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 휑하고 평평한 이마를 가리고 싶어 내린 앞머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미용실을 가는 시간을 조금만 지체해도 시야가 답답해지는 불편함이 따른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르지 않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봤으나 오늘은 이빠진 버티컬 블라인드처럼 축 늘어진 나의 앞머리가 한없이 초라해보여 더 미루기가 싫었다.
망할 전염병. 코로나가 뭐라고 집에서 1km 거리의 미용실 가는 일이 이렇게 망설여지는지. 1년 묵어가는 우울함과 오랜만의 외출이 주는 상쾌함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평소에 미용실을 가기 위해 이 건물의 4층에 도착하면, 같은 층에 위치한 동네의 유명 소아과 때문에 늘 아이들 소리가 시끌벅적 들려왔다. 소아과 말고도 한의원에 치과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병원마다 불도 꺼져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코로나 때문에… 결국… 아..아? 아.. 시계를 보니 한 시 반, 병원들의 점심시간이었다. 너무 쉽게 내려앉은 가슴을 혼자 무안해하며 미용실 문을 열었다.
미용실은 점심시간이 아니었지만,
텅 비어있었다.
어머 오랜만에 오셨네요. 너무 춥죠. 점심은 드셨어요? 열린 문이 다시 닫히기도 전에 반기는 인삿말이 쏟아진다. 여문 손끝을 타고났어도, 과묵한 사람이라면 미용사 일을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벗으라는 외투를 벗고, 입혀주는 가운을 입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서로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보며 근황을 이야기할 차례이다. 3년째 내 머리를 다듬어주시는 미용사님은 직원들과 함께 송년회를 못한 해는 2020년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듣고보니 미용실이 텅 비어보인 것은, 손님들이 적어서이기도 했지만, 분주하게 이곳을 오가던 직원들의 수가 적어져서이기도 했다. 스텝분들이 평소보다 많이 안보이시네요. 했더니
“아니 서울에 집이 있으면 괜찮은데…”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 눈을 껌뻑거렸다. 하소연같은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손님이 줄어서 아무래도 인턴들은 무급휴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하는 친구들은 그래도 좀 견디는데, 지방에서 이 일을 배우려고 서울로 온 친구들은 월급이 줄어드니까 집세가 도저히 해결이 안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생기죠.”
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실직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앞머리가 사각사각 짧아지는 동안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젊으니까 또 일자리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전염병을 앓고 있는 사회에서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정해져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물이 차오르고 있는 작은 섬에 갇힌 느낌이다. 내가,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불어나는 물에 잠기기 전에 이 이상한 시간이 멈춰줬으면.
머리를 다 자르고 샴푸의자에 누웠다. 그러고보니 2020년 2월에도 여기 누워있었다. 그 때 내 머리를 감겨주던 스텝은 지나치게 쾌활한 청년이었다.
“저희집이 ㅇㅇ거든요? 며칠 전에 ㅇㅇ터미널에 확진자 다녀간 거 아시죠. 제가 그 때 딱 휴가라서 집에 내려갔었거든요. 근데 제 친구가 저 터미널 이용했으니 코로나 걸렸을지도 모른다면서 부럽다고 자기도 병가내고 회사 안가게 좀 옮겨달라고 그러는거에요. 그래서 막 둘이 쥬스 한 컵에 같이 마시고. 얼굴에 대고 기침하고 그랬는데..둘 다 안걸렸더라고요 아까비..”
감던 머리를 물기만 짜고 도망나오고싶게 만들던 그 철딱서니없던 인턴 청년도 광주 집으로 돌아갔을까. 이제 친구랑 얼굴에 기침하기 놀이는 하지 않겠지.
물온도가 괜찮냐는 질문에 얌전한 할머니 고양이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 바라본 벽면에는 “매장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새삼 숨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