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시간이 아까워. 당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래."
2화. “시간이 아까워. 당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래.”
(부제: 왜 유학을 떠난 거니?)
무작정, 30대 중반에 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을까? 피렌체에서 가이드 일을 하면서 만난 중년의 여인들에게 가끔 유럽에서 미술관 가이드하고 공부하며 자유롭게 사는 내가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꿈꿨던 자유로워(?) 보이는 유학 생활을 정작 나는 즐기지 못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환경에서도 멋지게 살지 못하는 내게 실망도 하고 혼란스러워도 하면서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이 글은 30대에 유학가도 괜찮을까?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고 유학가도 괜찮을까? 정말 유학가면 멋지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수많은 몽상가들에게도 속삭여 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
나의 대답은 ‘괜찮기도 하고 안 괜찮기도 하다’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냐고?
무엇이 괜찮고 무엇이 안 괜찮았는지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것일 것이다.
유학을 멋지게 성공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유학 간 곳에서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학 가서 외롭고 혼란스러우며, 같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니고 남들 가는 유럽 여행을 정작 하지 못하고, 그런 유학 생활도 있다고 말이다.
유학은 성공이나 실패라는 결과로 결론지어지지 않는, 그곳에서의 삶에서 또 다른 어떤 것을 보고 배우는 삶일 뿐이다. 유학은 꼭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목표한 공부를 못 마치는 게 실패는 아니다. 오히려, 못 마쳤기에 성공한 삶도 있다. 그런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여유를 배운 것이 나의 유학 생활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럽과 미술을 좋아했다. 어느 날 아빠가 유럽 사진첩을 사 오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옛날엔 책을 팔러 다닌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친구의 부탁으로 사 오신 것 같다. 아빠는 그 사진첩을 보지 않으셨지만, 어린 나이에 나는 너무 신기해서 흑백의 유럽 풍경 사진들을 밤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엄마의 뜨개질 잡지책에는 유럽의 어느 도시 발코니에 멋지게 차려진 테이블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유럽의 어느 도시의 발코니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뜸을 들인 후에 나는 30대 중반에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복원학교 친구들과 처음엔 자주 파티를 했다. 한국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프랑스, 이탈리아 친구들>
대학 친구가 베네치아에 놀러 왔을 때 내게 해 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산마르코 광장의 카페에 앉아 있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하자 친구는, “야, 기억 못하니? 너 학교 다닐 때 나한테 어느 날, 이탈리아에 가서 복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어.” “내가? 난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
나는 2003년 개봉된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고 미술 복원사 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대학생 때 이미 그 직업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게 운명이라면, 내가 13년을 이탈리아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치열하면서도 외로운 터널을 달리게 될 것도 운명이었으리라.
치열하면서도 외로운 터널을 달리게 될 것도 운명이었으리라.
나는 평범한 삶을 사는 직장인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얻은 그런 직장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걸 놓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어릴 때부터 꿈꾸던 유럽 유학, 20대에 한번 준비하다가 병이 덜컥 나서 좌절되었던 그 꿈을 한번은 해보고 죽고 싶었다.
‘유럽에서 공부 한번 실컷 해보다가 죽어도 좋아.’
이런 무모한 초현실 감각의 소유자였다. 초현실 감각을 지녔으니, 아주 철저히 준비한 것도 없었다. 독일로 가려던 20대 꿈이 좌절되고 30대가 되어 이탈리아를 선택한 건 정말 그 영화덕분이다. 인생의 방향을 초현실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나의 플랜 스타일이다.
당연히, 이탈리아에서 첫해만 꽃 길, 나머지는 가시밭길을 걸었다. 멋진 공방에서 사람이 아닌, 그림만 만지며 살아가는 준세이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이름)의 삶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나를 부추겼다.
작년, 나는 친구와 피렌체의 거리를 걸으며, 이제 ‘무생물’과 그만 만나고 ‘사람’을 좀 만나고 싶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내가 매일 만나는 무생물은 ‘그림’이다. 친구는 깔깔 웃었다. 나는 유학 와서 나의 꿈(!)을 이룬 것인데, 꿈을 이뤘는데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꿈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학 와서 내가 배운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2년 고민하고 5개월 이탈리아어 학원 다니고 5월의 어느 날 이탈리아 페루지아 도시의 대학 부속 언어학교로 떠났다. 한국에서 기초 문법을 완전히 마스터했고 학원 시험에선 늘 만점을 맞을 정도로 단어, 문법을 공부하였으나, 그 해 12월부터 시작한 피렌체의 복원학교에서는 단 한 문장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어가 그렇게 어려운 지 알았다면 도전을 못했을 일이었다.
그래서, 철저히 준비하지 않고 유학을 가면 힘들다. 그러나 철저히 준비하면 유학을 가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니, 그냥 떠나도 괜찮다.
하고 싶은 거 한번 해보고 죽고 싶다면, 그냥 시작해 보는 것도 괜찮다. 다만, 철저히 준비를 하든 나처럼 초현실적으로 준비를 하든,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은 준비해야 한다. 계획대로 갈 수 없는 길이 인생길이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살아야 하는 해외는 더욱 계획대로 안 되는 길이 많다. 놀라운 일들이 있더라도, 인내하며 받아들여 보면 좋겠다.
그 당시에는 이탈리아 유학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유학원 추천으로 등록한 복원 학교가 학기 시작도 하기 전에 문을 닫았다. 등록금을 날렸고, 도움을 어떻게 청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시립 학교에 등록할 수 있었고, 나를 응원해주는 카테리나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복원사의 삶을 즐기고 나의 재능을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던 선생님 덕분에 나는 미술 복원사의 마음을 배웠다. 돈을 많이 벌 수 없는 일이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이탈리아인들은 그들만의 행복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던 현실의 기준과 다른 기준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의 길이 가다가 막힐 때가 많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인내이다.
분명 다른 길이 있다.
낯설지만 새로운 길을 받아들이기 위해 인내하며 기다린다면,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인내하는 자에게는 늘 길이 이어진다.
새로운 길이 뚫리도록 그가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며칠을 썼다 지웠다. 막상 지난날의 나의 이야기를 보니, 궁상맞기 그지 없어 창피스럽기만 하다. 글은 속일 수 없는 게 있으니 그나마의 나의 이미지마저 무너질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면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느낄 날이 올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지난날을 부끄러움으로 펼쳐보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