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사무실, 혼자인 나를 마주했다

by 소향

휴일의 사무실은 묘하게 낯설다.
익숙한 공간인데도 사람의 온기가 빠져나가자, 어디선가 빌려온 듯한 느낌이 든다. 책상마다 덮개를 씌운 듯 조용하고, 건물 안에는 사람 대신 이제 막 돌아가기 시작한 에어컨의 더운 호흡만 은은하게 울린다.


오늘은 휴일이지만 혼자 출근을 했다.

목~금 이틀간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책상 위에는 결제를 요구하는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매일매일이 마감이지만, 그런 일정들이 틈을 주지 않고 바짝 따라붙고 있었고, 마음은 출장지에서부터 조급해졌다. 휴일이었지만, 애써 미뤄봤자 결국 다시 내게 돌아올 일이라는 걸 알기에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사진출처:pixabay.com

늘 붐비던 주차장이 나만을 위한 공간이 된 것처럼, 어쩐지 세상에서 조금 비켜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쉬는 날, 나만 일하는 이 낯선 고요함이 미묘한 감정선을 타고 있다.


사무실 안은 온통 침묵으로 가득하다.
프린터는 멈춰 있고, 커피 머신엔 불도 꺼져 있다. 평소엔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들이 오늘은 하나같이 말이 없다. 그 정적 속에서 나 혼자 키보드를 두드리고, 서류를 검토하고, 보고서에 도장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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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쌓인 서류들의 압박에 마음의 여유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속도를 내지 않으면 하루를 다 소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결제 도장을 찍던 손이 멈췄다. 이유도 없이 문득 고개를 들었고, 창문 너머에는 비가 쉬지도 않고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 부딪힌 빗방울이 실처럼 길게 흘러내렸다.

잔잔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천천히 스며드는 그 장면에 시선이 멈춰버렸다. 아무리 바빠도, 어떤 장면은 사람을 멈추게 만드나 보다. 그것이 빗방울이라면, 아마 그건 마음 안쪽에 무언가 울릴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창문 앞에 천천히 다가가 섰다.

밖은 회색이었다. 흐린 하늘, 축 처진 우산들, 바삐 걷는 사람들.

사람들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고, 도로는 검은 비단처럼 번들거렸다.

그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일을 하러 온 건데, 왜 나는 지금 이렇게 서 있는 걸까 생각을 하면서.


일이라는 건 이상하게도 내가 멈추지 않으면 스스로 멈추는 법이 없다.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잠깐 멈춰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비가 내려서일까? 마음이 가라앉는 날엔 오히려 서두르지 않는 게 더 옳은 일처럼 느껴진다.
밖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나도 그 속도에 조심스레 걸음을 맞춰본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실은 나도 모르게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너무 오래 다그쳤고, 책임이라는 말에 기대어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둔 마음이 언젠가 꼭 말을 걸어온다. 비 내리는 오늘처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놓아둔 책상 위에는 어느새 흥건히 젖어 있다.

얼음이 밖으로 뛰어나간 흔적들이 가득하다.
보고도 못 본 척 서류를 덮고, 다시 창가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거리의 소음은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이 조용한 빗소리가, 어쩌면 오늘 나에게 전해지는 위로의 음악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시간이다.
일의 밀도보다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사는 건 어쩌면 무게 중심을 다시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하루를 견디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고, 나는 그 중심을 놓친 채 무조건 앞으로만 뛰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비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엔 오래된 속삭임이 있다.
잊고 있던 내 모습, 미뤄둔 감정, 꺼내지 못한 말들이다.
비가 내릴 때마다 마음 한켠이 젖는 이유는, 그 모든 것들이 다시 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오늘의 출근은 어쩌면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그 마음을 짊어진 내가 점점 사라져 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주말이 지나면, 일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사무실은 곧 소란을 되찾을 것이고, 오늘의 조용함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빗소리는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언젠가 또 다른 고요함을 불러올 것이다.


비 오는 날, 휴일에 출근한 어느 하루는 그렇게 채워지고 있다.

나는 그 속에서 조용히 나를 회복해 본다.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비와 함께 천천히 걸었던 오늘,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가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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