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믕됴 Jun 14. 2023

회피형 애인을 둔 불안형에게

그의 심리는 사실 당신의 것과 꼭 닮았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1도 상관이 없습니다.)


  불안형인 사람 중에는 스스로를 불태워 남을 따뜻하게 하려는 사람이 많다. 좋게 보자면 숭고한 자기희생이 될지도 모르겠고 실제로 그렇게 평가되는 경우도 있지만, 불안정 애착유형에 '불안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본인의 결핍과 강박으로 인한 방어기제의 하나로 제 몸에 불을 붙이기 때문에 본인의 통증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스스로가 아프고 뜨거운 줄도 모르니-또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니- 상대가 그 불꽃에 얼마나 가까이 서있는지를 파악할 정신이 있을 턱이 없다.


  회피형인 사람은 감정의 동요가 싫어서 자신의 감정을 자물쇠가 여러 개 달린 고장난 냉동고 깊숙이 넣어둔다. 냉동고가 고장났다는 건, 그게 주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항상 최대출력으로 작동되고, 걸쇠도 녹슬어서 잘 열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 안의 내용물을 꺼내려면 냉동고의 주인인 당사자가 게을러터진 손놀림으로 수많은 열쇠꾸러미를 뒤져 자물쇠를 하나 하나 풀어야 한다.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망치와 절단기를 가져와 달려들면, 그 냉동고가 유일한 방어기제인 주인이 가만 있지 않는다. 결국 피터지는 싸움 끝에 둘은 만신창이가 된다.


  이렇게 정반대인 것 같은 둘은 사실 서로를 꼭 닮았다. 둘 다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된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상대에게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책임을 회피한다. 자신의 결핍이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상황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말과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며, 그래서 필연적으로 이런 행동의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고 숙고할 수 없다. 둘 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의 방어기제를 건드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서로를 상처입힌다. 그러니까 불안형과 회피형은 호수에 비친 달과 하늘에 뜬 달 같다. 본질적으로는 같으면서 서로를 매우 닮았지만 서로 반대이고, 또 아주 멀리 떨어져있다는 점에서.


  잔잔한 바람에도 온몸으로 흔들리는 당신이 보기에는 구름에 스스로를 가리고 숨어버리면 그만인 하늘의 달이 좋아보이겠지만, 그가 구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빛을 잃은 달이 그 구름이 떠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구름이 걷히고 말짱하게 다시 빛나는 그가 가려진 동안 어느 만큼의 의미 없는 발버둥을 쳤는지를, 그는 아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 나랑 결혼 할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