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종종 제로섬이 아닌 게임을 제로섬이라고 착각한다
2021.10.04
이전 회사에서 멋지다고 생각했던 매니저님이 본인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이라고 했던 'Give And Take'(Adam Grant 저, 이하 '책')를 읽어보았다. 같은 저자의 오리지널스도 인상 깊게 읽었던지라 기대했고, 기대 이상으로 배울 점이 많았던 책이다.
지난 9월, 오징어 게임으로 떠들썩했다. 각종 리뷰 콘텐츠가 쇄도했고 다양한 견해가 있었지만 '다 같이 이길 수도 있었던 방법'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실제로 극 중 게임 진행 측은 '여섯 개의 게임을 모두 이긴 분들에게' 상금을 준다고 했고 채무가 공개된 참가자들의 빚은 최대 몇십억 대여서 상금 전체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나 게임 속에서 만큼이나 게임 밖에서도 서로를 죽이고 든다.
현실에서도 우린 제로섬 게임이 아닌 것을 제로섬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 학생 때는 반 친구에게 필기를 뺏기지 않도록 숨겼고(상대방이 필기를 손에 넣어도 중요한 게 뭔지 파악을 하냐, 공부를 하냐는 다른 문제이다. 사실 같은 내용 어차피 참고서에 다 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자산 증식, 사회적 성공이라는 경쟁은 더더욱 선형적이지 않음에도 선뜻 내가 아는 정보들을 잘 공유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사람들의 유형을 Giver, Taker, Matcher로 분류한다. Taker는 본인의 성과를 이루기 위해 주는 데에는 인색하고 최대한 받아내려 하는 사람(다들 한 명씩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Matcher는 받은 만큼만 주고 땡 하는 사람, Giver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공동체에 치중되어 받기보다 주는 것을 많이 하는 사람을 말한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상우와 덕수가 전형적인 Taker, 대부분의 인물 - 새벽과 미녀, 유리 장인 등이 Matcher, 그리고 절대 소수이지만 알리가 Giver 유형이겠다.
Taker과 Matcher가 대부분이고 미쳐 돌아가는 게임에서 Giver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책에서는 Giver가 장기적으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와 전략에 대해 논한다.
1. Giver가 Taker, Matcher보다 네트워크가 넓다:
Taker, Matcher는 본인들이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인지를 계산하고 네트워킹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잠재력 등이 반영되지 않은 제한적인 네트워크다. 그리고 레퓨테이션이 쌓여 Taker의 이기적인 행동은 Matcher에 의해 나중에 보복당하고, Taker는 본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에 의해 점점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2. Giver가 기존 네트워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Taker, Matcher보다 많다:
Taker는 취할 것을 취하다 그 관계가 틀어지면 다음 숙주를 찾아 나서야 한다. Matcher의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때 상대방도 본인이 그만큼 해 주기를 바라고 하는 것임을 알면 그 주고받음을 썩 유쾌해하지 않고 계약처럼 받아들여 딱 그만큼만 하고 관계도 그로써 명을 다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Matcher들은 본인이 얻은 만큼 줄 자신이 없으면 도움을 청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기존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 한편 Giver의 경우 시간이 지나 교류가 활발하지 않더라도 좋은 감정과 신뢰로 남아 언제든지 재활성화가 가능한 'dormant tie'로 남아 있는다. 또한 이들은 평상시에 충분히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Giver가 되면 팀플레이 게임 전형(e.g. 줄다리기)에서 유리하다. Matcher인 미녀는 깍두기 제도가 없었으면 죽었을 것이고, 구슬치기 이후에 팀플레이식 게임이 있었더라면 신뢰를 잃은 Taker인 덕수와 상우는 소외되어 역시 죽었을 것이다.
Giver는 스스럼없이 기여하기에 그가 속한 그룹의 성과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본인을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님을 알기에 그 사람이 다소 새롭거나 챌린징한 의견을 내더라도 우호적으로 받아들인다(책에서는 이를 'idiosyncrasy credits'를 얻는다 표현한다 - 소위 '헛소리해도 얘가 말하면 들어준다'). 그룹은 그 피드백을 고려함으로써 더 발전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Giver가 있으면 다 같이 살 수 있는 대형살생게임 전형(e.g.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유리 징검다리)에서 팀이 유리하다. 유리 장인이 Matcher가 아니라 Giver였으면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그가 먼저 나서서 얘기했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을까?
받는 경험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 특히 이런 사람들이 다수라는 것을 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적어도 Matcher들은) 동조한다. 베풂을 받은 이들은 베풂을 대물림한다.
사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Giver와 노련한 Matcher는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저의가 어떠하든 간에, 서로 주고받는 게 더 활성화되면 사회 전체로는 이득이다.
Giver가 다수였으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을 조금이나마 세웠을 것이고, 게임을 몰라서, 제로섬 게임 규칙(e.g. 구슬치기)으로 이게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휴식 시간에 만큼은 충분히 휴식을 취해 6일 내내 공포에 떠는 상황은 면했을 것이다. Taker과 Matcher가 다수인 게임이었기에 극소수만이 살았고, 살아남은 극소수는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죄책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참가자들 전체'가 게임 주최 측을 상대로 한 게임에서 패배하는 것이다.
Taker를 알아보는 경험치를 쌓아, 기본적으로는 호의를 베풀되 Taker로 확인되는 사람에게는 사리기, 그럼에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종종 용서해 주기. 그들은 변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아낌없이 주는 Giver(AKA selfless giver)와 제 살 길은 찾는 Giver(AKA otherish giver)를 구분 지어 이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기훈과 아무 연고도 없는데 그를 살려준 알리는 게임에서 유일한 Giver였다. 그는 사회에서 여러 번 배신을 당한 것이 분명함에도 도움을 구하려 해보지도 않고 안산까지 걸어가겠다는 모습이나, 상우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아낌없이 주는 Giver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otherish giver처럼 조금은 눈치를 살폈다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정리해 놓고 보면 그냥 좋은 게 좋은 말 같지만, 책에는 아주 진지하고 실증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해 주셨다는 매니저님도, 문화가 좋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회사도 giving이 주류인 문화를 만들어서, 나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나도 알고 작가는 더 잘 알았을 것이다. 이 책이 모든 사람에게 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책에서 Taker의 안 좋은 예로 든 사람들(e.g. 마이클 조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이 Giver의 좋은 예로 든 사람들(e.g. 조지 마이어) 보다 유명하다. 작가도 글에서 Giver의 선례들이 처음 들어본 사람이었다고 인정한다. Taker로서 최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그들 개인의 빛나는 재능 하나만으로 성공한 사람들이고, 사람들은 눈부신 재능과 눈부신 성공에 열광하기 때문에 눈에 띈다. 재능만을 신봉하는 사람은 '만만한 소리 하네'하고 책을 반쯤 읽다 집어던질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평범하다. 그리고 살아가는 데 마주하는 과제들은 대부분 제로섬이 아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이라서든, 그렇게 사는 게 더 좋은 전략임을 깨우친 노련한 Matcher여서든 간에 Giver의 형상을 띈 사람이 많아진다면 좀 더 살 만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