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개방적으로 보이지만 이렇게 폐쇄적일 수 없다
본디 성격이 개방적이며 폐쇄적이다. 노는 것을 좋아해 파운틴에 그렇게 자주 갔으면서 정작 있는 곳은 2층 구석의 오락기계가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것도 좋아해 주도는 하지만, 끝에 가서는 기빨려서 숨어버리는 묘한 성격이다.
정말 온갖 역마살이란 역마살은 다 붙어있는 사람이었다. 내 집은 이태원이요. 내 놀이방도 이태원이요. 내가 묻힐 곳도 이태원이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을 왕가위의 영화에서처럼 나 혼자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신기한 공간. 굳이 내가 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공간. 개방적이면서 폐쇄적인 그 공간이 그렇게도 좋았다.
하지만 이윽고 2020년이 되었고, 시국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상사병이 지독하게 걸려버렸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하지만 그렇게 집착했던 것 치고 포기는 빨랐다. 눈을 돌렸다. 내가 열려있으면서도 숨어있을 수 있는 공간인 내 방으로.
마음껏 해도 된다. 책 읽다가 도중에 영상도 보고, 영상보다 도중에 인스타그램을 하고, 엉덩이를 북북 긁은 손으로 얼굴을 만져도 된다. 멍 때리며 있거나 못된 상상을 해도 된다. 내 공간 안에 있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이 3평 남짓의 방에 넘치는 애정을 갖게 됐다. 때마침 벌이도 쏠쏠해져 내 마음에 쏙 드는 천들로 꾸미고, 예쁜 소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행동이 편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두다 보니 어느새 감성적인 요양실이 되었다.
누구나 부캐를 꿈꿀 수 있고, 나를 드러내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지만 여전히 나는 내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내 공간이 좋다. 30년 간 소중함을 몰랐던 공간이 주는 이 편안함을 몰랐다. 내가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히스테리를 부리고 싶어도, 너무 기뻐 소리 지르고 싶은 순간에 무슨 짓을 해도 이 공간은 그대로 나를 받아준다. 너무나 소중한 내 방. 얼른 독립하고 싶다. 좀 더 내가 나 다운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아, 창 밖은 좀 트여있으면 좋겠다.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안에서 내가 보호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