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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됴 Oct 16. 2023

사랑이 가득한 공포의 제주 상견례


큰일을 앞둔 사람은 그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앞선 경험자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열심히 보고 듣는다. 그런데 어떤 일들은 남의 경험담이 큰 소용이 없다. 결혼이 그렇다. 결혼의 모든 과정이 너무나 사적이고 개인적이다. 어떤 형태로 어느 만큼의 비용을 들여 어느 만큼의 규모로 여러 통과의례를 거쳐 결국 어떤 가정을 꾸려나갈지에 대한 그 모든 선택이 신랑신부의 가장 사적인 소망과 결핍이 얽히고 섥히며 이루어진다. 결혼을 생각하기 전에는 아예 고려해볼 필요도 없었던 것들도 모두 현미경 아래에 두고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데, 한 사람의 소망조차 서로 모순되곤 하는 마당에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꿈이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여기에 타인-주로 부모-의 꿈까지 어설프게 끼어들려고 하다간 어느 것에도 초점을 잡지 못하고 희끄무리한 상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비틀비틀 끌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거기다, 애초에 꿈이고 계획이고 다 무의미할 때도 있다. 물샐틈 없는 완벽한 계획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어떤 전제가 참이 아니었다면 휴지로 만든 병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모든 전제가 참이고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합리적이라고 할지라도, 당장 내일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 지 모르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해뒀지만 결국 어떻게 될지는 확신이 없어 그냥 머리에 힘주고 기도하는게 최선일 때도 부지기수다.


다시 내 개인적이고 사적인 얘기로 돌아오자면, 나는 제주도에서 상견례를 했다. 우리 본가가 제주도에 있는데, 결혼식을 서울에서 치르니 상견례는 제주에서 하면 좋겠다고 예비 시부모님이 제안해주셨다. 거동이 불편하고 완전 실명인 시각 장애인이자 보청기를 끼고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은 청각 장애인인 우리 아버지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정말 많은 걱정이 덜어졌고, 커다란 감사가 뭉글뭉글 피어났고, 그 곁에 조그만 고민이 태어났다. 어떤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대접하고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까? 그리고 그 조그만 고민 옆에 또 더 작은 고민이 생겨났다. 우리 엄마 입을 옷은 있나? 그 옆에 또 작은 고민 하나 더... 앗 그러고보니 하나 더... 마치 고민의 마트료시카 같았다.


제주도 상견례의 가장 큰 어려움은 적당한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상견례 장소를 찾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룸이 있으면 인테리어가 그닥 세련되지 못하고, 최근 개업한 식당에는 룸이 없다. 호텔에 있는 식당도 찾아봤지만 거진 뷔페였고, 어렵게 '여기다!' 싶은 곳을 찾아 문의해보니 주말엔 장사를 안 한단다. 아니, 호텔 레스토랑이 왜 주말엔 장사를 안한다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거의 사흘을 꼬박 서치한 끝에 겨우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제주도 로컬 재료를 사용한 프랑스식 퓨전 코스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작은 레스토랑인데, 규모가 작다보니 8명을 예약하면 전체 대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요즘 식당에 룸이 없다면, 아예 작은 식당을 잠깐 빌리겠다는 발상이었다. 사장님이 셰프이기도 해서 알러지 있는 재료를 미리 말씀드리고 코스의 일부 요리를 조금 바꿀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몇 년 간 장사를 해온 곳이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기는 했지만 제주도민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적당히 검증된 곳이면서 특별한 느낌은 낭낭한, 프라이빗하고 고급지면서 대화 화제가 떨어지면 음식에 대해 스몰토크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고, 마지막에는 커피와 디저트까지 나와서 장소 이동도 안 해도 되는 곳. 리뷰를 보아하니 셰프님까지 센스 있고 친절하다고 하니, 이건 어딜보나 완벽한 장소였다.


선물도 준비했다. 떡을 준비했는데, 처음엔 보자기 포장된 선물 모양 떡케이크를 하려다 귀여운 모양의 떡 아홉개가 들어있는 함자로 준비했다. 양쪽 집안 다 입이 짧기도 하고, 여행 겸 제주도에 비행기 타고 건너 온 시댁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다 먹느라 케이크에 쫓기게 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결혼반지를 맞추면서 같이 받은 브로치와 진주 귀걸이, 금 목걸이도 예쁜 원목 선물함에 넣어 준비했다. 내 힘과 생각이 닿는 부분은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담았다.


