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있는 풍경

스마트폰으로 육아해봤어요?

by 박호단

2010년, 겨울


내가 아이를 낳은 날은 하필, 산모가 너무 많아 병원에 입원실이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당일 출산하며 피를 한바가지 쏟은 분만실 분만의자에 누워 밤을 보내야했다. 아기는 옆에서 미친 듯이 울어댔다. 조명이 너무 밝아서 우는 것 같은데 조명도 내 정신도 조절이 안되었다. 남편은 보호자 의자에 길게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폰을 꺼내 Safari 앱을 켜고 육아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오늘 태어난 아이랑 입원실에 못들어가고 분만실에서 하룻밤을 보내야해요, 아기가 계속 우는데 어떻게 하죠? 구조요청을 하는 심정으로 더듬더듬 게시판에 글을 썼다. 분만 의자 위에 애를 안고 엉거주춤 누운 내게 얼굴도 모르는 랜선 엄마와 이모와 언니들이 대거 몰려와 조언과 위로를 던져주었다.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보다 화면 안의 글자들이 가족같았다. 2010년 1월 23일, 우리나라에 아이폰이 첫 출시된지 두 달, 내가 사용하게 된지 한 달 되는 날이자 큰 아이가 태어난 날이었다.

엄마가 된 이후로 나는 오히려,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존재를 엄마라고 믿는 병아리처럼 행동했다. 육아가 처음이라 어려운 순간에는 늘 아이폰 속의 이모와 언니들을 찾았다. 3년 터울로 2013년에 둘째를 낳았을 때는 이미 젊은 사람들 중에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스마트폰이 보급되었기 때문에, 육아의 외로움과 괴로움이 한층 옅어졌다. 서로 연락처만 저장하면 우리 사이가 대뜸 전화를 해도 되는 사이일까 망설일 필요없이, 카톡으로 24시간 육아의 고충을 나눌 수 있었고, 그 때의 폰과 앱이 맺어준 인연으로 몇몇 조리원 동기들과는 진한 가족애와 전우애를 아직까지도 나누고 있다.

조력자이기도 적장이기도


나는 나의 아이폰을 가족의 삶에 이바지하는 조력자로서 모시는 반면, 남편의 아이폰은 물리쳐야할 적장 취급을 했다. 나에게 이상적 가족의 그림이란 "말"과 "시간"의 공유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서일까 당시의 나는 멋모르고 야심찼다. 마침 수다스러운 엄마가 되라는 조언도 있길래 빨고 자고 싸는 것밖에 모르는 신생아에게 강박적으로 계속 말을 걸었고, 남편에게도 그걸 종용했다.


그런데 남편은 잠시라도 아이를 맡기면, 한 팔에 아이를 끼고 폰 화면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나는 나를 해롭게 하는줄도 모르고 마구 수집한 육아정보들을 쏟아내며 남편을 힐난했고, 남편은 백일도 안되는 애한테 무슨 말을 자꾸 걸라고 강요하냐며 반박했다. 아이가 좀 자라서도, 위대한 유태인을 키운 팔할은 가족과의 저녁식사시간이라(고 육아서에서 말했)는데, 남편은 시위하듯 폰을 밥그릇 옆에 세워두고 말 한 마디 없이 밥을 먹곤 했다. 나는 우리 가족의 행복을 남편과 남편의 아이폰이 유예시킨다고 나의 아이폰에 하소연을 하며 육아의 시간을 보냈다.

참호 안에서


나는 내성적이고 정적인 사람으로서, 평생 관계의 미니멀리즘을 특별히 애쓰지도 않고 유지하며 살았고, 내편인 사람이 주변에 한둘 있으면 족했다. 그 한둘 중 한 명이 내가 고른 가족구성원이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 생각했고, 비슷하게 정적인 성향의 남편을 만났다. 그렇게 일군 가족 혹은 가정을 나는 안전하고 폐쇄적인 참호 쯤으로 여겼다. 밀도가 적절한 참호 안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다른 편이 될 수 없고, 밖에서 세월의 폭격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손잡고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정을 이룬 것과 거의 동시에 손 안에 들어온 이 작은 장치는 나의 참호를 열어젖혔다. 방안에 들어앉아서도 외부의 수많은 사람 및 정보들과 얼마든지 닿을 수 있었다. 덕분에 가족구성원들 사이의 말과 시간의 적극적 공유는 나의 포부처럼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좋은걸까? 나쁜걸까? 그렇게 도움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이상적 가족의 모습과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되는 식탁 위의 스마트폰에 또 알람이 뜬다. 구글포토에서 수년전의 동영상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라고 보내준 알람이다.

2020년, 겨울


동영상 속에는 2010년 3월의 내가 백일이 안된 아기를 안고 있다. 울리지도 않은 인터폰 수화기를 들더니 애기 들으라고 억지로 쥐어짜는 게 뻔한 말들을 한다. "누구세요오오? 네? 어머어머, 봄님이시라고요? 봄이 벌써 왔다고요? 호호호호호 애기야 봄이 왔대."

거의 미쳐있었군. 웃음이 나왔다. 아이폰아 너때문에 저녁시간은 좀 말없이 각자 보내더라도, 우리 가족의 공간에 네가 있는 편이 훨씬 건강할 것 같다. 아이들이 너를 소유하게 되면, 무려 2020년에도 가족의 정의가 얼마나 좁았는지, 세상에 얼마나 많은 형태의 가족이 있는지, 또 집밖의 재미있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지, 가정을 참호라고 생각하던 엄마를 대신해서 알려주렴. 나는 내 이상을 강요하느라 괴롭히지 않고 그저, 가능할 때까지 식구들을 자주 안아줄게.

작가의 이전글21세기 서울소년이 20세기 파리소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