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서울소년이 20세기 파리소년에게

영화 <휴고>를 본 아이들의 이야기

by 박호단

박대와, 박대헐은 올해 11세, 8세의 초등학생 형제다. 어느 해에는 걷게 되었고, 어느 해에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어느 해에는 글을 읽을 줄도 알게 되었다. 격변하는 10년 안팎의 삶을 살아왔다. 이제 집 밖으로 나가서 학교와 광장에서 더 많은 삶을 만나고 부딪히며 성장해야할 때가 가까워졌는데, 모든 것이 멈췄다. 학교에 갈 수 없고, 당연히 소풍도 갈 수 없고, 친구와 하교길 떡볶이집도 갈 수 없다.


서로 답답한 사람들끼리 이 시절에 주로 하는 일은 걷기와 영화보기이다. 하루는 영화 <휴고>를 보았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011년작으로 2007년 발간된 소설 <위고 카브레>를 원작으로 한다. 1930년대 파리의 기차역 시계탑에서 시계를 고치며 살아가는 고아 휴고의 이야기이다.



10년 남짓을 산 아이들에게 100년 전이라는 과거는 어떤 의미일까. 여덟살 동윤이는 학습만화를 읽다가 얻어들은 단편적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종종 혼란을 일으킨다. 가끔 엄마에게 어렸을 때 일본 사람들한테 고문받아봤냐고 묻기도 한다.


대와 : 그 시대는 좀 불행했을 것 같아요. 아동인권이 인정받지 못한 시대였고, 남녀차별도 심했던 것 같아요. 영화 주인공도 학교에 못가고 계속 일을 해야하잖아요.


대헐 : 불은 들어왔어도, 이 영화에 나오는 로봇같은 건 상상도 못했을 것 같아요. 초가집에 살았을까요?


주인공 휴고는 아버지가 남긴 유품인 글씨 쓰는 로봇인형을 완성하기 위해 부품을 구하러 다닌다. 도둑질도 서슴치 않는다. 크게 절실한 게 없이 살아온 아이들은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대와 : 아빠가 남겨준 마지막 유산이기도 하고, 그 아이 성격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야겠다는 집착력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만약 내가 휴고였다면 그냥 포기했을 것 같아요.


대헐 : 아빠랑 꼭 고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요. 아빠를 사랑하니까 아빠가 죽었어도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을 거 같아요. 나도 휴고처럼 끝까지 고치고 싶었을 거에요. 근데 도둑질은 안하고, 아빠가 모아둔 저금통이랑 아빠 카드 보여준 다음에 돈을 빼서 부품을 샀을 거에요.



주인공 휴고는 세상이 큰 기계라고 상상하곤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기계는 불필요한 부품들이 들어있지 않고, 꼭 필요한 것들만 모여있는 일종의 정수다. 높은 시계탑 위에서 복잡한 파리의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휴고는 자신도 어딘가 쓰임이 되는 곳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도 휴고의 말처럼 세상이 기계같다고 생각할까? 본인의 쓰임새에 대해 고민할까?


대와 : 아니요. 세상 모든 사람이 쓸모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쓸모없다고 나쁜 건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이 실수도 하고, 필요가 없다해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은 그냥 그 자리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대헐 : 나는 세상이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같아요. 그 안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나도 사고뭉치이긴 하지만 그래서 가족들에게 같이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주잖아요. 한 톱니바퀴가 돌면 다음 톱니바퀴가 도는 것처럼 각자 하는 일은 다 중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엄마아빠가 역할을 바꾸면 좀 어색할 것 같긴 해요. 아빠는 좀 나를 괴롭히고 그래가주구....


영화 속 조르쥬 할아버지는 실존인물로, 역사상 거의 최초의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이다. 극중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1차세계대전 후에 대중들에게 잊혀져 기차역에서 작은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인물로 나온다.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일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의 부인은 주인공 아이들에게 어린 너희는 이 큰 슬픔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대와 : 왜 슬픈지 진짜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불행하고 과거엔 행복하고 인정받는 시기가 있었다면 나라면 계속 떠올리고 싶을 것 같은데.


대헐 : 그 할아버지는 영화감독으로 계속 살고 싶었나보죠? 그런데 장난감 가게도 소중하지 않나요? 할머니 말씀이 저에겐 맞나봐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결국 조르주가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과거와 다시 마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그의 영화가 완전히 잊혀진 것이 아님을 그에게 알리고, 그를 설득한다. 아이들 덕분에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아무리 어려도 모든 일을 거뜬히 해낸다. 일상 속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와 : 당연하죠. 그레타 툰베리같은 사람은 어른이 아닌데도 기후 위기에 앞장서요. 그 아이가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나는 원래 이 자리에 서 있으면 안되고 나의 학교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른들이 환경을 파괴해서 나를 이 자리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여기 서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어른들이 할 일이다.” 라고 했어요. 그 아이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데, 그 병 때문에 회색을 평소처럼 내버려둘 수 없는 거에요.


아이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행동이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어른과 서로 달라요. 어린이는 계속 보고들은 것을 기억할 수가 있는데 어른들은 그냥 잊고 넘어가버려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폭력적인 걸 보면 안되는 거기도 해요.


최근에 초보자를 일컬어 x린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어린이들이 선정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면 안되는 이유가, 그들이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그 유행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와 : 깊게 생각해보면 어린이는 어른보다 못한 존재라는 마음으로 그 말을 만든 것 같아요.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니지만, 차별이라고 느껴져요. 어린이들이 어른에 비해 더 잘할 수도 있고, 잘하는 것도 많은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어린이는 몸이 유연한만큼 생각도 유연해요. 상상력도 더 풍부하고요. 어른들보다 더 발전된 세계에 익숙해요. 어른들은 우리랑 똑같은 꿈을 꿀 수가 없잖아요.


대헐 : 저는 x린이라는 말은 잘 모르겠고, 노키즈존이 기분이 나빠요. 아니 좀 시끄러워도, 자기들은 어렸을 때 안그랬나? 나도 네 살짜리 사촌동생이 막 뛰고 못살게 굴어도 잘 참는데.


동윤이는 얼마 전 동화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고 밍기뉴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김민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를 말하고 싶은데 “원수를 외다무나리에서 만났다!” 라고 한 적도 있다. 김민규와 외다무나리의 세계를 내 기준대로 비웃거나 바로잡아주고 싶지 않다. 우리는 같은 꿈을 꿀 수 없는 존재니까. 마지막으로 이 긴 감금생활이 끝나면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물었다.


대와 : 학교가 제일 가고 싶어요. 운동장에서 애들이랑 놀고, 도서관도 가고.

대헐 : 일주일동안 확진자 추이를 본 다음에 서울랜드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