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시대, 왜 정보보다 의미가 중요한가

의미의 공업화 시대, 기업과 임직원이 준비해야 할 생존 전략

by 메자닌

역사상 유례없는 '쩐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1조 5,000억 달러, 중국은 1조 위안,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100조 원 규모의 AI 펀드를 가동한다. 트럼프와 시진핑, 그리고 글로벌 리더들이 이토록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는 명확하다. 21세기는 '인간의 뇌를 대신해 생각하고 판단해 주는 기계'를 소유한 나라와 기업이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사 세 번째 '외부화 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1. 근육과 신경망을 넘어, '대뇌피질'의 외부화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기능을 도구로 끄집어내어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물리기계(Physical Machine): 증기기관이 인간의 '근육'을 대신해 물리적 힘을 대량 생산했다.

스마트기계(Smart Machine):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간의 '신경망'을 대신해 정보를 대량 유통했다.

생성기계(Generative Machine): 이제 생성형 AI가 인간의 '대뇌피질'을 외부화한다. 지식, 지혜, 그리고 가장 고차원적인 기능인 '판단'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2. '의미의 공업화': 정보가 아닌 결론을 사는 시대

런던정경대 유영진 교수는 이를 '의미의 공업화(Industrialization of Meaning)'라고 명명한다. 과거에는 '정보'를 찾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그 정보가 나에게 어떤 가치를 갖는지 해석하는 '의미'의 단계로 넘어왔다. 예를 들어 정보는 "오늘 서울의 강수 확률은 80%다"는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하지만, 의미는 "비가 올 테니 외출 시 6시에 예약된 야외 테라스 식당을 취소하고 실내 미술관으로 일정을 변경하라"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다. 과거에는 이런 '의미(판단)'를 얻기 위해 전문가의 머릿속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AI라는 공장을 통해 누구나 버튼 하나로 수준 높은 '결론'을 즉시 얻을 수 있다. 지능이 전기에너지처럼 어디서나 콸콸 쏟아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3. '정신적 하청기지'를 넘어서는 실전적 생존 전략

여기서 우리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AI 개발은 중요하지만, 이미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는 글로벌 LLM(GPT, Gemini 등)과의 격차를 무시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비즈니스 리더로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투트랙(Two-Track)'이어야 한다.

첫째, 가장 날카로운 도구를 써서 효율을 극대화하라. 글로벌 최고 수준의 엔진(GPT, Gemini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필수다. 가장 좋은 도구를 거부하는 것은 경쟁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우선 이들을 통해 업무 생산성을 최고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둘째, 우리만의 데이터로 '버티컬 AI(Vertical AI)'라는 해자를 파라. 범용 AI는 누구나 쓸 수 있다. 따라서 범용 AI만 쓰는 것은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기업은 자신들만이 가진 '양질의 고유 데이터'를 활용해 특정 산업과 우리 비즈니스에 특화된 '에이전트 AI'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4. 버티컬 AI(Vertical AI)가 바꾸는 비즈니스의 미래

그렇다면 우리만의 데이터를 가진 버티컬 AI는 어떤 차별화된 '의미'를 만들어낼까?

초개인화 헬스케어: 단순히 "칼로리가 얼마냐"는 정보가 아니라, 사용자의 지난 3년간 식습관과 활동 데이터를 분석해 "당신의 오늘의 컨디션에는 A 메뉴가 최적의 영양 밸런스입니다"라는 맞춤형 처방(의미)을 내린다.

O2O 서비스 운영: 단순한 푸시 알림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날씨, 오프라인 매장의 실시간 재고, 사용자의 방문 패턴을 결합해 "지금 이 쿠폰을 보내면 매장 방문 확률이 40% 상승한다"는 경영적 판단(의미)을 제안한다. 기업 전용 지식 에이전트: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는 기업 내부의 히스토리와 노하우를 학습하여, 신입 사원도 10년 차 팀장급의 의사결정 가이드라인을 즉시 제공받게 한다.


5.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유영진 교수는 "의미의 공업화"를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현장의 실무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임원진이 전략을 고민하는 동안, 정작 AI를 손으로 다루고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실무 임직원들은 어떤 관점으로 준비해야 할까?

첫째, '프롬프트 리터러시'를 넘어 '판단 설계' 능력을 키워라. AI에게 잘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판단을 자동화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당신이 하루에 내리는 수십 개의 작은 결정들 중 어떤 것이 패턴화 될 수 있고, 어떤 것이 AI에게 학습 가능한지를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객 문의 응대 시 당신이 어떤 기준으로 긴급도를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지, 그 '암묵지'를 명시적 규칙으로 전환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당신의 업무 데이터를 '자산'으로 인식하라. 지금까지 업무 과정에서 축적된 이메일, 회의록, 보고서, 결재 문서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이것들은 당신 팀만의 '의사결정 DNA'입니다. 문제는 이 데이터가 대부분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실무자는 자신이 생산하는 데이터가 향후 AI 에이전트의 학습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구조화·태깅·메타데이터 입력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 당신이 남긴 한 줄의 코멘트가 3년 후 신입사원을 돕는 AI의 답변이 될 수 있다.

