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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이것'만은 절대 물어보지 않기

몇 시에 도착해요? 절대 금지

by 김이름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여행 가이드를 맡은 지나(가명)라고 합니다."


버스가 공항을 떠나기 위해 움직이자 가이드님이 마이크를 들고 여행객들을 바라보며 자기소개를 하셨다. 패키지 여행은 처음이라 혹시 관광객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해야하나 내심 걱정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 후에 몽골어로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생베노, 바이렐라)를 배우고 간단한 몽골 소개를 들으며 이동을 했다.


1. 몽골은 시간 개념이 한국만큼 정확하지 않다. 몇 시 도착 예정이에요? 와 같은 질문은 금지이다. 특히 울란바토르 시내의 경우 교통 체증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예상 도착 시간을 알 수 없다. 현지인의 경우 약속을 잡을 때에도 오전에 만나, 하는 식으로 약속을 한다. 가이드님께서 한번은 몽골 손님을 모시고 한국 투어를 했었는데, 아침 9시 집합이라고 하면 10시부터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을 두고 투어 버스가 떠나더라도 손님들은 불평없이 스스로 관광 장소까지 잘 찾아 온다고 했다.

>>>>> 만일 내가 플라잉 체어에 앉았을 때, 금지어를 말할 시에 나를 날려버린다면 그 금지어는 "몇 시"로 정하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앉은 시간보다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버스로 이동하며 몽골 초원을 바라보면서, 이런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 라고 떠올리다가 저 얘기를 듣고는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가이드님도 버스 운전 기사분께, '몇 시까지 어디로 이동 부탁드려요' 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가이드님은 한국 사람을 많이 접해보고 가이드 경험도 많기에 우리에게 몇 시 쯤 도착할 듯하다며 알려주셨다.


2. 몽골의 인구 수는 늘어나고 있고, 아직 묻혀있는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따라서 발전 가능성이 아주 높은 국가이다. 하지만 위로는 러시아, 아래로는 중국의 영향이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나름대로 최근에 전환되면서 더더욱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한다.

>>>>> 고위직 관리자들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발전이 더딤을 매우 강조하셨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3. 몽골의 5대 가축은 양, 소, 말, 염소, 낙타이다.

>>>>> 초원을 달리는 내내 동물들의 무리를 보게 되었다. 양치기 개도 무리마다 한 마리씩 보였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동물들을 몰았으나 요즘은 오토바이를 타고 동물을 몬다고 한다.


KakaoTalk_20251110_151909290.jpg 여행 중간에 마주친 장면. 염소 몰이 개도 두 마리 있었고, 이 염소 무리의 주인은 오토바이로 동물들을 몰고 계셨다.


4. 초원에 보이는 모든 곳이 화장실이다. 급한 경우 버스에서 내려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서 볼일을 보는 것으로 약속했다. 실외 배변을 하고 싶지 않다면 화장실이 보일 시에 반드시 신호가 없더라도 꼭 짜내야(?) 한다.

>>>>> 몽골은 화장실 방문이 어렵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나는 혹시 몰라 몸을 가리기 위해 3단 우산을 준비했다. 다행히 이걸 쓸 일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동생과 나는 화장실이 보일 때마다 놓치지 않고 무조건 방문했기 때문이다.


5. 몽골인들은 정말 시력이 좋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시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초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저 멀리에 있는 물체도 인지할 수 있다.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아빠가 저기 온다." 라고 말한다. 그 경우 아버지는 다음날쯤 집에 도착한다.

>>>>>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가이드님 말씀을 듣다가 이 대목에서 동생과 동시에 웃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곧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몽골은 나무가 거의 없는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미세먼지가 없어 가시거리가 매우 길다. 저멀리 초원 위에서 무언가 움직인다면 그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까지는 우리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시력이 좋은 몽골인이라면 그게 염소인지 아버지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6. 몽골에서 과일과 야채는 거의 다 러시아 수입산이다. 몽골의 주식은 고기이고, 야채와 과일을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건 부자들이다.

>>>>> 어이없게도(?) 이 대목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와 채식 생활을 시작했다. 몽골 초원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동물과 우리나라의 축산 업계와 도축 상황이 비교가 되었고,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선택할 수 있는 경우라면 채식을 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온전한 비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덩어리 고기(치킨, 삼겹살, 햄 등)는 몽골 여행 이후 아직까지 먹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들은 얘기들이 많았지만 당장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이다.


