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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됴 Nov 07. 2023

헤어지는 꿈


꿈에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깨자마자 한 대 때려줬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꿈일 뿐인데 현실의 남편을 때리다니 별 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몇 달 전에 내가 그런 꿈을 꿨다. 꿈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괜시리 찜찜했다. 예랑이에게 아침부터 카톡을 보냈다. 예랑이는 한 대 때려주지 그걸 그냥 놔뒀냐며, 그럴 일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영 심란해서 꿈 해몽을 검색까지 해봤다. 상대를 너무 많이 좋아해서 꾸는 꿈이라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이성에 뿌리를 둔 걱정이 아니어서 그런지 바로 뽑아낼 순 없었다. 그래도 예랑이가 혼란스런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도 안 가 잊어버릴 수 있었다.


어젯밤에는 아예 헤어지는 꿈을 꿨다. 아직도 꽤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속의 사건은 이렇다. 예랑이가 데이트 내내 쌀쌀맞게 굴고 못된 말로 자꾸 틱틱대길래, "너는 내가 멍청이로 보여?" 하고 쏘아붙였다. 그랬더니 예랑이가 외려 잘됐다는 말투로 "알고 있네? 맞아. 너같은 멍청이랑 결혼 못하겠어." 하고 차갑게 말하며 웃었다. 웃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예랑이는 이제 됐다며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정말로 멍청이가 된 것처럼 있다가 집 쪽으로 걸어갔다. 꿈인데도 '만약에 내가 묻지 않았다면 안 헤어질 수도 있었던 걸까?' 같은 고민도 했다.


예랑이가 그 와중에 날 집까지 데려다줄 생각인지 옆에서 따라왔다. 못된 말은 계속 하는 채였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던 기억은 난다. 일부러 걸음을 빨리 해봤지만, 꿈속이라 그런지 생각만큼 충분히 빨라지질 않아서 떨쳐내지 못했다. 예랑이는 중간에 나를 멈춰세우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편의점에 들어갔다. 뭘 사다 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기다리지 않고 얼른 집으로 도망쳤다. 집 문을 닫았는데 잠기지 않았다. 예랑이가 혹시 올까봐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펑펑 울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던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깐만에 예랑이가 문 반대편에서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돌리고 잡아당겼다.


"꺼져!" 하고 소리를 치며 고집스럽게 문을 잡고 열어주지 않았더니 예랑이는 금세 돌아갔다. 나는 문을 걸어잠그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생각했다. 여전히 엉엉 우는 채였다. 그 순간 잠에서 깼다. 포근한 침대 위에서 번쩍 눈을 뜨자마자 두 손으로 눈가부터 가렸다. 당연히 바짝 말라있었는데 그게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뭐라도 토해낼 것처럼 울었던 게 너무 생생했다. 서서히 다시 현실이 떠올랐다. 싸울 이유는 커녕 불안할 이유조차 단 하나도 떠올려낼 수 없는,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따뜻하고 튼튼한 관계. 기대에 차 미래에 대한 약속을 나누며 아직 생기지도 않은 딸과 화목한 가족을 상상하는 우리.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한참 가을이어야 할 시기인데 갑자기 초겨울 한파가 들이닥친다고 했던 뉴스가 떠올랐다. 휴대폰을 들고 예랑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어! 아무리 꿈이지만!


보내면서 생각했다. 예랑이가 옆에 있었으면 한 대 때렸을 수도 있겠다, 하고. 카톡 보고 좀 억울하겠지만, 억울한 걸로 끝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렴. 다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꾸는 꿈이라니까 즐기도록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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