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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준비 시 방심은 금물

내가 알던 몽골 여행이 아니야.

by 김이름

몽골 여행 계획을 짤 때 동생에게, 나는 별만 볼 수 있다면 어떤 투어든 괜찮다고 말했다. 동생은 몽골에 간다면 이왕이면 야외 활동이 많은 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랜만의 해외 여행인데 짧으면 아쉬울 것 같아 가까운 몽골일지라도 3박보다는 4박으로 선택하는 등 여행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아는 만큼 보일텐데, 여행 가기 전 여행지의 스포를 최대한 당하고 싶지 않아서 자료를 많이 찾아보지 않은 게 화근이었을까? 몽골 여행은 어르신들 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관광 버스가 아닌 험한 도로를 달리는 지프를 타고, 콘크리트로 지어진 호텔보다는 허름한 게르에서 자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몽골에 관련된 영상은 몽골 가기 전 준비물 챙기는 영상이 전부였고, 내가 챙긴 준비물을 동생과 공유했을 때 동생은 회사에서 이런 대화를 했다고 한다.




"김동생 주임, 몽골 여행 준비는 잘 되어가?"


"저는 바빠서 아직 준비물을 챙기지 못했는데, 언니는 몽골에서 지금 바로 가서 살아도 될 정도로 다 챙겼어요."


"?"



여행 하루 직전에서야 동생은 캐리어를 꺼내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장기간 자리를 비우다보니 미리 처리해야 할 회사 업무도 많았을테지만 동생은 나와 다르게 MBTI의 P의 향기를 강하게 풍기는 혈육이었다. 동생의 환전 몫까지 내가 처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동생에게는 비상약 임무를 맡기고 내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전달하여 짐을 싸도록 했다.


출발은 인천 공항인데 동생은 김포행 비행기를 탄 후에 인천으로 한번 더 넘어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몽골 출발 당일 새벽에 집에서 출발하겠다는 여유있는 동생의 항공 스케줄을, 동생이 짐을 싸는 동안 전날 저녁 비행기로 변경하여 김포 공항 근처 숙소에서 함께 하루를 묵게 되었다. 나는 수도권에서, 동생은 제주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고 동생과의 해외 여행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김포 공항에 동생을 마중나가는 순간부터 긴장감과 설레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리고 서울 숙소에서의 밤은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수화물 무게가 초과된 나의 캐리어 짐을 동생 캐리어로 옮기며 지나갔다.


새벽 일찍 눈을 뜨고 한껏 묵직해진 캐리어를 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공항 버스를 기다리는데 벌써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여행 시작도 전에 집에 가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배터리 효율이 매우 떨어진 핸드폰처럼 집 안에서는 항시 충전기에 연결되어 안정적으로 지내지만, 집 밖을 나오는 순간 미친듯이 에너지가 쭈욱 떨어지곤 했다. 아무렇지 않는 표정으로 동생 얼굴을 바라봤을 때 동생도 마찬가지인걸까, 둘은 아무 말 없이 버스에 올라타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인천 공항까지 그대로 실려갔다.


셀프로 수화물을 부치고 바로 카페로 이동했다. 캐리어가 분리된 우리의 몸은 한껏 가벼워지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고 나서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여행사에서 모이기로 한 시간 전까지 아무말 대잔치로 깔깔거리다가 투어사에서 안내 사항을 듣고 난 후 면세점을 돌아보는 등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탑승 시간 20분 전에 탑승구로 향했을 때 동생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나에게 말을 했다.




"언니, 왜 여기 어르신들 뿐이지? 이거 효도 관광이야?"


"그러게, 젊은 사람들이 왜 안보이지? 불안한데."



탑승이 시작되자 알게 뭐라는 듯이 목베개에 바람을 넣고 자리에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지연이 되기로 악명 높은 항공사였음에도 제때 출발했고, 여행이 차질 없이 진행되겠다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책도 읽기도 하고 간식도 까먹다보니 금세 착륙하겠다는 기내 방송이 들려왔다. 햇볕이 강하여 창문을 내리고 있었는데 낮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다가 동생이 기내 방송을 듣고는 허겁지겁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평원이었고 바닥에 구름 그림자만이 드리울 뿐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북경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지평선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다시 한번 이 곳에서도 지평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비행기 창문밖의 풍경



곧이어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고 부드러운 바퀴의 마찰과 함께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연결 통로를 걸어나가니 갑자기 팔이 오싹해지며 찬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오싹함은 비단 낮은 기온 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도 와본적이 없던 낯선 장소에서 4박을 머물다가 동생을 안전하게 다시 한국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동생을 항상 곁에 끼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입국 심사는 한 사람씩 해야 했기에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조차 불안했다. 내 기억 속 동생은 학창 시절에 영어 과목에 대해서는 최약체였기에, 입국 심사관에게 무슨 헛소리를 해서 갑자기 어디로 끌려가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수로라도 동생이 "원나라 간섭기를 잊지 않고 복수하러 왔다"라고 영어로 말할 수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드니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보니 동생이 여권을 쥐고 심사대를 통과하며 나오고 있었다.