셋째, 'AI 협업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라. AI는 당신을 대체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AI와 협업하지 못하는 순간, 당신은 AI와 협업하는 누군가에게 대체된다. 실무자의 핵심 경쟁력은 이제 'AI가 못하는 것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AI와 함께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입니다. 마치 포토샵이 등장했을 때 디자이너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창의적인 작업이 가능해진 것처럼, AI 시대의 실무자는 '도구를 다루는 사람'에서 '도구를 조율하는 디렉터'로 진화해야 한다.

넷째, 소속 기업의 AI 전략을 이해하고 목소리를 내라. 많은 기업들이 AI 전략을 임원진과 IT 부서의 전유물로 여긴다. 하지만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고,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느끼는 비효율, 반복 작업, 판단의 어려움이 바로 AI가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다. 실무자는 수동적으로 AI 도구를 받아쓰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조직에 정말 필요한 AI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당신의 현장 인사이트가 버티컬 AI의 설계도가 된다.


6. C-레벨이 점검해야 할 다섯 가지 질문

그렇다면 C-Level과 임원진은 어떤 관점에서 조직을 점검해야 할까? 다음 다섯 가지 질문은 당신의 조직이 'AI를 쓰는 조직'인지, 아니면 'AI로 판단하는 조직'인지를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첫 번째 질문: 우리는 AI를 '비용 절감 도구'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기업이 AI 도입의 목적을 자동화와 인력 절감에만 한정한다. 물론 효율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AI를 통해 의사결정의 질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임원 회의에서 "이 기술로 무엇을 더 빨리 할까?"만 논의한다면, 당신의 조직은 여전히 AI를 단순 도구로 보고 있는 것이다. AX(AI Transformation)는 IT 프로젝트가 아니라 경영 판단 구조의 재설계입니다.

두 번째 질문: 우리 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모델'이 아니라 '판단 데이터'라는 인식이 있는가? GPT-5가 나오든 Gemini가 업데이트되든, 외부 LLM의 성능 비교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면 문제다. 진짜 경쟁력은 우리 조직만의 결정 기준, 운영 원칙, 실패 패턴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회사가 지난 10년간 수천 건의 고객 클레임을 어떻게 처리했고, 어떤 경우에 환불을 결정했으며, 어떤 표현이 고객 만족도를 높였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입니다. 이 데이터가 향후 AI 에이전트의 학습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AI 경쟁력의 원천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세 번째 질문: 임원 회의에서 '결론'보다 '전제'가 논의되는가? 전통적인 보고 문화에서는 실무자가 올린 '결론'을 임원이 승인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다르다. AI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십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 있는데, 임원의 역할은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전제와 가정을 넣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보고서에 숫자는 많은데 가정이 명확하지 않다면, 임원회의에서 "다른 조건을 넣으면 어떻게 달라지나?"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의 조직은 아직 AI의 진짜 힘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C-Level의 역할은 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답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관리하는 것이다.

네 번째 질문: 우리는 범용 AI와 버티컬 AI의 역할을 구분하고 있는가? 범용 AI는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버티컬 AI는 경쟁력을 만드는 무기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이 영역은 반드시 우리 데이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합의가 조직 내에 있는가?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의 판단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정의되어 있는가? 모든 것을 내재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핵심 판단만큼은 외주화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고객 응대는 범용 챗봇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이 고객에게 어떤 추가 제안을 할 것인가"라는 판단은 당신 회사의 고객 거래 히스토리와 구매 패턴 데이터를 학습한 버티컬 AI가 해야 한다.

다섯 번째 질문: 우리 조직은 '조율하는 리더십'으로 이동하고 있는가? 통제와 승인 중심의 리더십 구조는 산업시대의 유물이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입니다. AI가 만든 제안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임원에게 남아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리려고 하는가? 더 중요한 것은, "AI가 제안했는데요"라는 말이 조직 내에서 면책 논리로 쓰이지는 않는가이다. AI 시대 리더십의 본질은 결정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AI가 그렇게 해서요"라고 말하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C-Level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최종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경쟁사가 우리보다 더 좋은 AI를 쓰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이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면, AX는 아직 '도입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결론: 2026년, 당신은 어떤 의미를 생산할 것인가?

25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가 돌을 쪼개 근육의 한계를 넘었을 때처럼, 우리는 지금 생성기계를 통해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경영의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조율(Orchestration)'입니다. 범용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우리 기업만이 가진 고유한 데이터로 '버티컬 AI'라는 튼튼한 배를 띄워야 한다.

엔진은 빌려 쓰더라도, 운전대는 우리가 잡아야 한다. 글로벌 LLM이 아무리 똑똑해도, 당신 회사의 10년 히스토리와 고객 접점에서 축적된 암묵지를 알 수는 없다. 당신 팀원들이 매일 내리는 수백 개의 작은 판단들, 그 판단의 기준과 맥락이 바로 당신만의 AI를 만드는 연료다.

"우리는 어떤 지능을 소유하고, 어떤 의미를 생산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자만이 '의미의 공업화' 시대에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참고: 유영진(2024), "의미의 공업화", 조선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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