그런데 사람 일과 세상사라는 것이, 돌발상황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양쪽 집안 다 평소 심심하게 간을 해서 담백한 음식을 즐겨 먹는데, 와인을 곁들여 먹는 것이 보통인 프랑스식 코스 요리는 우리 입맛에 간이 조금 셌다. 그래도 식감도 좋고 풍미도 좋았기 때문에 간이 좀 센 것 자체는 별로 큰 흠이 아니었다. 그런데 완전 실명이라 셰프가 바로 앞에 계신 줄도 몰랐던 우리 아버지가


"음식이 좀 짜죠?"


하고 큰 소리로 외친 것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사돈 입맛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 입에는 소금이네요."


아버지가 또 큰 소리로 말했다. 다른 가족들은 민망하기도 하고 그 상황 자체가 묘하게 우습기도 해서 우스꽝 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셰프님도 가까이 계시고, 이 모든 상황 자체가 아버지의 시각장애로 인해 생긴 일이라 드러내놓고 웃을 수는 없어서였다. 예비 시아버지는 난처할 수 있는 질문을 웃으며 부드럽게 받아 넘기셨다.


"제 입맛에도 조금 짠 것 같습니다."

"사돈 입에도 짜죠? 우리 집사람이 한 옥돔 미역국이 더 맛있었어요."


우리가 먹고 있던 메뉴는 옥돔 수프였다. 클램차우더같은 풍미가 일품이었는데 옥돔 살코기도 들어가있고, 빠삭하게 씹히는 재료들도 있어 솔직히 음식 자체는 아주 훌륭했다. 환자가 있어 반찬에도 소금간을 거의 하지 않는 우리 집안 사람들 입맛에 조금 짰던 건 뿐이었다. 그러니까 음식의 간이 우리가 평소 먹던 것과 달랐던 것도, 아버지가 앞이 보이지 않아서 셰프가 가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음식이 너무 짜다'고 큰 소리로 불평을 한 것도, 조금 당황스럽긴 해도 예상 못할 일까지는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간을 최대한 적게 해달라고 미리 요청을 했으면 우리 먹을 음식만 준비하는 셰프가 미리 조치를 취했을테니 그냥 내 잘못이기도 하다. 아무리 거기 있는 줄 모르고 한 말이라지만 셰프만 괜히 나의 부주의 때문에 비교까지 당했다.


그런데, 내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던 진짜 돌발상황은 다른 것이었다.


"음식 솜씨가 좋으신가봐요."


예비 시어머니가 당황해서 어색하게 웃는 어머니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건넸다.


"무슨요... 평소에 간을 안 하고 먹으니까 그냥 이이 입맛에 제 음식이 더 잘 맞는 거예요."


어머니가 수줍어하시면서 겸손하게 사양했다. 시어머니는 다시 다정한 말투로 한 번 더 칭찬했다.


"간 없이 맛내기가 어디 쉽나요? 솜씨가 좋으신 거지요."


화사하게 화장한 엄마의 뺨과 귀끝이 조금 붉어진 딱 그만큼 분위기가 따뜻해졌다. 상견례 식사는 무사히 끝났다. 내가 결혼하고 연달아 결혼을 하려고 준비중인 내 동생은 '내 상견례는 줌으로 할테니 그런 줄 알라'고 했다. 계산을 하며 셰프님께는 몇 번이나 연달아 양해를 구하고 사과를 드렸다. 친절한 셰프님은 오히려 자신이 중간부터 소스를 따로 드리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안 됐다며 사양하며 괜찮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 아버지는 셰프가 가까이에 있었다는 걸 알고 민망해했다. 당신 나름대로는 음식이 많이 짠데 억지로 먹기보다 그냥 대놓고 말을 꺼내는게 분위기를 푸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에 한 말이었다고 했다. 셰프가 같이 있는 건 줄 알았으면 말을 안 했을 거라고. 그렇게 우리의 상견례가 지나간 자리에 작은 추억이 남았다.


아버지는 자기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며, 데려가셔서 자기 대신 딸처럼 예쁘게 봐달라고 하셨다. 나는 한 끼도 배 안 굶고 컸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했고, 예비 시부모님은 딸 가진 부모의 마음에 깊이 공감해서인지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나도 자식이 생기고 그 자식이 결혼을 하게 되면 아마 상견례날 본 이 장면이 더 깊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철딱서니가 없어서 그런지 아버지께 존경과 애정을 담아 잔소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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