"동생아, 심사관이 무슨 질문 했어? 나한테는 숙소 이름 묻길래, 제이호텔이라고 말했거든."


"나? 그냥 게르라고 했어."



하긴 몽골에 게르가 몇 개나 있는데, 게르 이름을 알게 뭐람, 오전에 여행사에서 준 안내문에 적힌 "럭셔리 게르" 라고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수화물을 찾는 곳으로 갔다. 우리는 인천 공항에서 계획했듯이 캐리어를 기다리는 동안 가디건을 걸쳤고 짐을 챙긴 뒤에 현지 투어 가이드를 찾기 위해 출구를 나갔다.


자동문이 열리자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신청한 여행사의 깃발을 든 현지 가이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유창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추우니까 밖으로 나가지 말고 물 하나씩 받으시고, 화장실은 미리 다녀오시고 여기서 기다리세요." 라고 안내를 받았다. 가이드가 우리 이름을 명단에 체크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나왔음을 알게 되었고 동생은 시간이 남아 공항 내 빵집에서 몽골 빵을 먹어봐야겠다며 나에게 짐을 맡기고 훌쩍 사라졌다. 다시 한번 불안 모드가 감지되어 동생을 눈으로 쫓았다. 동생에게 덤탱이를 씌우면 어쩌지, 억울한 일이 생겼는데 동생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 내가 여기 짐을 그대로 두고 동생한테 달려가도 될까, 그럼 그동안 누가 캐리어를 털어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까지 들 무렵 동생은 초코파이 한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동생이 말했다. 언니, 나도 서른이 넘었어 라고. 나는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쭈글쭈글하게 생긴 시절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 시점까지 지내왔지만, 나에게 동생은 중고등학생 나이에 멈추어져 있는듯했다. 하지만 대학생 때, 중학생이던 동생과 길을 가다가 동생 친구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동생이 반갑게 친구랑 짧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서로 갈 길을 가게 될 시점이 되었다.



"동생아, 이제 늦어서 얼른 가야돼. 친구한테 안녕- 해야지?"


" (?) 안녕 ! "



그러고는 길을 나서는 나를 보고 킥킥대며 웃기다는 듯이 언니, 언니가 나보고 내 친구한테 안녕이라고 하라고 해서 안녕- 이라고 했어, 라고 말했다.

이게 왜 웃긴거지 하고 걸으며 곱씹다보니 나도 모르게 동생을 유치원생 취급을 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지금의 삼십 대인 동생 나이를 적응하게 될 쯤엔 나는 아마 환갑이 될 쯤이겠다는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 무렵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진짜 환갑을 넘기신 나이대로 보이는 어른들이 둘러 서 있었다. 동생의 효도 관광이 아니냐는 추측이 현실로 확정된 순간이었다. 동생과 나는 이게 끝이 아닐 거라고 짐을 찾아 나오는 사람들 무리를 계속 바라보며 젊은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고, 젊은 커플이 나오는 순간 우리 여행사에 오리라 기대했지만 그들은 다른 투어사 깃발 아래로 들어갔다. 화려한 등산복을 입으신 어른들 사이에 회색 가디건을 입은 삼십 대 두 명의 여성이 속한 투어 그룹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여러분, 이제 바깥으로 나가 버스를 탈 건데 아주 바람이 세고 추워요! 지퍼 잘 여미고 저를 따라오세요!"


버스? 내가 알고있는 몽골 여행용 차가 아니라 버스를 탄다고?

저 멀리 큰 관광 버스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 수단이 버스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많이 신청했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미심쩍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울란바토르 공항 바람에 날아간지 오래였다. 동생과 나는 그렇게 한 손에는 잔뜩 부푼 봉지의 초코파이를, 한 손에는 캐리어를 질질 끌며 몽골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몽골에서 먹는 오리온 초코파이. 지대가 높은지 봉지가 빵빵해졌다.



몽골에서의 첫 사진. 몽골은 카메라 셔터음이 터지지 않아서 사진이 안 찍힌 줄 알고 수십 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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