감돌았다. 투어 신청할 때에도 별을 보기 위한 시간은 따로 없으나, 그냥 게르 바깥에서 보면 된다고 되어 있었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이드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었는지는 게르가 모인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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