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잘 굴어도 되지 않는 자리

팀장님도 바깥에서 보면 그냥 아저씨

by 김이름

저녁을 먹기보다는 숙소에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 망망대해와 같은 초원 한복판에서 우리의 게르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한 배를 탄 모두는 저녁 식사 장소로 향했다. 참 신기하게도 벌판 한복판에 콘크리트로 된 식당이 있었다. 그 식당을 중심으로 게르가 몰려 있었는데, 아마 이 게르촌에 묵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식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게르촌에서 우리 모두는 버스에서 하차했고, 동생과 나는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향했다. 우리끼리 조용히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물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식당 문을 여니 많은 수의 4인 테이블이 줄지어 있었고, 각 테이블마다 아주 푹신한 쇼파가 마련되어 있었다. 동생과 나는 어느 창가 쪽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고, 테이블 숫자는 많으니 이 테이블에서 우리끼리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1인 1쇼파를 차지하며 마주 앉아 푹 기대어 누워있었다.


"같이 좀 앉읍시다."


갑자기 그림자가 우리 위로 드리우더니 할아버지 두 분이 우리 양 옆으로 앉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에게 얼른 내 옆자리로 와서 앉으라고 손짓했고, 할아버지들이 착석하기 전에 동생은 얼른 일어나 내 옆으로 왔다. 이 많은 테이블이 벌써 만석인가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텅 빈 테이블은 많았고, 사람들은 자기 일행들끼리 2인이면 2인, 8인이면 4인 4인씩 나누어 자리를 잡았다. 그럼 두 분이 따로 앉으면 되지 왜 하필 여기로 온거람? 가뜩이나 피곤한데 휴식을 방해받은 기분 때문인지 무엇인지 모를 불쾌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창가 옆이 탐이 난 것일까? 우리가 나와서 다른 테이블로 갈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멤돌았지만, 우리가 자리를 피하면 기분 나빠할까? 피곤해 죽겠는데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걸까. 동생을 힐끗 보니 이미 테이블에서 멀어져 팔걸이와 등받이 뒤에 기대고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나도 그냥 신경쓰지말기로 마음을 먹고 반대편 팔걸이에 기대고 오늘 찍은 사진들을 이리 저리 둘러보며 쓸데 없이 차지하는 용량 정리를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무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엔 계속 그윽- 하는 트름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뱉기 시작하는 반대편 사람들이 너무 불편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어폰을 꼽을까 하는데, 식사가 나오기 시작하니 드디어 빨리 먹고 자리를 피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식사는 동생과 내 앞에 먼저 놓여졌다. 접시는 우리가 뷔페에서 주로 보는 그런 넓은 형태였고, 그 위에 밥과 고기, 반찬들이 올려져 있었다. 지난 번 김치찌개 식당에서 그랬듯, 동생은 접시를 할아버지들 앞으로 내밀었는데 여기서 또 어안이 벙벙한 말을 듣게 되었다.


"음식 금방 나오니 신경쓰지 말아요. 먼저 들어요."


어제 저녁 식당에서 합석한 부부는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이라 그랬다쳐도, 할아버지 두 분은 우리가 먼저 건내드리면 자연스럽게 받아 수저를 먼저 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다시 한번 머리 위로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 테이블에 앉아 트름을 해대며, 라고 머릿속에서 꿍얼꿍얼 대던 감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의아함이 차지했다. 어른들은 당연히 먼저 챙김받고 하는 걸 좋아하던데 그게 아니었나, 하며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른들을 앞에 두고 먼저 밥을 먹는 것도 어색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음식을 내려다 볼 수는 없어서, 우리는 숟가락으로 괜히 밥을 뒤적거리며 비빌 것도 없는 고기 양념에 밥을 적시며 먼저 먹겠지만 먹지 않는 듯한 애매한 태도로 두 분의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양념을 비비다 못해 이미 다 흡수해져버린 밥알이 통통해질 쯤 할아버지 두 분 몫의 접시가 놓여졌고, 두 분도 자연스레 식사를 시작했다.


KakaoTalk_20260104_235049460.jpg 이튿날 저녁 식사



어른들은 어렵고 어색하다. 직장 상사로 만난 어른들은 우리의 잠깐의 태도로 대부분을 판단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만난 어른은 교수님, 그 이후 팀장님, 본부장님, 그리고 팀장, 과장 등 나를 평가하는 분이었다. 10년 동안 그런 어른들만 겪어와서 여행지에서는 더더욱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평가를 받아야 할 일도 없었거니와, 우리가 맨날 보는 상사도 길에서 보면 아저씨! 라고 하는 것처럼 이미 아저씨,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썩 입맛이 돌진 않았지만 야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게르 주변에는 없기 때문에 배를 든든히 채워두었다. 그렇게 식사 시간이 끝나고나서야 염원하던 우리의 홈 스윗 홈 게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르 촌에 내리니 귀여운 강아지가 꼬리를 들며 달려왔고(다시 한번 말하지만 강아지는 아니고 개), 어제보단 친근한 태도로 하지만 터치는 없이 강아지를 반겨주고는 게르로 단숨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모든 긴장이 풀렸고 동생과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늘 밤엔 사진 찍기에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별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아직 해는 지지 않았고 나는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고 동생에게 선언 후 기절했다. 동생도 불을 끄고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번쩍 떠졌는데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해는 져 버린지 오래였고 몽골의 찬 공기가 게르 안까지 들어와 코 끝까지 얼리고 있었다. 별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고 동생에게 다가가서, 동생아, 별 보래? 더 잘래? 물어보며 살며시 깨웠다. 동생은,


"언니는...?"


이라는 말을 힘겹게 내뱉으며 깨어났다.


"더 자고 싶으면 더 자도 돼. 너 자면 나도 그냥 잘래 피곤해."


"응 그냥 더 자자 우리"


이 말을 기다려왔던 건지 나는 빠른 속도로 다시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 정식으로 별을 보자던 말은 공중분해되어 사라지고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동이 튼지 오래이다. 이튿날은 일출을 보겠다는 나의 다짐도 물건너갔지만 몸이 생각보다 가뿐하다. 동생을 보니 아직 잠들어 있었고 나는 커피 포트에 물을 올려 모닝 커피로 머리를 깨웠다. 몽골에서 반드시 별을 보겠다는 내 다짐은 단 하루밖에 지켜지지 않았지만 왜인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창밖을 보며 경치를 보다 커피도 마시며 여기 저기 걸어다니는 나의 부산스러움에 동생도 눈을 떴고, 동생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조식을 먹고 몇 시까지 씻은 다음에 몇 시까지 짐을 챙겨 몇 시까지 게르 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나의 계획을 공유했다. 오늘은 출발 시간이 어제보다 한 시간 정도 늦기에, 우리는 게르에서 알차게 시간을 보냈고 아쉬움을 남긴 채 캐리어를 다시 끌고 나와 셋째 날의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60104_235049460_01.jpg 우리 게르 앞을 찾아온 귀여운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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