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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15. 2023

백척간두진일보

질 들뢰즈 '차이와 강도' 입문 수업 후기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 철학을 배우고 나서부터 늘 마음에 걸렸던 문장이다. 난 왜 내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지? 이런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서 늘 하고 있었다. 좀 많이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가 어린 시절부터 꽂혔던 사람 중 하나가 싯다르타다. 정확히는 왕자였던 싯다르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온갖 고행 끝에 부처가 되었다는 서사에 꽂혔다. 그 이야기에 꽂힌 이유는 간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 안락한 환경이 나에게 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 안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성밖으로 나갈 용기도 이유도 없는 삶. 난 늘 성 안에서 성 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이 놈의 안락한 환경 때문에 내 인생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거라고 환경 탓을 했다. 그래서 싯타르타를 동경한 거다. 내가 못하는 걸 했던 사람의 상징 같아보였으니까.


백척간두진일보. 왜 백척이나 되는 높이에서 떨어져야 하는가? 깨닫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깨달아야 하는데? 떨어질 이유가 없었다. 백척이나 되는 간두(장대)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안고 대체 왜 뛰어내리는 걸까? 끌리기 때문이다. 저 너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렴풋하게 나에게 손짓하는 그 무엇에 끌리기 때문이다. 그 끌림(매혹)이 있어야 백척을 보지 않고 그 어렴풋한 매혹을 쳐다보며 뛰어내릴 수 있다. 백척이나 되는 간두에서 뛰어내리려면 바닥을 봐서는 안된다. 바닥을 보면 죽음밖에 떠오르지 않을 테니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스승이 대기업에서 퇴사를 할 때 어머니가 “그러다가 너 나중에 아프면 어떡할꺼냐?” “애들이 아프면 어떡할꺼냐?” 끊임 없이 물어 보길래 “그러면 그냥 죽을께요.”라고 답했다던 장면이 떠오른다. 죽음의 공포는 죽지 않는 한 사라질 수 없다. 백척 위에서 바닥만 보고 있으면 당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만 계속해서 커질 수 밖에 없다. 아플까? 죽을까? 아프기만 하고 죽진 않으면 어떡하지? 그 지랄을 떨게 된다. 그때 필요한 건 무엇인가. “아 몰랑” 정신이다. 바닥을 보지 말고, 애초에 날 그 간두에서 한 걸음을 내딛고 싶게 만드는 그 존재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 아 모르겠고, 그것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집중하는 것. 그러고 보니 이 화두는 “백척간두에서 떨어질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니까 주체가 해야 하는 행위는 “떨어짐”이 아니라 “내딛음”이라는 것이다. 백척간두에서 떨어지는 것은 그 내딛음이라는 행위로서 파생될 수 있는 어떤 상황일 뿐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 왜 내가 싯다르타에게 끌렸으며, 왜 싯다르타의 삶을 살 수 없었는지 알겠다. 내 시선은 온통 “떨어짐”에만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떨어지려고 바닥을 보면 죽음의 공포. 떨어져야 하는데 떨어지지 못하는 나를 보면 자기비하. 내 삶은 거기서만 맴돌았던 것 같다. 정작 내가 봐야했던 건 “내딛음”이다. 싯다르타는 중생들을 사랑해서 왕궁을 떠난 것이다. 씨발 이 지긋지긋한 성 꼴도 보기 싫다고 가출한 것도 아니고, 바깥 세상에는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호기심으로 나간 것도 아니다. 사랑했기에 내딛은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것이 없었다. 맨날 백척에서 뛰어내리는 삶을 동경했으면서도, 정작 정말 나를 한 걸음 내딛게 할 만한 매혹이 나타나면 매혹의 싹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언제 난 벼랑에서 떨어지지?'만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정말 나는 찐따 중에 상찐따다.


