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왜 지속가능한 식문화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까?

넷플릭스 철학자의 요리를 보고 인사이트

by 메자닌

2026년 구정 연휴의 끝자락, 냉장고 문을 열며 묘한 허탈감을 느꼈다. 가득 차 있었지만, 정작 먹고 싶은 것은 없었다. 효율을 위해, 낭비를 막기 위해, 편의를 위해 채워 넣은 음식들. 그러나 신선함이 없었다.

푸드 서비스 업계 종사하면서 제철 식재료의 중요성을 알고 고객에게 제철 식재에 대해 알리고 콘텐츠도 만들지만 넷플릭스 철학자의 요리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기업은 더 정교하게 예측하고자 하고, 더 빠르게 추천하고,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왜 점점 먹는 일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먹는 것을 의식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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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철학자의 요리>의 정관스님 편을 보면 정관스님의 주방은 생산성이 없는 공간처럼 보인다. 대량 조리도 없고, 매출 목표도 없고, KPI도 없다. 대신 시간과 계절,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레시피를 알려 달라는 PD의 말에 "레시피? 그런 거 없어. 내 손맛이야. 그런 거 있으면 번민에 빠지게 돼서 머리가 아파"라고 하셨다.


봄에는 돌나물, 여름에는 연잎과 연꽃, 연자육으로 꾸민 여름 김장, 가을에는 배추로 김장, 겨울에는 바다의 톳과 미역. 육고기와 생선이 없어도 화려한 한상을 뚝딱 차려낸다. 아주 소박한 소금과 씨간장으로만 맛을 내도 너무 맛있다고 흐느낀다. 냉장고가 계절을 멈춰 세우는 대신,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받아들인다.

특히 수십 년을 이어온 씨간장과 발효 항아리는 나를 오래 붙잡았다.


우리가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종종 탄소 배출과 ESG 지표로 환원되지만, 그곳의 지속가능성은 다르다.

햇볕과 바람, 미생물과 시간이 함께 만든 맛. 그것은 관리의 결과가 아니라 관계의 결과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 시대가 올수록 우리는 왜 지속가능한 식문화에 더 끌릴까?

아마도 속도가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인간은 반대편 극단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알고리즘은 취향을 예측한다. 하지만 ‘기다림의 감정’은 예측하지 못하고 이해하자도 못할 것이다.

추천 시스템은 선호도를 학습한다. 하지만 제철의 감각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할 수는 있어도 구조화되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는 축적하면 알고리즘에 넣을 수는 있을 것이다.

발효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시간을 단축할 수 없다. 하지만 기업에서 된장, 간장, 고추장 한국의 발효기술을 활용해서 대량 생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의식(리츄얼)은 없다. 수행도 마찬가지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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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은 2025년 9월, 제1회 부하라 비엔날레에 참여해 한국의 식문화 중 사찰 음식과 발우공양 문화를 알리게 된다. 부하라 비엔날레는 중앙아시아 최초의 현대미술 국제 행사입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한 요리법(Recipes for Broken Hearts)"을 주제로 8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참여하며, 치유와 문화적 회복을 주제로 한 다양한 설치 미술 등을 선보였다. 발우공양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먹는 행위 전체가 수행이 되는 의식이다. 남김없이 비우고, 조용히 감사하며, 자연의 일부로 자신을 놓는 과정. 그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지속가능한 식문화는 환경운동이 아니라 예술 활동에 가깝다는 것을.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는 무형 문화’다.

문화재는 박물관에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루틴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어진다.

된장을 담그는 손, 장독대를 닦는 손, 제철 나물을 다듬는 손. 그 반복이 곧 문화다.


푸드서비스에 종사하면서 한국의 특유의 직장인의 점심 문화가 바로 단체 급식 문화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빠르게 식사하고 다시 복귀하여 일을 해야 하는 한국인의 성실한 직장인 문화의 한 면이고 의식적으로 빠르고 효율적인 식사만을 강조하는 리츄얼인 것이다.

사실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복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 기업은 대부분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싸간다. 기업에서 복지로 식당 공간을 운영하며 단체급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빠르고 효율적인 에너지 충전 리츄얼에서의 한식의 인기는 돋보적이다. 하지만 아직 육류 중심의 강한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식사를 하는가? 질문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냥 때우는 식사,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 리츄얼을 넘어 의식 있는 식사가 복지가 되는 그날까지 푸드서비스가 할 역할이 많아 보인다.

사찰 음식처럼 의식적인 수양 관점의 식사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불교의 수양의 하나인 사찰음식의 리츄얼은 한 번의 경험은 할 수 있지만 이게 실생활이 되긴 어렵다. 하지만 매 끼니 식사를 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이 식재료를 무엇인지, 왜 지금 이때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좋은지, 이야기하고 의식을 갖고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식품회사의 기술 발달로 완제품들이 잘 나온다. 라벨의 뒷면 성분표시를 보고 영양소를 확인한다거나 나의 건강상태에 따라먹지 말아야 할 성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나에게 맞는 식단을 구성해 보기도 하는 등 알고 먹는 습관 의식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유 불급! 지나치면 정신 건강에 더 나쁘다.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 AI시대 우리는 취향을 존중하며 의식 있는 식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식습관이지 않을는지 조심스럽게 정리해 본다.


AI는 취향을 존중한다.

그러나 우리는 취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더 자극적인 선택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더 의식적인 선택을 위해서인가.

지속가능한 식문화는 거창한 환경운동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고 먹는 일,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한 번쯤 생각하는 일.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먹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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