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받으려다 죽다(Dying for a paycheck' 읽고..
최근 몇 년 사이, 직장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때는 ‘평생직장’이 인생 설계의 기본 전제였다. 지금은 다르다. 지속가능한 직장은 없다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특히 미국의 고용 시장을 보면 그 변화의 속도가 분명하다. 고용은 유연하고, 성과 관리는 정밀하며, 전략이 바뀌면 직무도 사람도 빠르게 정리된다. 효율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불안도 구조화됐다.
AX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 변화는 더욱 가속화됐다. 생성형 AI는 보고서를 쓰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기획 초안을 만든다. 과거에는 ‘전문직’이라 불리던 화이트칼라 영역까지 자동화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단순한 경기 사이클의 결과라기보다, 기술 도입 이후 조직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에 가깝다.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는 구조.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개인이 어떤 비용을 치르는가이다.
맥킨지의 2025년 보고서는 이미 기업 다섯 곳 중 한 곳이 AI 도입을 계기로 업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밝힌다. 가트너는 2026년까지 조직 구조가 평탄화되면서 중간 관리자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제 AI는 내 업무를 도와주는 ‘비서’가 아니라, 내 자리를 설계도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는 ‘건축가’에 가깝다. 기술은 효율을 높이지만, 그 효율이 누구의 시간을 줄이고 누구의 자리를 대체하는지는 냉정하다.
바로 이런 시점에 보게 된 책이 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 Jeffrey Pfeffer의 Dying for a Paycheck, 한국어판 제목 『월급 받으려다 죽다』다. 제목은 도발적이지만, 내용은 철저히 데이터와 연구에 기반한다. 이 책은 우리가 오랫동안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온 직장 스트레스가 개인과 사회에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AI가 자리를 재설계하는 시대에, 이 책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그리고 그 비용은 누구의 몸과 삶에 남는가.
한 언론 기사에서는 이 책을 소개하며 직장 스트레스를 ‘사회적 오염’이라고 표현했다. 공기와 물이 오염되면 건강을 해치듯, 병든 조직 문화 역시 인간을 서서히 망가뜨린다는 의미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쉬운 직장 스트레스가 사실은 사회 전체에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사에 등장한 사례는 인상적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CRM 기업 Salesforce는 포천이 선정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린 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사의 한 임원은 실적이 조금만 떨어지거나 사내 정치에서 사소한 실수를 해도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직장 생활을 버티기 위해 항우울제를 복용했고, 심리치료를 받고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했다. 그 비용이 한 달에 2000달러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최고의 직장. 그러나 내부에서는 만성적 불안이 일상이었다.
페퍼 교수는 문제를 개인의 취약함으로 돌리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 통제권 부족, 고용 불안정성, 내부 경쟁과 정치, 끊임없는 성과 압박. 이런 구조가 스트레스 호르몬을 높이고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며, 심혈관 질환과 우울증, 불면 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직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통념을 반박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여전히 “더 오래 일할수록 더 생산적이다”라고 믿는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의 실험에서는 근무시간을 줄인 집단의 생산성이 오히려 향상됐다. 구글 더블린 지사에서 퇴근 시 모든 모바일 기기를 회사에 두고 가도록 한 실험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스트레스를 내려놓자 성과가 올라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쁨을 성공의 신호처럼 소비한다. “어젯밤에 4시간밖에 못 잤다”는 말이 헌신의 증거처럼 오간다. 장시간 노동 문화에 직원들 스스로가 공모하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기업은 ESG를 말하고, 탄소 배출을 줄였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직원의 수면과 정신 건강,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과 가정생활을 지킬 제도에 대해서는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을까. 사회적 오염을 방치한 채 지속가능성을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흥미로운 점은 AX 시대는 효율을 극대화한다. 업무는 데이터화되고, 성과는 실시간으로 측정된다. 고용은 더 유연해지고, 관리 감독은 더 정밀해진다. 그러나 그 정밀함이 인간의 회복탄력성까지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은 전략을 바꿀 수 있지만, 스트레스의 비용은 개인이 감당한다.
지속가능한 직장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냉소가 아니라 현실 진단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속가능하게 설계해야 하는가. 직장이 아니라 커리어, 조직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역량과 건강 아닐까.
직장을 안전망으로 착각하지 않는 것. 회사는 플랫폼일 뿐 보호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바쁨과 수면 부족을 성공의 증거로 소비하지 않는 것. 건강을 성과보다 후순위로 두지 않는 것. 그리고 한 조직에 오래 남는 전략보다, 어디서든 통용될 문제 해결 능력을 축적하는 전략을 고민하는 것.
직장은 더 이상 영구적 구조물이 아니다. 프로젝트 단위로 재편되고, 성과 단위로 평가되며, 기술 단위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은 조직 밖이 아니라 개인 안에서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나의 자리르 지켜주는 직장을 원하는가. 아니면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커리어를 원하는가. 회사에 오래 남는 것이 목표인가, 건강하게 오래 일하는 것이 목표인가. 딜레마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오염’을 견디며 버틸 것인가, 아니면 나의 일하는 방식을 재설계할 것인가.
지속가능한 직장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