줄 없이 암벽등반하는 프리솔로 암벽가 알렉스 호놀드는 절대 절벽 밑을 보지 않는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그나마 '전락(떨어짐)'이란 걸 해본 건 인문공동체 철학흥신소에서 철학을 배우고나서부터다. 물론 그걸 백척에서 뛰어내렸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지고 있는 게 많지도 않았고, 어쨌든지 안전 장치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분명 파멸의 공포이긴 했다. 내가 그간 쌓아왔던 ‘이성’이라는 장대 끝에서 떨어지는 과정. 어제까지 맨날 전교 1등만 하다가 갑자기 전교 꼴등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열심히 그 장대를 올라갔는데 갑자기 세상의 위아래가 바뀌어서 그 장대 끝이 제일 낮은 곳이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화가 났고, 도중에는 혼란 대잔치였으며, 지금 돌이켜보면 참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그게 첫 사랑의 감성에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이성이라는 장대를 왜 올랐을까?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학벌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걸. 물론 내가 이성의 최고 지점까지 오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내 나름으로 오를 만큼 올랐던 것 같긴 하다. 뭐랄까. 나는 ‘이성’이라는 분야에서는 위축감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이성, 논리적인 방면에서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야 무지하게 많겠지만, 그들을 만나서도 그 ‘이성’ 자체에 위축되지는 않는다. 유학 생활에서 정말 똑똑한 애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 똑똑함 자체에 위축되었다기 보다는, 저렇게 열정적으로 알고 싶은 분야가 있은 게 부러웠었다. 나도 무언가 그런 욕망만 있다면, 그 욕망을 추구하는데 적어도 내 ‘이성적 역량’이 발목을 잡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으니까. 그건 내가 올라간 장대가 맞다. 물론 나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온갖 트레이너들의 도움을 받으며 격투기 선수가 된 금수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금수저 격투기 선수도 어쨌든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를 뛰었기에 선수가 된 것은 맞으니까. 그 금수저 선수는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격투기 선수가 된 사람보다는 ‘힘(강도)’이 약할 것이다. 그 사람은 훨씬 위에서부터 대나무를 올랐으니까 강도량이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수업에서는 '강도량'을 오로지 위치 에너지로만 설명 했지만, 실제로 사람이 대나무를 오를 때 들어간 힘의 양을 무시할 수는 없다. 허리에 원판 달고 장대를 올라간 사람과, 아무 것도 매지않고 적당히 쉬어가며 올라간 사람은 위치 에너지로만 보면 같을 수 있어도, 실제로 들어간 에너지량이 다르기에 실제로 잠재해 있는 에너지(강도량)도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난 귀족 가문의 격투기 선수가 맞다. 대나무를 오른 것도 맞고, 남들보다 편하게 오른 것도 맞다. 그리고 뛰어내린 것도 맞다. 내가 올라간 만큼, 그리고 내가 편하게 올라간 만큼 강도가 발생한 것도 맞다. 그게 내 지금까지의 있는 그대로의 삶이다.


평생 공주로 살아온 나에게 인문공동체 '철학흥신소'에서의 삶은 전락이 맞았다. 가장 기쁜 전락!




철학을 배우고 나는 늘 뛰어내릴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오르기 싫어서였다. 아마 내가 ‘이성’이라는 대나무에서 뛰어내릴 때만큼이나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바로 내 결혼 생활이 점점 파탄 나다가 결국은 이혼을 결정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혼란으로 치자면 이성을 버릴 때가 더 혼란스러웠고, 공포로 치자면 이혼까지 가는 과정이 더 공포스러웠다. 사실 주체적으로 이혼을 결정한 것도 아니다. 결정 되어진 거다. 뭐랄까. "그래, 결혼은 기만적인거지!" 하고 멋지게 절벽에서 손을 놓은 게 아니었다. 결혼 생활은 점점 균열이 나고 ‘아, 이렇게 하면 어떻게든 이혼은 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온갖 방법을 다 써봤는데 다 안 되고, 결국은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려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정확히는 결정 내려진 거다. 뭐랄까. 거의 막다른 골목까지는 상황이 밀고 나갔고, 마지막 버튼만 내가 톡 누른 느낌이었달까.