버스는 쉬지않고 달리다가 한 마트의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지나 가이드님은 우리가 공항 이후 맞이한 첫 화장실은 이곳이고, 여기서 화장실을 들른 후에 장을 보면 된다고 했다. 우리가 묵을 게르는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 있고, 거기서 묵을 건데 물을 포함하여 이틀 동안 먹고 마실 것들을 이곳에서 한번에 구입하면 된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전략을 짰다. 물을 많이 사둘 것. 간식을 많이 사둘 것. 반드시 간식 중에서도 아이스크림도 먹을 것. 해외여행까지 와서 물갈이는 안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우리는 군것질을 아주 좋아했기에 과자를 잔뜩 사기로 했다. 그리고 몽골은 유제품이 유명하다고 해서 우유 아이스크림은 반드시 구매 리스트에 넣어서 쇼핑 카트를 잡고 실내로 돌진했다.


KakaoTalk_20251110_153859409.jpg 이틀 동안 먹어 치운 과자와 맥주



사진엔 보이진 않지만 500ml 생수 한 묶음 포함하여 한 봉지 가득 구매했다. 낑낑대며 버스에 올라 물을 싣는 우리들을 보고 어른들이 어이고, 저 물을 다 마시려고? 하며 놀란 반응을 보이셨다. 좌석에 앉자마자 아이스크림을 까먹으며 다시 경치 삼매경에 푹 빠졌다.


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칭기스칸 마동상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이 나타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아니 그보다도 그냥 초원길을 달려왔는데 이 장소는 어떻게 찾은 건지 새삼 버스 기사 아저씨의 방향 감각이 부러웠다. 나는 길을 걷다가 어떤 가게에 들르게 되는 경우, 다시 가게를 나섰을 때 순간적으로 방향을 상실한다. 내가 왔던 길은 어느 방향이고 다시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순간적으로 혼선이 오기 때문이다. 몽골은 자유 여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는데 그 점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서 아마 자유여행이 허가되었다면 이미 몽골의 미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길 잃은 염소나 양 한 마리와 이동식 게르를 가지고 너른 초원을 떠돌며 살아야겠다는 상상을 하던 참에, 가이드님께서 징기스칸 마동상에 도착했다고 알려주셨다.


버스 주차장에서 바라본 마동상은 어마어마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은 30분밖에 없으니 얼른 따라오라는 가이드님을 바짝 쫓았다. 헥헥대며 로비에 도착했는데 어른들도 빠짐없이 모였다. 역시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른들이 체력도 참 좋으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로비에 있는 징기스칸의 부츠 앞에서 가이드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문 닫을 시간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었고, 동생과 나는 가장 먼저 전망대를 목표로 하여 바로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KakaoTalk_20251110_211015988.jpg 저 계단을 언제 다 오르지 하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꽤 힙했다. 마치 개발자 노트북에 덕지덕지 붙은 것마냥 각양각색의 스티커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 엘리베이터는 성인 네 명이 타면 아주 꽉 찼고 동생과 나만 들어가도 꽤나 협소했다.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고도 3층 정도의 높이로 체감되는 좁은 계단을 더 올라야만 했다. 관광객이 없어서 다행이지, 마주 내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지나가지도 못할 통로였다. 전망대는 말 머리 위였고 돌아보면 징기즈칸의 얼굴과 직면할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 주변 경치를 구경하고 징기스칸과 셀카를 찍다 보니 하나 둘씩 어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때 남자 어른 두 분과 말을 트게 되었다.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본적으로 말을 시작하게 되면 "어디서 오셨어요?" 인데, 우리 쪽에서 말을 먼저 건 일은 없었다. 언니는 경기도, 동생은 제주도요, 라고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제주도에서 왔어요, 라고 답했고 그 후로 우리는 그 분들과 마주칠 때마다, "어이 제주 아가씨" 로 불렸다. 여행 내내 여러 번 마주칠 사이인지라, 어른들이 친근감 있게 먼저 다가와주셨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경계심이 가득한 개가 몸통을 낮추며 꼬리를 수평으로 뻗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동생과 얼른 전망대를 이탈했다. 우리가 내려오는 시기쯤 되어서야 어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기에 타이밍이 좋았다고 동생과 얘기를 나누며 1층 전시관을 둘러보고 야외로 나왔다.


해는 점차 지평선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바깥의 차고 건조한 공기를 폐 속 깊이 닿도록 크게 들이마시며 너른 초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제서야 몽골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버스로 돌아가는 내내 동생과 사진을 마구 찍어대며 추억을 한 장 한 장 남기었다. 약속한 시간에 모두들 버스로 돌아왔고 지나 가이드님은 머릿수를 세어 전원 도착을 확인한 후에 버스를 출발시켰다. 이제 곧 저녁을 먹을 것이다. 메뉴는 김치찌개에 두루치기, 한국에서 이미 충분히 먹었던 메뉴들이었지만 한국이 아닌 곳에서 먹는 한식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공식 일정 중 첫째 날의 마지막 스케줄인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초원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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