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이야기
'인생이 들꽃을 닮았다.' 화단에 들꽃을 가꾸며 생각했다.
한해를 살아가는 들꽃을 보면 우리 살아가는 삶을 축소한 것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이 시작되어 성장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는 삶이다. 우리들 삶은 오랜 시간을 더디게 살아간다. 그만큼 우리가 겪을 기쁨과 아픔과 눈물이 함께하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일 뿐이다.
우리 집 화단의 들꽃은 이번 생은 망했다. 주인을 잘못 만났든, 시기를 잘못 태어났든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그들의 생이 끝났음에 다른 이유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우리들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지고 행복해 진들 내 삶이 끝난 이후에는 아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욜로족도 아니고 욜로 예찬론자도 아니다. 그렇지만 한 번뿐인 인생에 후회하며 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를 위한 삶을 생각하며 우리 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후회한다.
나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힘들고 고된 날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한 나에게 나 스스로가 보상을 해주지 못했다. 물론 고생했다 스스로에게 토닥여 주지도 않았다. '잘 넘겼으니 됐지 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 였다. 그랬던 내 모습이 후회가 되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수고한 나에게 보상을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큰 행복은 아니더라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살아가는 재미가 있지는 않았을까.
고된 하루를 마무리할 때, 나 때문에 고생한 나에게 양손 어깨에 감싸고 토닥토닥 두드리며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 말해줄 수 있는 마음 부자로 나 자신을 변화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을 마무리할 때 고생한 나에게 '수고 많이 했어.' 하며 작은 선물도 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제 '인생이 들꽃을 닮았다'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내가 야생화에 대한 에세이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짧지만 긴 호흡으로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른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들꽃의 생이 마치는 순간까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갑자기 어느 해 보다 긴 장마를 만났다. 내 이야기의 주제인 야생화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야기를 더 길게 가고 싶은 생각이 지금은 없어졌다. 아쉽지만 여기서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많은 아이들이 잘 버티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는 나에게 하듯이 작은 보상이라도 주어야겠다. 야생화는 스스로에게 보상할 수 없으니 내가 야생화의 마음으로 뭔가를 해 주어야겠다.
오늘 유난히 맑은 하늘과 밝은 햇살이 화단에 가득한 날이다.