이혼을 결정했던 그 마지막 순간이 기억난다. 이혼 서류를 건네기 전 가정법원에 나 혼자 탐방(?)을 갔을 때다. 그때 결혼의 민낯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아, 나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결혼한 거구나. 그래서 이별하는 데도 제 삼자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그게 현타였다. 그 다음부터 나는 “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 자신이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근데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걸 스스로에게 계속 묻다가 이게 스승의 어머니가 스승이 퇴사할 때 계속 했던 질문과 같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아 몰랑” 했다.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결기만 있을 뿐이다. 나는 앞으로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는 결기. 그게 내가 결혼 제도의 장대 끝에서 뛰어내린 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직은 불안하다. 근데 뭔가 설렌다. 1년 동안의 별거 생활을 마치고 이혼이 마무리하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을 구했다. 새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짐정리를 하고 새로운 가구들을 사는 그 과정이 설렜다. 내 개인적 삶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는데, 또 그게 나의 정서적 고향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설렘과 안정감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짐 정리의 마지막이 결혼앨범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결혼앨범을 정리하던 그날 밤이 기억난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결혼앨범을 한 장씩 봤다. 결혼앨범 뿐만 아니라 신혼의 일상을 담은 사진첩도 한 장씩 다 봤다. 사진 속 나를 보고 빵 터졌다. 8년 전에 나. 뭐랄까. 묘하게 욕심과 해맑음이 공존하는 얼굴이었다. '내가 하는 결혼인데 실패할 리 없다!’ 이런 해맑은 오만도 보이고, ‘나는 이제 결혼했으니 행복에 한층 더 다가섰다!’ 이런 해맑은 욕심도 보였다. 그 얼굴이 참 어이없으면서도 귀엽게 느껴지더라. 이혼으로 가는 과정 중에는 결혼사진을 보면 걔가 좀 불쌍해보였다. 앞으로 닥칠 불행도 모르고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다니. 그런데 이제는 걔가 귀엽다. 연애 시절 전남편이 나에게 써주었던 수많은 편지들. 그리고 내가 썼던 수많은 편지들도 봤다. 정말 개소리가 많더라. 뭐랄까. 꼭 내가 성공에 미쳐 있을 때 맨날 자기암시하려고 ‘난 잘 될 거야!’라고 일기썼던 것처럼, 나나 전남편이나 연애편지에 사랑에 대한 자기암시만 잔뜩 써놨더라. 언젠가 내가 스타트업 시절에 썼던 글들이 귀엽게 보였듯, 그 연애편지들도 귀엽게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진짜로 나 혼자만의 ‘이혼식’을 잘 치른 것 같다. 그 결혼앨범과 연애편지들과 결혼 생활의 흔적들을 한 상자에 담아 방 한 구석에 놔두었다. 내 삶의 어떤 시기들이 응축되어 이렇게 한 박스에 남게 되는 거구나. 그런 박스들이 모인 방이 곧 내 삶이 되는 거구나.


"내가 하는 결혼, 실패할 리 없다!" 이러면 꼭 실패한다. 일종의 사망 플래그 같은 거다.




지혜란 뛰어내릴 순간과 오를 순간을 잘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오를 순간이다. 지난 삶에서 내가 오른 것들에 대해서는 얼추 다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더 뛰어내릴 것들이 남았다. 하지만 거기서 뛰어내리는 건 객기다. 뛰어내리는 건 어느 정도 다음 삶이 희미하게나마 배치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내가 지금 돈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능력에 대한 확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뛰어내리기보다는 올라가야 할 순간이다. 그걸 몰랐다. 예전에 ‘이성’의 장대를 오르는 과정이 슬픔이었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다 ‘슬픔’처럼 느껴져서다. 그건 모지리의 마음이다.


오르지 않은 장대를 왜 올라야 하는가? 어떤 장대를 오르지 않은 건 지금까지 그 장대를 오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성’의 장대를 오른 이유는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 장대 끝에 엄마는 없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그 장대를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결핍, 즉,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장대 타기’였다. 그래서 오르는 과정도 슬픔이었고, 다 올라가서도 ‘공허’밖에 없었던 거다. 오르는 것도 ‘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오르지 않은 장대를 왜 올라야 하는가? '그'가 그 장대 끝에서 본 세상을 나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그 장대를 오르며 느낀 것을 나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내 스승이 미술 문외한이었음에도 불구하도 늘 수행하듯 미술관을 갔던 건, 스승이 사랑했던 철학자들이 본 것을 그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지껏 오르지 않은 대나무를 올라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오르는 것도, 한 걸음을 내딛어 결국 뛰어내리게 되는 것도, ‘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있음'은 내가 사랑하는 '너'다.


올라야 할 시간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기쁘게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그 순간의 ‘너’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한때 내가 좋아했던 친구는 ‘넘어야 할 산’을 넘었었다. 그는 올라야 할 그 장대를 올랐다. 그런데 그는 그 장대를 오르며 ‘너’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 장대를 오른 만큼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기쁨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나는 내 장대를 오르며 그 순간의 그 친구도 만나게 될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미안해질 것 같다. 매혹과 미안함. 어쩌면 삶을 살게 하는 건 그 두 개가 아닐까 싶다.


이제 나도 넘어야 할 산을 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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